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 SEOUL 2025의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기획은 특별전 《Reverse Cabinet》이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축하 이벤트가 아니라, 미술의 근본 언어인 ‘수집’과 ‘진열’을 전복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적 장치다.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특별전 《Reverse Cabinet》 전 기획자: 윤율리, 이와타 토모야 / 사진: Kiaf Website

캐비닛을 거꾸로 뒤집는 시도

‘캐비닛(cabinet)’은 근대적 박물관 제도의 뿌리였다. 질서정연한 배열, 체계화된 분류, 그리고 국가와 개인의 권력이 그 안에 집적되었다. 그러나 《Reverse Cabinet》은 그 전통을 의도적으로 흔든다. 큐레이터 윤율리(일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와 토모야 이와타(The 5th Floor 디렉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수집과 진열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가 아니라 권력과 서사를 형성하는 창작 행위”임을 드러낸다.


 
참여 작가와 작품 세계

이번 전시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여섯 작가가 참여해 다층적인 대화를 이끈다.

먼저 한국 측 참가 작가들을 소개하면, 가장 먼저 돈선필(Don Sun-pil)은 날카로운 드로잉과 퍼포머틱한 신체 언어로, ‘소장될 수 없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Reverse Cabinet》 전에 참가하는 돈선필 작가의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모습 / 사진:아라리오 갤러리 홈페이지 화면 캡처



정금형(Jeong Geum-hyung)
은 기계와 인간, 욕망과 조작의 경계를 탐구하는 설치와 퍼포먼스로, 수집 욕망의 은밀한 층위를 드러낸다.

《Toys, Selected》 전시, 뉴욕 / 사진: 카날 프로젝트, 뉴욕



염지혜(Yeom Ji-hye)작가는 여성성과 기억, 일상의 사물을 연결하며, 기록되지 못한 서사를 발굴하며, 오가영(Kai Oh)은 아카이브 자료와 설치를 결합해, 진열된 오브제가 어떻게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지 실험한다.


<부서진 것들을 위한 드로잉 1>, 2014 / 사진: 우손갤러리

 

일본 측 참여작가인 다케무라 케이(Kei Takemura)은 섬세한 자수와 텍스타일 작업으로 파편화된 기억을 수놓으며, 수집된 흔적을 감각적 서사로 바꾼다. 또한 타카하시 센(Sen Takahashi)은 전통적 오브제와 실험적 매체를 혼합해, 보존과 파괴의 경계에서 진열의 의미를 흔든다.


타카하시 센, Cast and Rot No.17, 2021, 당근, 베릴륨 구리, Hi-mic1080, 리그로인, 황산석회, 유화 물감, 목재, 천, 면 / 사진: 작가 웹사이트

각 작가는 “무엇이 수집되고, 무엇이 배제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한다. 이는 단순히 전시에 작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라는 제도 자체를 재전시하는 행위에 가깝다.
 


한일 교류를 넘어, 동아시아 담론으로

《Reverse Cabinet》은 단순히 한일 수교를 기념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오히려 동아시아 미술계가 공유해야 할 더 큰 질문을 던진다. 수집은 권력이고, 진열은 정치학이다. 국가·기관·컬렉터의 시선 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남고, 어떤 기록이 사라졌는지 묻는 작업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맥락을 넘어, 오늘날 글로벌 아트마켓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Kiaf의 올해 테마인 ‘공진(Resonance)’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작가와 큐레이터, 두 나라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관람객의 경험이 서로 울리며, 전시장은 단순한 쇼케이스가 아닌 비평적 공진의 공간으로 변한다.


 
Kiaf 안의 또 다른 Kiaf

176개 갤러리가 모이는 대형 아트페어 속에서 《Reverse Cabinet》은 마치 “페어 속의 페어”처럼 독립적 위상을 가진다. 판매를 넘어 담론을 제시하고, 전시의 형식을 다시 묻는 자리이기에, 이번 Kiaf에서 가장 비평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Reverse Cabinet》은 결국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수집하고, 어떻게 진열하며, 누구의 기억을 미래에 남길 것인가. 이 질문은 60년의 외교사를 넘어, 미술의 본질적 언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으로 남는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