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나흘간 열린 ‘아트부산 2025’가 막을 내렸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이 아트페어는 17개국 109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다시 한 번 부산을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거점으로 부각시키고자 했지만, 결과는 반전보다는 현실의 반영에 가까웠다.

‘예술 플랫폼’으로의 진화라는 평가와 동시에, 경기 침체 속 판매 양극화와 서울-부산 간 격차는 여전히 깊게 드리워졌다.


아트부산 2025 행사모습

조용한 개막, 신중한 시장

8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1일까지 열린 이번 행사에는 약 6만 명이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보다 1만 명 감소한 수치다. 행사 주최 측은 “판매 중심에서 벗어나 예술과 사람,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변화를 모색했다”고 설명했지만, 현장의 공기는 차분함을 넘어 다소 한산했다. 첫날부터 눈에 띄는 ‘빨간딱지’는 드물었고, 메이저 갤러리의 부스조차 “개시는 못 했다”는 말이 돌았다.


 
팔리는 자와 팔리지 않는 자

전통 강자들은 여전히 강했다. 갤러리현대는 김보희의 무채색 신작 ‘Towards’ 시리즈 12점을 전량 판매하며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조현화랑은 이배의 대형 회화 및 조각 3점을 모두 판매해 약 7억 원에 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갤러리현대가 선보인 김보희의 〈Towards〉(2025). / 아트부산 제공

조현화랑에서 출품한 이배의 작품 / 아트부산제공

PKM 갤러리는 윤형근, 이원우, 홍영인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 판매로 약 3~4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권오상, 코헤이 나와 등 대표 작가 작품 30여 점을 판매하며 체면을 세웠다.

반면 중소 화랑, 신생 갤러리들은 “한 점도 팔지 못했다”는 전시만을 마치고 철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제 아트부산에서 그림이 팔린다는 말은 옛말”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권오상의 사진 조각으로 눈길을 끈 아라리오갤러리 부스 전경. / 아트부산 제공

기획력은 높아졌지만…

올해 행사는 단순 부스 이상의 기획력으로 주목받았다.
 
《CONNECT 특별전》에서는 김상돈, 권도연, 알렉산더 우가이, 호우이팅 등 6명의 작가가 ‘영토와 경계’를 주제로 구성한 대형 설치와 공간 프로젝트가 페어장 밖 도모헌 야외공간까지 확장되며 예술적 실험을 이어갔다.


‘CONNECT 특별전’에 소개된 김상돈 작가의 작품 / 아트부산 제공

‘CONVERSATIONS 토크 프로그램’은 도쿄 겐다이,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개러지 현대미술관 등 유럽·아시아 주요 기관과 협업해 9개의 세션을 구성, 예술 지형과 협력의 방향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하지만 외형 확장에 비해 실제 작품 구성에서의 실험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미술계 안팎에서는 “특색 있는 기획은 있었지만, “글로벌 아트페어”라 부르기엔 무게감 있는 국제적 작가의 참여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CONVERSATIONS’ 토크 프로그램. (왼쪽) 정석호, 아트부산대표, (가운데)윌렘 몰스워스, (오른쪽) 파비앙 파코리

그나마 주목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으로는 ‘움직이는 아시아 미술 : 주체들과 플랫폼의 지형도Art in Motion: People and Platforms Across Asia’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참가자들은 ‘아트부산 2025’의 ‘CONVERSATIONS’ 프로그램에서 현대미술의 흐름과 아시아 미술 시장의 변화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윌렘 몰스워스는 전통적인 아트페어 형식을 탈피한 Supper Club을 통해 새로운 예술 플랫폼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파비앙 파코리는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현대미술의 국제적 확장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였다.
 
윌렘 몰스워스(Willem Molesworth)는 홍콩 소재 현대미술 갤러리 PHD Group의 공동 설립자이자 디렉터이자 아트페어와 전시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플랫폼 Supper Club의 공동 설립자이다.  
파비앙 파코리(Fabien Pacory) 중국 광저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트 어드바이저, 큐레이터, 그리고 문화 기업가이다. 13년 이상 아시아 미술계에서 활동해왔으며, 국제적인 현대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젊은 작가’는 누구의 관심인가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고 올해 신설된 ‘퓨처 아트 어워드’에서는 WWNN 소속 제프리 청 왕이 수상하며 작품 전량 판매라는 실적을 올렸다. ‘퓨처’ 섹션의 상히읗, 갤러리호호, CDA, 갤러리헤세드 등도 소장가들의 관심을 받았고, 지역 신진 작가를 조명한 ‘아트 악센트’ 섹션에서도 최민영, 이은경 등 작가들의 작품이 고루 판매되며 연결 가능성을 보여줬다.


‘퓨처 아트 어워드’를 수상한 WWNN 갤러리 오주현 디렉터 / 아트부산 제공

WWNN 갤러리, 제프리 청 왕의 출품작 / 아트부산 제공

그러나 “시보조금을 받은 신진작가 전시를 행사장 외진 구석에 몰아넣고 작품 정보도 없으며, 지킴이조차 작가에게 맡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플랫폼으로서의 진화를 말하면서도 청년 작가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VIP는 줄고, ‘동아시아 플랫폼’은 요원

관람객 수는 줄었고, 서울 중심 컬렉터의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이었다. 국내 중대형 갤러리의 일부 불참(학고재, 갤러리바톤 등)은 아트부산의 외형 확장에 제동을 걸었고, ‘동아시아 플랫폼’이라는 슬로건은 아직 실현되기엔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해외 갤러리들의 선전은 눈에 띈다. 탕컨템포러리(홍콩)는 웨민쥔의 〈Peach Blossom〉을 5억 원에, 캐나다갤러리(뉴욕)는 캐서린 번하드의 회화를 약 1.4억 원에 판매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프랑스 컬렉터 파비앙 파코리는 “한국의 젊은 작가에 집중한 아트부산은 차별화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 정체성을 살려간다면 미술사 속 의미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캐나다갤러리(뉴욕)에서 출품한 캐서린 번하드의 회화작품 / 아트부산제공

‘플랫폼’을 꿈꿨지만, 여전히 ‘생존’의 문턱 앞에 선 아트부산

‘아트부산 2025’는 단순한 판매 중심의 아트페어를 넘어, 실험적 기획과 국제 협업, 지역 갤러리의 참여 등을 통해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상업성과 실험성, 중심과 주변, 서울과 지역, 메이저와 신생 갤러리 간의 격차는 여전히 뚜렷했다.
 
아트페어는 예술과 자본이 교차하는 자리다. 전시의 완성도와 글로벌 연계는 중요하지만, 시장 흐름과 구매자 관점에 대한 전략 없이 그 힘은 제한적이다.

 
이번 아트부산이 보여준 과제는 분명하다.

판매 실적을 숨기기보다, 실패도 공유할 수 있는 투명한 거래 구조, 젊고 유망한 작가들의 초대에만 그치지 않고 전시를 통해 제대로 된 작가를 소개하고 양성할 수 있는 기획, 서울 중심이 아닌 지역 컬렉터 기반 확장 전략, 단지 사람을 모으는 이벤트가 아닌,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 플랫폼으로서의 구조 마련이다.
 
정석호 아트부산 대표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계와 신뢰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아트부산 2025’는 그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은 완전히 넘지는 못했다.

결국 아트페어가 지향해야 할 미래는 숫자보다 관계, 흥행보다 구조에 있으며, 그것이 해결될 때 진정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