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9일부터 22일까지 스위스 바젤 메쎄(Messe Basel)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아트 바젤 인 바젤(Art Basel in Basel 2025)’을 앞두고, 한국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해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올해 페어에는 전 세계 42개국에서 289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메인 섹터인 ‘Galleries’를 비롯해 대형 설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Unlimited’, 도심 공공 설치 중심의 ‘Parcours’, 특정 주제를 조명하는 ‘Kabinett’ 등 다양한 섹터가 현대미술의 복합적인 흐름을 총망라한다.


작품 이미지: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의 작품 전경. 작가 제공. 독일의 저명한 작가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는 메쎄플라츠(Messeplatz)를 생생한 색채와 변화하는 환경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이 작품은 런던 서펜타인(Serpentine)의 건축 및 장소특정 프로젝트 총괄 큐레이터인 나탈리아 그라보브스카(Natalia Grabowska)의 기획으로 선보인다.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Art Basel Awards’는 작가와 큐레이터뿐 아니라 후원자와 예술 기관 종사자 등 예술 생태계의 다양한 축에 기여한 인물 36인을 선정해 페어 기간 중 메달을 수여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아트 바젤이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문화적 지형의 변화를 선도하려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조치로 읽힌다.



국제갤러리: 단색화와 동시대 작가의 전략적 병치

국제갤러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핵심 작가군을 한자리에 아우른 구성으로, 전통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조망한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1931–2023)의 후기작 <Écriture No. 230101>(2023)은 세라믹 위에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을 담아내며, 그의 대표적 회화 언어인 반복적 행위를 동양적 물성과 결합시킨 예다. 하종현의 신작 <접합>은 배압법을 응용해 캔버스 뒷면에서 밀어낸 물감을 표면 위에서 조형화하며, 회화의 물리성과 동세를 극대화한다.

(참고) 김용익 <물감소진프로젝트 24-2: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2024, Acrylic on canvas 82 x 1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개념미술가 김용익의 <물감 소진 프로젝트: 名(兕)–3>, 조각가 김윤신의 <내 영혼의 노래>, 회화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재현하는 문성식의 <그냥 삶>(2024–2025)도 함께 소개되며, 한국 현대미술의 내면성과 감각성을 드러낸다.

또한 양혜규, 최재은과 함께 강서경(1977–2025)의 유작이 Unlimited 섹션에 전시된다. 설치와 회화, 직조물, 조형 구조를 결합한 강서경의 작업은 전통 무용 '춘앵무'와 같은 동양적 형식과 젠더적 시선을 교차하며, 사회 구조와 신체 사이의 관계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이번 전시는 그녀의 마지막 대형 작업 중 하나로 구성되어 더욱 깊은 감동을 예고한다.


양혜규, 〈황홀봉헌탑등 恍惚奉獻塔燈 – 서리 홍련 이계화 二界花〉, 2025, 자작나무 합판, 목재 스테인, PVD 코팅 스테인리스 전산볼트, PVD 코팅 스테인리스 및 스테인리스 부품, LED 전구, 전선, 알루미늄 와이어, 편백나무, 알루디본드, 한지, 벌집지 볼, 스테인리스 체인, 비즈, 우레탄 끈, 실, 가죽 끈, 스테인리스 방울, 스플릿 링, 스테인리스 와이어 로프, 160 × 120 × 120 cm / 사진: 안천호, 작가 및 국제갤러리 제공

해외 작가로는 아니쉬 카푸어의 오목 디스크 조각, 다니엘 보이드의 회화 설치가 출품되며, 탈식민주의와 시각 문화의 경계를 흔드는 미학적 시도가 함께 이루어진다.



갤러리 현대: 비조각의 방법론, 이승택의 개인 부스로 선보여

갤러리 현대는 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이승택(1932– ) 작가의 솔로 전시를 부스 G13에서 선보인다. 이승택은 1960년대부터 서구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개념미술, 대지미술과 동시대적인 흐름을 공유하면서도, ‘비조각(Non-Sculpture)’이라는 독자적 개념을 통해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고유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이승택의 출품작. (왼쪽) 〈묶인 몸통〉, 1957, 나무, 밧줄, 35 × 22 × 100 cm, (오른쪽) 〈고드렛돌〉, 1987, 나무, 돌, 밧줄, 78 × 90 × 5 cm / 갤러리현대 제공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바람, 연기, 불 등 형태가 없는 자연 현상을 시각적으로 포착한 설치 및 퍼포먼스 형식의 '비물질 시리즈', 다른 하나는 일상 오브제를 묶거나 매어둔 상태로 제시하는 '묶기 시리즈'다. 이번 아트 바젤에서는 후자의 대표작들이 중점적으로 소개된다.

<고드렛돌>, <매어진 백자>, <매어진 돌>, <노끈 캔버스> 등 약 30점의 설치 오브제가 출품되며, 사물의 본성과 의미를 전복하는 이승택의 조형 언어가 ‘역설의 시각화’라는 개념 아래 정제되어 제시된다. 이러한 방식은 사물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세계의 관계를 구조화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미적 경험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조각의 개념을 확장한다.



Tina Kim Gallery: 젠더와 정체성, 이동의 정치학을 펼치다

Tina Kim Gallery는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올해도 Galleries와 Unlimited 섹션에 동시에 참여한다. 메인 부스에서는 단색화와 현대미술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으며, Unlimited 섹션에서는 강서경(1977–2025)의 대표 설치작 〈Mat Black Mat 170 x 380〉이 출품된다. 이 작품은 전통 한국 발매트(화문석)에 기하학적 문양을 염색해 천장에 매단 대형 조형물로, 조선시대 궁중무용의 무대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신체와 사회 구조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세 장의 매트는 각각 고립성과 조응, 내면과 사회의 이중성이라는 층위를 갖고 공간에 공존하며, 이는 고인의 예술적 철학을 요약하는 마지막 언어로 읽힌다.


(참고) 《강서경: 산—시간—얼굴》 전시 전경, MCA 덴버, 사진: 웨스 매자르 / 티나킴 갤러리 제공

이외에도 Mire Lee, Pacita Abad, Ghada Amer, Maia Ruth Lee, Jennifer Tee 등 다양한 글로벌 여성 작가들의 페미니즘과 이주 서사를 다룬 작업들이 함께 구성되어, 전통성과 현대성, 지역성과 국제성의 다층적 교차를 이끌어낸다.



한국 미술, 글로벌 생태계에서 주체로 떠오르다

아트 바젤 측은 “2025년 기준 아시아 갤러리 참여가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으며, 한국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번 아트 바젤의 한국 갤러리 참여는 단순한 시장 진출이 아닌, 한국 현대미술의 내적 확장과 외적 정착의 이중적 전략을 보여준다.

한국 갤러리들은 세대, 매체, 이념을 넘나드는 작가 라인업과 섹터 병렬 진입을 통해, 하나의 국가적 스타일을 넘어선 복합적 생태계의 일원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이승택의 ‘비조각’ 개념, 박서보와 하종현의 물성과 반복의 미학, 강서경의 공간적 퍼포먼스, 국제적 연대를 반영하는 Tina Kim Gallery의 큐레이션은 모두 한국 현대미술이 단일한 경향이 아닌 다중적 층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바젤의 중심에서 한국 현대미술은 점점 단순한 행사 참여가 아닌, 담론의 주체로 자리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