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의 한국 미술시장은 단순한 위축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통계적 수치만으로 시장을 평가하는 방식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거래 총액의 감소와 고가 작품의
침묵, 중저가 시장의 확산과 젊은 컬렉터의 부상은 모두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의 한국 미술시장은 일시적 후퇴가 아니라 유통 구조, 가치
인식, 컬렉터 행동의 전략적 재구성이라는 흐름 안에 놓여 있다.
1. 글로벌 시장 : 거래 총액 감소와 활동량 증대
2024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575억 달러(약 77조 6,250억
원)로 전년 대비 약 12% 하락했다. 하지만 거래 건수는 오히려 3% 증가해 4,050만 건에 달하며, 중저가 작품을 중심으로 한 거래 확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¹ 이러한 흐름은 팬데믹 이후 고도화된 디지털 유통 환경과 젊은 세대의 진입에 기인한다.

아트 바젤 & UBS 아트마켓 리포트 2025 – 아트 이코노믹스(Arts Economics) 제공
특히 고가 미술품의 경우, 공개 경매 대신 프라이빗 세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다. 1,000만
달러(약 135억 원) 이상 고가 작품의 경매 낙찰 건수는 39% 급감한 반면, 메가갤러리와 경매사를 통한 프라이빗 세일은 14% 증가하였다.² 이는 단순한 채널 이동이 아니라, 신뢰 기반 유통 구조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관계 자본이 거래의 핵심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 국내 시장의 이중 흐름: 수축과 확장
한국의 전체 미술시장 거래액은 2023년 기준 6,928억 원(약 5억 1,280만 달러)으로
전년 대비 14.1% 감소하였다. 특히 경매 부문은 33% 가까이 하락하며 시장 수축이 뚜렷했다.³ 그러나 이와 동시에
5만 달러(약
6,750만 원) 이하 중저가 작품의
거래는 증가 추세를 보였고, 젊은 컬렉터의 유입 또한 활발했다.⁴
이들은 단지 저렴한 가격에
끌리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정체성, 창작 서사, 사회적 태도 등 작품의 서사와 방향성이 구매 결정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수집’이 단순한
자산 축적이 아닌 취향의 표현과 철학적 소비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 미술시장조사」 보고서 (2023년도 기준) / 예술경영지원센터
3. 가격 투명성과 구매자 신뢰
온라인 유통이 확대됨에 따라
가격 투명성의 중요성도 커졌다. ‘Hiscox 온라인 아트 트레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온라인 구매자의 90%가 “가격이 명시되지 않으면 구매를 주저한다”고 응답했다.⁵ 지금의 미술시장은 가격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가격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능력이 필요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4. 지역 아트페어의 확장과 생태계적 전환
2025년 상반기,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는 약 12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며 지역 미술시장의
성장을 입증했다.⁶ “아트페어대구”’와 “양평아트페스티벌”도 지역성을 기반으로 고유의 기획력과 체험형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양평아트페스티벌”은 단순한 작품 판매를 넘어 지역 예술가
발굴, 관광과 연계된 예술 체험, 커뮤니티 기반의 프로그램으로
‘전시’에서 ‘문화
경험’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⁷ 이는 미술시장이
경제적 유통 구조를 넘어 문화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양평 아트 페스티벌” 포스터
5. 글로벌 진출과 구조적 취약성
한국의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0.6%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⁸ 이는 작가 개인의 경쟁력 부족이 아닌, 작가–갤러리–기관–플랫폼 간의
연계 미비와 장기적 브랜드 구축 시스템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서 발간한 '아트마켓 트렌드 2025’ 표지 /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⁹
- 국제 아트페어 및 비엔날레 진출 확대
- 해외 메가갤러리와의 협업 구조 마련
- 작가별 생애주기 기반 가격 전략 수립
- MZ세대 컬렉터 분석 및 온라인 유통 강화
특히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Why(평판) → How(서사)
→ What(가격)’으로 이어지는 ‘골든
서클’ 전략 모델을 제안하며, 단순한 가격 제시가
아닌, 서사와 신뢰 기반의 설득 구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⁹
결론: 재편의 시대, 생태계 구축의 과제
2025년 상반기 한국 미술시장은 총매출 감소와 거래 방식의 다변화라는
이중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고가 작품은 프라이빗 세일과 같은 비공개 채널로 이동하고, 중저가 작품은 온라인 플랫폼과 아트페어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축소가 아니라 유통 구조와 수요 지형의 재편, 그리고 구매 결정 기준의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중저가 중심의 수요
확대, 신진 작가의 시장 진입, 지역
기반 유통의 활성화, 디지털 채널의 부상과 가격 투명성 강화는 시장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구조는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신뢰, 서사, 연결성이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미술시장의 경쟁력은 단기
매출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설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다. 작가, 갤러리, 플랫폼, 기관이
구축하는 장기적이고 유기적인 연결 구조야말로 한국 미술이 다음 시장 사이클에서 글로벌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이
될 것이다.
‘아트는 끝났다’는 비관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은 시장 질서가 재편되고, 생태계의 기반이 새롭게 구성되는
전략적 전환기이며, 이 전환을 주도하는 주체는 더 이상 가격이 아니라 신뢰와 내러티브, 관계의 구조이다.
References
- Art Basel & UBS, ‘The Art Market Report 2025’, www.artbasel.com
- Maddox Gallery, ‘Is the Global Art Market Turning?’ (2025), www.maddoxgallery.com
- 예술경영지원센터, 「2023 미술시장 결산보고서」, www.kartprice.net
- 위의 보고서 참조
- Hiscox, ‘Online Art Trade Report 2023’, www.hiscox.co.uk
- 「부산일보」 및 「대구MBC」, 2025년 5월 보도
- 문화체육관광부 및 MISULIN 보도자료, 2025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4년 한국 미술시장 국제 비교 자료
-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아트마켓 트렌드 2025』, 2025년 6월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