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입의 미술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주의 체계와 기술혁명,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깊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미술이 존재하는
본질적 조건 자체를 흔드는 지각변동이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이 미술 생태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순수미술"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모호하고 위태로운 위치에 놓이고 있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예술은 순수한가? 아니면 순수미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철학적 사유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이며, 예술교육과 제도, 미술기관과 시장 전반에 걸친 실천적 고민이자 대응
전략과 직결되는 문제다.
자본주의와 예술: 공존인가, 위기인가
미술은 언제나 시대적 조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교회와 귀족의 후원 아래에서 작업했고,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수집가들과 새로운 미술시장 속에서 생존을 모색했다. 20세기 모더니즘이 자유로운
창작의 절정을 구가하던 그 순간에도, 뉴욕의 미술시장과 갤러리 시스템은 이를 지탱하는 막강한 자본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은
"순수미술(fine art)"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술이 실용성과 교환가치에서 벗어나 인간 정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이상을 끊임없이
지켜오고자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이상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100개 가까운 아트페어가 열리고, 작품을 팔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운 작가들이 넘쳐나고 있다. "작품이
안 팔리면 작가가 아니다"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순수한
창작이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한가?
순수미술이라는 환상? 혹은
저항의 가능성
순수미술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했다는 냉소적 시각도 존재한다.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부르주아적 이상으로 포장된 허상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순수미술은 실제로
자본과 무관한 이상적 공간에 존재한 적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기 위해, 일종의 "간극"을
유지하고자 했던 실천의 역사였다.
따라서 순수미술은 실현된 개념이 아니라 실현을 지향해 온 지속적
운동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방향성이며,
끊임없이 자본주의와 기술의 파고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붙잡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인 것이다.
자본주의와 미술 생태계의 위기
오늘날 한국 미술계는 외형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갤러리와 아트페어, 미술관, 공공지원제도, 국제 전시 등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젊은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수의
작가들은 여전히 판매와 생존 사이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술의 다양성과 실험성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시장 중심의 구조는 결과적으로 빠른 결과를 요구하고, ‘팔릴 만한 것’만이 살아남게 만든다. 이는 예술이 지닌 비가시적인 가치, 느리고 내적인 탐색, 실패와 실험의 중요성을 위축시킨다. 그리하여 순수미술은 점차 존재의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결국 순수미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는 하나의 구조적 질문이자, 개별적 실천의 물음이기도 하다. 순수미술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서 지속 가능하냐는 물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예술가 개인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작가는 단순한 창작자에서 나아가, 자율적인
행위자이자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작업이 어떤 맥락에 위치하는지, 어떤 담론을 형성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작업 외적인 활동—글쓰기, 아카이빙, 대화, 플랫폼 형성 등—을 통해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둘째, 제도적 지원은 진정한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 실험적인 작업, 판매와 무관한 예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이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 영역이 균형 있게 조성되어야 한다. 공공미술관, 비영리공간,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이 보다 체계적으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과 비평의 역할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미술이 단순히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임을 확장시키기 위해,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관람자와의
소통, 비평적 해석, 철학적 성찰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는 교육과 미디어, 담론의 활성화를 통해 가능하다.
지금 예술은 위기 속에 있다. 그러나
그 위기야말로 진짜 예술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일 수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 ‘왜 만들고 싶은가’, ‘무엇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를 묻는다면, 순수미술은 여전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고, AI가
창작의 표면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 바로 이 순간, 느리고
무모하며 비효율적인 인간 창작 행위 자체가 가장 저항적이며 가장 순수한 미술일 수 있다. 자본의 구조
안에서도 틈을 만들고, 기술의 파고 속에서도 인간적인 것을 붙잡고, 정답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행위. 그 모든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순수미술의 형식이자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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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fication(물화)은 원래 라틴어 res(사물, thing)에서 나온 개념으로, 인간의 관계, 행위, 사유
같은 비물질적이고 유동적인 것들이 고정된 사물(object)처럼 취급되는 현상을 말한다.
게오르그 루카치 (Georg Lukács) 는 그의 저서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문제로 물화를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자기를 포함한 모든 것을 교환가치로만 인식하게 되면서 인간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인간 자신마저 물건처럼 대상화된다고 본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테오도어 아도르노 (Theodor Adorno) 는 문화
산업이 인간의 감정, 예술, 상상력마저 상품화하고
도식화한다고 비판하며 결국 자율성과 비판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익숙한 형태로 객체화된다고
말한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