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109, b. 1986)와 유선(b. 1983)을 주축으로 운영되는 다이애나랩(2016년 결성)은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콜랙티브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다이애나랩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단일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며, 각각의 스펙트럼에 따른 세세한
지점들을 염두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과 작품을 고민해 왔다.
다이애나랩은 접근성을 창작의 한 맥락으로 중요하게 고려하며,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순간을 포착하거나,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추구함으로써, 우리 사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여러 경계들을 감각할 수 있는 예술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차별없는가게’ 포스터 ©다이애나랩
이들의 작업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경험한 외부의 장애물과 차별적인 순간들에서 출발한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외부 공간들에서 겪은 불편함을 계기로, 다이애나랩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차별없는가게’는 사회적 소수자가 지역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으며 동등한 하나의 개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이를 지도에 표시하여 공유하는 공공 프로젝트이다.
아울러, 물리적, 심리적
문턱을 낮춤으로써 소수자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을 발굴하고 만들어 나가는 작업과 함께 다이애나랩은 예술을 매체로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각적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환대의 조각들’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 ©다이애나랩
그렇게 시작된 ‘환대의 조각들’(2020-)
프로젝트는 국내외 51명의 작가/팀,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 사람들 80-90여명과 함께 협업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20년에는 참여작가 각자의 조각을 웹 플랫폼 ‘환대의 조각들 1444’에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2021년에는 전시와 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로 ‘지역에 있는 접근성이 확보된 공간’에서 선보여졌다.
웹 플랫폼 ‘환대의 조각들 1444’은
프로젝트 소개글과 각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어, 한글, 영어, 큰 글씨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이들은 가능한 한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초대의 감각》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다이애나랩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이애나랩은 작업물을 데이터 전송 방식이 아닌 항공우편으로 받아 보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못하는 부분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오프라인 전시 《초대의 감각》(탈영역우정국,
2021)을 만들게 되었다.

《초대의 감각》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다이애나랩
전시 《초대의 감각》은 ‘초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여러 물음들,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누가
초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이 단어와 연결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여러 감각을 통해 표현했다. 전시장에 초대될 모든 이들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하고자, 다이애나랩은
작품이 어떤 시공간 안에 존재하게 될지 물리적인 공간을 먼저 생각한 다음, 이 공간에서 누구에게나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고려했다.
가령, 시각 이미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시각 이미지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번역되어 전달될 수 있을지, 소리를 인식하기 어려운 관람객에게 사운드 작품은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참여작가들은 이러한 지점들을 공유하며, 시각과 촉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듯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은 창작 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염두해 두며 제작되었다. 이에 따라서, 수어해설 영상QR이나 음성해설, 안내인의
설명, 진동이나 촉각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전시공간은 ‘차별없는가게’이거나
차별없는가게의 접근성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어야 했다. 《초대의 감각》이 열린 탈영역우정국에는 휠체어와
유모차, 동물의 입장이 가능하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LGBTQ+, 발달장애인 등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공간이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장 전체를 묘사한 음성해설, 수어해설 화면, 점자로 된 리플렛, 큰 글씨로 된 한글과 영어 리플렛이 놓여 있었으며, 전시장에는 관람을 도와주는 조력인이 매일 상주해 있었다.

《항구로부터, 신호》(문화공간 비수기, 2021) 점자 리플렛 ©다이애나랩
이처럼 《초대의 감각》은 ‘초대’와
‘환대’를 둘러싼 창작자와 관람객 각자가 가진 어떠한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환대의
조각들’ 프로젝트는 최소한의 전시 접근성 모델을 만들고 적용하게 되었다.
이후 ‘환대의 조각들’은
《초대의 감각》의 접근성 모델을 적용한 또 다른 전시와 퍼포먼스, 워크숍 등으로 이어지며, 타인에 대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 중, 제주도 서귀포 강정동에 위치한 문화공간 비수기에서 열린 《항구로부터, 신호》는 지역 주민들, 장애가 있는 작가들, 소수자 관람객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전시였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배들이 모이는 항구처럼, 전시는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다양한 타인들이 만나 각자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감각하는 장소가 됨으로써 각자가 있는 그대로 환영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이애나랩 x 우에타 지로,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2022,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시간 39분 40초, 《일시적 개입》 전시 전경(아르코미술관, 2022) ©아르코미술관
한편, 2022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일시적 개입》에서
다이애나랩은 일본 영화감독 우에타 지로, 그리고 ‘blblbg(벌레벌레배급)’과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우선, 우에타 지로와 협업한 영상 작업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2022)는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7인의 사람들과 진행한 인터뷰로
이루어진다. 영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양한 소수자 사이에서 작동하는 교차성을 다룬다.
이번 작업 또한 시청각 장애가 있거나 언어 장벽이 있는 사람들도 작품을 접할 수 있게끔 음성해설, 수어 통역, 자막 등이 갖추어 있었다.

다이애나랩 x blblbg, 〈지도에 없는 이름〉, 2022, 점자 스티커, 가변크기, 《일시적 개입》 전시 전경(아르코미술관, 2022) ©아르코미술관
blblbg과 협업한 점자 지도 작품 〈지도에 없는 이름〉(2022) 역시 ‘차별없는가게’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완벽하게 차별이 없는 상태의 가게를 만드는 것이기보다, 차별이 없는 ‘순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상상해보는 과정으로서의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여러 다른 감각을 통해 제시하고자 구상되었다.
프로젝트와 연관된 여러 소수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점자로 옮기고, 이를
노들장애인야학의 학생과 선생,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동료 작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편집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점자 지도를 제작했다. 이와
함께 사운드를 설치하여 같은 내용을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게끔 하였다.

다이애나랩 x Blblbg, 〈지도에 없는 이름〉, 2022, 점자 스티커, 가변크기, 《일시적 개입》 전시 전경(아르코미술관, 2022) ©다이애나랩
아울러, 다이애나랩은 이러한 지도를 바탕으로, 언어가 아닌 다른 감각으로 무언가를 읽고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퍼포먼스는 보이지 않고 읽을 수 없는 지도를 세 명의 퍼포머와 세 명의 속기사, 세 명의 수어 통역사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읽고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각 방식의 차이와 지연을 드러냈다.
또한 소수자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를
지향하는 릴랙스드(relaxed) 퍼포먼스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조명의
밝기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큰 소리가 나지 않으며 관람객이 중간에 잠시 나갔다 들어오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후 다이애나랩은 0set프로젝트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접근성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들은 미술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강의부터 관람객과 시설 종사자, 창작자가 함께 공간을 둘러보며 접근성을 조사하는 워크숍,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여러 차례 인터뷰 등을 진행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접근성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실천들에 대해 다루는 전시를 기획했다.

다이애나랩 x 우에타 지로, 〈빨강에 대하여〉, 2024 ©서울시립미술관
202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떻게 나에게 빨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는 접근성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무언가에 다른 것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기 보다는, 이 문제의 근원과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규범,
그리고 ‘우리’라고 하는 경계의 범위 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이애나랩은 접근성을 완전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배리어프리)로 다루기보다는, 다양한 타인과 경계를 접촉하고 감각하는 과정(배리어컨셔스)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어떻게 나에게 빨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4)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사전에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한 시각장애인, 휠체어
이용자, 청각장애인, 비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예술 기획자, 창작자, 관람객이기도 한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길을 잃은 지도〉(2024)는
3D 프린팅 기법으로 만들어진 촉지도 형태의 테이블 위에 스피커가 설치된 작품으로, 시각장애인이 흔히 경험하는,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고 실제로
길을 찾아가기 힘든 촉지도의 형태를 재현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를 재구성한 여러 목소리들이 차례로 송출되었으며, 그 내용은 촉지도, 미술관, 접근성, 예술작품으로부터 시작해 비장애인 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음성 메시지는 모두 점자와 한글 묵자로 출력되어 작품 옆에 비치되어 있었다.

다이애나랩, 〈티끌0403〉, 2025,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88분 21초 ©국립현대미술관
다이애나랩은 0set프로젝트와 접근성에 대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온전하게 전달될 수 없는 감각들 사이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이애나랩은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서 각각의 감각에 집중하여 어떠한 원본 없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시각,
청각, 수어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선보였다.

다이애나랩, 〈티끌0627〉, 2025 ©국립현대미술관
‘티끌’(2025)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시작들은 어떤 경계들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선, 벽, 아니면
울타리 같은 경계가 드러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공간이 다른 3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기 다른 경계의 벽에 갇힌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를 얻고, 그들을
가둔 벽을 넘어선다. 사운드 설치, 단채널 영상과 3채널 영상 그리고 벽면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이 작품은 소수자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했으며, 작품에 대한 점자 설명글이 전시장에 함께 놓인다.
이처럼 다이애나랩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경계를 접촉하고 마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이러한 만남과 접촉을 통해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이애나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느낄 수 있는 장소와 순간을 만듦으로써 각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 자체로서
환영 받을 수 있는 감각을 나누는 예술적 실천을 이어 나가고 있다.
”계속해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비장애인들이 만날 수 있는 접점, 그리고 만남의 순간들을 만드는 게 저희 작업의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 (다이애나랩,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작가 인터뷰 중)

다이애나랩 (백구, 유선) ©국립현대미술관
다이애나랩은 백구(109, b.1986)와 유선(b. 1983)으로 구성된 콜렉티브로 2016년에 결성되었다. 공공 프로젝트 ‘배리어컨셔스를 위한 조각들’(2022-), ‘환대의 조각들’(2020-), ‘퍼레이드 진진진’(2019), ‘차별없는가게’(2018-) 등을 기획하며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어떻게 나에게 빨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4),
《초대의 감각》(탈영역우정국, 서울, 2021) 등이 있으며,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일시적 개입》(아르코미술관, 서울, 2022),
2021 아르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아르코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
- 다이애나랩, 인스타그램 (dianalab, Instagram)
-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인터뷰 | 다이애나랩 |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ARTIST INTERVIEW | dianalab | Young Korean Artists 2025: Here and Now)
- 차별없는가게 (We Welcome All)
- 웹진이음, 초대의 감각, 2021.09.17
- 탈영역우정국, [서문] 초대의 감각 (Post Territory Ujeongguk, [Preface] Sense of Invitation)
- 파이낸셜뉴스, "비장애인 중심 사회서 장애인 이해하기 쉽지 않죠", 2023.01.01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소개] 나에게 빨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Seoul Museum of Art, [Exhibition Overview] How dare you think that I don't have red?)
- 국립현대미술관, [리플렛]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Reflet] Young Korean Artists 2025: Here and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