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좋은
작품’이라는 말이 미술시장에서 사라졌다.
대신 ‘오르는 작가’, ‘완판된 전시’, ‘잘 팔리는 시리즈’ 같은 말들이 시장의 언어를 지배한다.
작품의 가치는 감동이나 의미로 평가되지 않는다.
얼마에 팔렸는가, 얼마나
빨리 재판매될 수 있는가.
이제 예술의 평가는 이 단순한 숫자 위에 올라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배후에는 냉정한 구조가 존재한다.
이익을 얻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자가 생긴다.
지금 미술시장을 지배하는 이름 —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이다.
우리는 지금,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자본의 논리가 예술의 본질을 잠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순수미술의 위기’
오늘날 미술시장이 보여주는 풍경은 이 주제를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작가는 창작자가 아닌 자산으로 소비된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미술시장은 철저하게 설계된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
욕망과 기대, 투기와 환상이 정교하게 얽힌 구조 속에서.
Speculative
Collecting: 애정 대신 수익을 사는 사람들
한때 ‘수집’은 애정과 헌신을 뜻하는 행위였다.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작가의 세계에 공명하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컬렉터들은 작품에 감동하기보다
"이 작가, 얼마나 오를까?"를
먼저 계산한다.
작품의 의미나 진정성은 뒷전이다.
전시 이력, 갤러리 계약, SNS 팔로워 수
같은 외형적 지표가 작품의 가치를 대신한다.
작품은 ‘소장’되지 않고 ‘보유’된다.
그 시간은 언제나 짧고, 목표는 단 하나. 차익
실현.
Pump
and Dump: 설계된 상승, 설계된 방치
특정 작가가 ‘뜬다’는 말이 퍼지는 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몇몇 컬렉터와 딜러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대량 매입하고,
전시를 열고, 언론 노출을 유도하며, SNS 바이럴을
촉진시킨다.
"요즘 이 작가 뜬대"라는 소문이
퍼지면, 경매가 열린다.
낙찰가는 예상보다 높게 형성되고, 시장은 들썩인다.
그러나 이 광풍은 오래가지 않는다.
설계자들은 그 순간에 이익을 실현하고 조용히 떠난다.
남겨진 것은 이름뿐인 작가와, 비싼 값을 치르고 작품을 떠안은 ‘다음 소유자’뿐이다.
Flipping:
감상 없이 회전되는 이미지들
플리핑은 작품을 사는 순간부터 되팔기를 전제로 한다.
작품은 집에 걸리는 시간보다, 경매장에 다시 오르는 시간이 더 빠르다.
감상은 사라지고, 작품은
공간을 채우는 대신 경매 리스트를 채운다.
중요한 것은 오직 매각 타이밍.
작가는 긴 호흡의 서사를 쌓을 여유를 잃고,
'가치 있는 작가'가 아니라 '거래 가능한 작가'만이 생존한다.
작품은 철학에서 그래프로,
이야기에서 숫자로 변환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미술은 미술이기를 멈춘다.
Market
Price Rigging: 우연을 가장한 시세
조정
몇 점의 작품이 비공개로 고가에 거래된다.
곧이어 경매에 등장해 예상가를 훌쩍 넘긴 낙찰가를 기록한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고,
SNS는 환호한다.
모두가 믿는다 "진짜 스타가 나타났다"고.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정교하게 짜인 시장 가격 조작(Market Price Rigging) 의 흐름이 있다.
시장의 가격은 순수한 수요가 아니라, 기대와 환상을 조종한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우연처럼 보이는 치밀한 연출이다.
Zero-Sum
Game: 이기는 자와 지는 자
이 시장은 공동의 축적이 아니라, 경쟁과 소모의 구조로 움직인다.
누군가 높은 가격에 팔아 수익을 얻었다면, 누군가는 비싸게 사서 리스크를 떠안는다.
작가는 이 구조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먼저 소모되고 가장 빨리 소비되는 존재다.
'성공한 작가'라는 이름은 작가에게 지속성과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구조 안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패자의 자리로 밀려난다.
이 게임 한가운데서,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Speculative
Collecting, Pump and Dump, Flipping, Market Price Rigging, Zero-Sum Game.
이 다섯 개의 키워드는 단순한 비난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으며,
그 소비 구조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기 위한 질문이다.
미술이 다시 사람과 연결되고, 작가의 언어가 다시 해석되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니라 의미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비평이 살아 있고, 큐레이션이
작동하며,
작가의 시간이 존중받는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미술은 결국, '팔리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을
기록하는 영역이다.
누가 이겼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남아 있었는가. 예술은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물화시대: 자본주의와 순수미술의 위기' —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