Installation view of 《Ha Chong-Hyun》 ©Kukje Gallery

국제갤러리는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인 하종현의 개인전 《Ha Chong-Hyun》을 K1과 한옥에서 5월 1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개인전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 아래 반세기에 걸쳐 유화를 다뤄온 하종현의 지속적인 실험과 물성 탐구의 현주소를 조망하는 자리다.

기존의 〈접합(Conjunction)〉 연작과 여기서 비롯된 다채색의 〈접합〉, 제스처의 자유분방함과 기법의 자연미를 강조하는 최근의 〈접합〉, 그리고 2009년부터 시작된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 등 2009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30여 점을 통해 쉼 없이 진화 및 확장하고 있는 하종현의 작업세계를 일괄한다.

Installation view of 《Ha Chong-Hyun》 ©Kukje Gallery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접합〉은 지난 50여 년에 걸쳐 하종현을 대표하는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는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으로 평면에 공간의 개념을 부여하는 노동집약적인 기법을 구축했다.

이번 전시는 배압법을 이용하는 기존 〈접합〉의 방식과 형태를 고수하되 그 기법과 의미의 변주를 조명하는 작가의 신작을 포함한다. 예컨대 색에 대한 동시대적 고민이 반영된 다채색의 〈접합〉 신작에서는 캔버스 뒷면에서 만들어진 작가의 붓 터치(mark-making)와 함께 밝은 색이 섞인 그라데이션이 강조된다.

기존 〈접합〉 연작에서 기왓장이나 백자를 연상시키는 한국적인 색상이 주로 사용되었다면, 다채색의 〈접합〉 신작은 색이 지닌 상징적 의미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일상의 색상을 도입해 보다 현대적으로 해석된다.

Installation view of 《Ha Chong-Hyun》 ©Kukje Gallery

하종현은 색채뿐 아니라 붓 터치와의 오랜 관계 역시 새롭게 변모시키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예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접합〉 신작인 〈Conjunction 23-74〉(2023)에서 볼 수 있다. 기존의 〈접합〉 연작에서 기둥 형상의 수직적인 제스처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유분방하지만 사전에 계산된 듯한 미묘한 사선 형태의 붓 터치들이 캔버스 화면을 가득 메운다.

한편 전시는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만선(滿船)의 기쁨"을 희열에 찬 원색의 화면으로 표현한 〈이후 접합〉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후 접합〉 연작은 기존 〈접합〉 연작의 주요 방법론이었던 배압법을 응용, 색과 형태뿐만 아니라 회화의 화면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자체를 재해석하고 탐구한 작업이다.

하종현의 화가로서의 여정은 재료의 물성 탐구를 통해 하나의 카테고리에 얽매이기를 부단히 거부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관행에 대한 거부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착해온 작업 방식으로부터의 탈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