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도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갤러리 DDD ART Sono/Nagi에서
한국 현대미술가 이윤성(Yunsung Lee)의 개인전 《Frames
of Torso》가 막을 올렸다. 전시는 9월 6일부터 24일까지 이어지며, 오프닝
리셉션에는 작가가 직접 참석해 현지 컬렉터와 관람객들을 만났다.

전시 오프닝 모습 / Photo : 이윤성

전시 오프닝 모습 / Photo : 이윤성
토르소와 만화 프레임의 결합
이윤성은 어린 시절 접한 만화·애니메이션 서브컬처를 바탕으로, 서양 고전 조각의 형상성과
충돌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의 핵심인 ‘토르소’ 시리즈는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고대 조각을 애니메이션풍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불완전한 신체는 관람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제공하며, 고전적 미의 언어를 동시대적 시각 감각으로 확장한다.


<프레임 사이의 토르소 파편 03>, 2025, 캔버스에 유채, 각 36 × 90 cm, 2점 연작(패널) / 사진: 이윤성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만화 특유의 “코마割(프레임 분할)” 방식을 차용해, 이미지 사이의 틈(gap)을 독립적인 조형 요소로 제시한다. 그 틈은 형상과
여백, 내러티브와 단절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요구한다.

<프레임 사이의 토르소 파편 05>, 2025, 캔버스에 유채, 각 91 × 19 cm, 3점 연작(패널) / 사진: 이윤성
다양한 서브컬처적 변주
전시장에는 토르소 작업 외에도 두 개의 시리즈가 함께 소개된다.
황도 12궁을 SD 캐릭터화한 회화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용하면서 신화를 경쾌하게 재구성한다. 라오콘(Laocoön) 신화를 만화적 이미지로 재해석한 시리즈는
고대 신화와 동시대 서브컬처 언어가 충돌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선명한 색채, 과감한
분할과 중첩, 반복되는 이미지 구조는 이윤성 작업의 특징이자, 한국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하이브리드 미학”을 잘 보여준다.

<프레임 사이의 토르소 파편 09>, 2025, 캔버스에 유채, 90 × 40 cm, 90 × 62 cm / 사진: 이윤성
한국 서브컬처와 이번 전시의 의미
한국에서의 서브컬처는 오랫동안 일본 망가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은 금기와 검열 속에서도 만화적 상상력을 회화·영상·디자인으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언어를 구축했다. 이윤성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장한 세대로, 만화의 문법을 회화적
탐구와 결합해 새로운 시각적 지형을 개척해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인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 망가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한국 작가가, 그 결과물을
다시 일본 현지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순환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화가 이동하고, 충돌하며, 재맥락화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자리이자, 한국과 일본 서브컬처의 상호 교차가 동시대 미술 언어로 전환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소개
이윤성(Yunsung Lee,
1985년생)은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2011)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만화와 게임, 특히
일본 망가에서 차용한 시각 언어를 서양 고전미술의 주제와 결합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화면을 구축해왔다.
이윤성의 작업은 고대 신화와 기독교 서사를 현대의 서브컬처 문법—망가, 디지털 게임, 애니메이션—으로 번역해내는 데서 출발한다. 그가 선보이는 이미지는 고전적 모티프를
기반으로 하지만, 화면 안에서는 과감한 프레임 분할, 강렬한
색채, 레이어드된 질감이 더해져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조디악>, 2019, 캔버스에 유채, 330 x 330 cm
특히 ‘NU-FRAME’, ‘Torso’,
‘ZODIAC’ 시리즈는 그의 대표적 작업으로 꼽힌다. 고대 조각의 파편적 형상, 별자리 신화, 그리고 만화적 캐릭터성을 결합한 이 작품들은 문화적
충돌과 재맥락화라는 오늘날 동시대 미술의 핵심 화두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는 2014년 두산연강예술상(Doosan Artist Award)을 수상하며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6년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입지를 넓혔다. 이후 서울, 뉴욕, 프랑스 마르세유, 그리고
최근 일본 도쿄의 DDD ART에서 개인전을 열며 활동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오고 있다.
이윤성의 작업은 단순한 장르 혼합을 넘어, 문화 간 이동과 재해석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의 회화는
동시대 미술에서 흔히 발견되는 “하이브리드 미학”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으며, 한국 작가가 서브컬처와 고전미술을 교차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시각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DDD Art 갤러리 모습 / Photo : DDD Art
갤러리 DDD ART
DDD
ART는 도쿄 세타가야구 다이자와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로, “Sono(苑)”와 “Nagi(凪)”
두
공간을 운영한다. 동시대 미술을 중심으로 신진·중견 작가들의
새로운 시각 언어를 발굴하고 국제적 교류를 촉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차세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아시아 현대미술의 실험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