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이 유가증권처럼 거래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제도는 조각투자 플랫폼의 제도권 진입과 함께 본격화되며, 열매컴퍼니와 아티피오 등의 기업들은 이를 통해 예술과 금융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투자자에게는 ‘아트테크’라는 이름의 새로운 접근을, 발행사에게는 수익모델 다변화와 시장 확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청약률 저조, 발행사 자기 인수 비율의 증가 등 여러 지표가 이 제도가 아직 실질적인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다루는 작품들이 과연 투자 대상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작품의 적합성에 대한 첫 번째 의문

2025년 초, 아티피오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30th May 2021, From the Studio〉를 기초자산으로 제1호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했다.

호크니라는 이름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이 작품은 25점 중 11번에 해당하는 에디션 프린트 작품으로, 희소성과 고유성이 매우 부족한 작품이다. 특히 디지털 기반의 프린트 형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 유동성과 가격 형성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티피오의 기초자산 1호. 데이비드 호크니의 〈30th May 2021, From the Studio〉. 65.5㎝ x 282㎝, ed. 11/25. / 사진 : 아티피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수억 원에 매입해 투자 상품으로 발행한 결정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작가 이름값에 근거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는 작품 선정에 있어 작품의 수준이나 내재 가치보다 외형적 인지도를 우선시한 결과로, 미술품을 자산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선택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큐레이션 역량의 구조적 결여

이 같은 현상은 아티피오의 2회차 증권에서도 반복되었다. 이번에 기초자산으로 선택된 작품은 알렉스 카츠의 작품〈Cymbidium Yellow on Red〉로,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비교적 변형된 스타일의 회화였다. 시장 내 거래 사례도 많지 않고 유동성이 낮은 이 작품은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적이거나설득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청약률은 낮았고, 발행사 자체가 대부분의 물량을 인수해야 했다.


아티피오가 발행한 제2호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의 기초자산인 알렉스 카츠의 〈Cymbidium Yellow on Red〉 / 제공:아티피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마케팅의 부족이 아니라, 큐레이션 시스템 자체의 전문성 결여를 지적하게 한다.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 컬렉션 수요, 유통 채널, 갤러리 레퍼런스 등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조각투자 기반 증권 발행 구조에서는 이러한 심층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 인력 부재의 문제

현재 열매컴퍼니와 아티피오 등 다수의 발행사는 작품 선정과 가치 평가를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해당 과정에 참여하는 미술이론가, 시장 전문가 등의 이름이 외부에 공개되거나 검증된 사례는 드물다.

열매컴퍼니는 독자적인 시장 가치 산정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술품은 실시간 거래소가 존재하지 않고, 시세가 일정하지 않은 자산이기 때문에, 가격 산정은 유사 사례나 작가 이력 등의 정성적 요소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이 과정은 반드시 숙련된 미술 전문가의 눈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제대로 된 작품 가치평가가 부족한 공시자료는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시장의 반응과 구조적 한계

2025년 상반기 기준으로, 아티피오가 발행한 두 건의 투자계약증권은 모두 낮은 청약률을 기록했다. 제1호 호크니 드로잉 기반 증권의 청약률은 39.3%, 제2호 알렉스 카츠 회화 기반 증권은 13.3%에 그쳤으며, 발행사 스스로가 상당량의 물량을 인수하는 구조였다. 이는 공모 상품으로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열매컴퍼니의 경우도 유사하다.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33% 감소했고, 증권 발행 지연과 함께 NFT, 담보대출 등으로의 사업 다변화가 급격히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사업 모델이 아직 정책적, 제도적, 수요적 기반 모두에서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예술적 안목이 없는 금융 실험의 위험

미술품을 금융화하는 시도는 국내외에서 여러 번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술은 단순히 작가의 명성과 외형적 요건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작품 고유의 맥락과 미술사적 위치, 컬렉터 수요의 흐름, 감정기관의 전문성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 발행되고 있는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은 이러한 요소들을 생략하거나 축소한 채, 투자 상품으로서의 외형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투자자에게는 신뢰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안목이다.

미술품을 자산화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적 분할이나 금융적 구조화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시장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전제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큐레이터의 감식안, 미술 시장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문화적 서사를 읽는 능력 없이 만들어진 금융 상품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도 없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디지털 에디션 드로잉을 수억 원대의 투자 상품으로 내세운 결정은, 이 시장이 얼마나 예술에 무지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을 볼 줄 모르는 이들이 만든 상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미술품 증권화 시장의 문제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할 능력과 책임이 없는 이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