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llyu! The Korean Wave》전시 공식 포스터 / 사진 : Museum Rietberg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리트베르크 미술관(Museum Rietberg)에서 한국의 동시대 대중문화를 조명하는 대규모 특별전《Hallyu! The Korean Wave》가 2025년 봄부터 현재까지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글로벌 확산 과정을 시각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전시는 1990년대
아시아권에서 시작된 K-드라마와 영화의 인기에서 출발해, 2000년대 K-팝의 세계화, 그리고 오늘날 소셜미디어와 Z세대의 참여를 통해 확장된 디지털 한류까지, 약 30년간의 한류 진화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로서는 함경아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등이 선보이고 있다.

《Hallyu! The Korean Wave》전시 전경 © 리트베르크 미술관, 사진: 파트리크 푸흐스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다섯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함경아 © Kyungah Ham. 작품 제공: 국제갤러리. 사진: 안춘호

《Hallyu! The Korean Wave》백남준 작품 전시 전경 © 리트베르크 미술관, 사진: 파트리크 푸흐스
전시 구성은 주제별
5개 섹션으로 나뉘며,
각 섹션은 오리지널 영상, 포스터, 의상, 메이크업 제품, 설치
작품, 디지털 자료 등을 통해 한류의 주요 장면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어떻게 정체성·기술·글로벌 소통의 결합체로 작동해왔는지를 탐구한다.
이 전시는 2022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서 처음 기획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번 스위스 순회전은 유럽 대륙권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전시이다.
전시 하이라이트
1. 한류의 기원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 군사정권하의 문화통제,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민주화와 함께 열려간 대중문화 산업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다.

2. K-드라마 & 영화
<대장금>, <도깨비>,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세계적인 히트작들의 내러티브와 스타일, 유통 방식, 팬 문화의 형성을 다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 2021 Netflix. All Rights Reserved / 사진: 리트베르크 미술관
3. K-팝
싸이의 ‘강남스타일’부터 BTS, 블랙핑크까지. 아이돌 그룹의 무대 의상, 뮤직비디오 아트워크, 팬덤 전략 등 글로벌 음악 산업 속 K-팝의 혁신을 시각화한다.

K-팝 응원봉 설치 전경,《Hallyu! The Korean Wave》© 리트베르크 미술관, 사진: 파트리크 푸흐스
4. K-뷰티 & 패션
한국의 미용 산업이 아시아와 유럽, 북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디자이너 브랜드와 대중 소비재의 협업 방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미적
감각을 조망한다.

다씨곰의 색동 작품. 사진: 정지훈, 다씨곰 제공 / 리트베르크 미술관
5. 디지털과 팬덤
유튜브, 트위터, 틱톡 등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팬들의 디지털 노동과 커뮤니티, 서브컬처 생성의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 한류가 단지 ‘수출 콘텐츠’가 아닌 ‘참여형
문화’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2011년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YG 패밀리 플래시몹. 사진: 필립 고우먼 / 리트베르크 미술관
이번 전시는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벌 성공을 단순한 ‘K-트렌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화, 창의성, 디지털 기술력, 팬덤 주도의 문화 생산 방식이 어우러진 복합적 현상으로 해석한다. 특히, 동시대 미술과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한류를 읽어내는 시도는 K-Art의
국제적 위상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유럽 내 한국문화 전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스위스 쥐리히의 리트베르크 미술관(Museum Rietberg) 전경 / 사진 : 리트베르크 미술관

스위스 쥐리히의 리트베르크 미술관(Museum Rietberg) 전경 / 사진 : 리트베르크 미술관
리트베르크 미술관(Museum
Rietberg)은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유럽 외 지역의 예술과 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 미술관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비서구권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전시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으며,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명 간의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데 주력해왔다. 취리히
도심의 아름다운 공원 속 고주의 건물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 전시공간이 어우러진
독특한 장소이기도 하다.
아래 글은 전시 도록 《Hallyu!
The Korean Wave》에 수록된 서문
“Introduction: The Hallyu Origin Story”의 편집 발췌본의 번역글 입니다.
한류 – 그 이야기 (Hallyu: The Story)
살아 있는 세대의 기억 안에서, 한국은 1950년대 중반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나라에서 21세기 초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눈부신 도약을 이뤘다.
199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류(Hallyu, Korean Wave)는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 음악 산업의 놀라운 성공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는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세계적 확산과 Z세대의 탄생과도 맞물렸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 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신감을 회복하려 했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민간 자본의 결합은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작가 홍은이(Euny Hong)의 표현에 따르면, 한류는 “현대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빠른 문화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간주된다.
오빤 강남스타일
2012년 7월
15일, 한국의 가수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박재상(PSY)은 유튜브에 ‘강남스타일’을 공개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이 뮤직비디오는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수많은 판매 및 조회수 기록을 경신했고,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적인 팬층을 형성했다. 2014년 5월까지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싸이는 이 한 곡으로 한국을 전 세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일본에서 미국으로의
문화 제국주의
불과 두 세대 만에, 한국의
농촌 풍경과 자연은 기술 중심 도시의 콘크리트 고층 건물들로 대체되었다. 이는 농업, 임업, 어업 중심의 경제에서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 경제로 급격히
전환된 현실을 반영한다. 조선 왕조(1392–1910)로부터
이어진 500년 넘는 성리학적 가치관은 새로운 현실과 급격히 충돌했으며, 한국 사회는 이를 제대로 소화하거나 받아들일 시간조차 없었다.
반면, 20세기
한국은 재난적인 사건들이 빠르게 이어지며 그 궤적을 그렸다. 일본의 식민 지배(1910–1945), 냉전과 함께 1945년 임의로 나뉘어진 분단(북한은 소련, 남한은 미국의 신탁 통치), 그리고 한국전쟁(1950–1953)이 그것이다. 오늘날까지도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았으며, 남북은 기술적으로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 조선시대 민중들이 향유했던 향토
문화는 점차 다른 형태의 오락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오락은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자아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도입된 영화는 1910~20년대 상업 영화관의
증가와 함께 점차 대중화되었고, 이들 영화관에서는 유럽·미국에서
수입된 영화와 일본 자본의 회사들이 제작한 선전 영화들이 주로 상영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식민 정부는 서양 음악과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며 일본이 한반도 문화 지형에서 주요한 영향권을 행사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국이 주한 미군기지 공연과 미군 방송(AFKN)을
통해 주요 문화 영향권을 이어받았다.
1950년대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렸다. 영화는 절실히 필요했던 도피와 오락의 수단이 되었고, 1954년 정부는 국내 영화 제작사에 재정 지원을 제공하여 제작 및 관람 수요를 높였다. 이는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영화 개봉 수와 관객 수가 급증했으며, 이에 따라 더 많은 스튜디오와 영화관이 세워졌다.
군부통치와 문화
보호주의
한국전쟁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를 가져왔고, 이는 1961년 박정희 장군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의 배경이 되었다. 이로써 약 20년에 걸친 독재 체제가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은 제3세계 국가로 분류되었고, 경제적으로 북한보다도 열악한 상태였다.
박정희 정권은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회복을 추진했다. 정부는 취약한 내수 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수출 중심의 중공업 기반 경제를 선택했으며, 몇몇 유망한 기업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이 시기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재벌)이
부상했으며, 세금 혜택과 정치적 후원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무역을 확장했다.
근대화가 가속되면서, 박정희
정부는 일본 식민 영향에서 벗어난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재건하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동시에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윤리위원회 설치와 검열 규제를 도입하며
반체제 표현을 억제했다.
1960~70년대는 라디오와 TV가 대량 보급된 시기였다. 정부는 이를 반공주의와 근대화 메시지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대중은
이를 가정 내 오락 수단으로 소비했다. 대부분의 시청 콘텐츠는 국가의 승인을 받은 버라이어티 쇼, 미국 드라마, 한국 영화 등이었다.
1970년대 말까지 전자산업은 정부의 지원 속에 주요 수출 산업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경제 자유화는 더 정교하고 기술 집약적인 전자 부품(예: 반도체)의 생산으로 이어졌고, 삼성, 현대, LG 및 대학들은 연구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한국은 첨단
기술의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도약했다.
서울에서 세계로 – 민주화로 가는 길
1979년 10월, 박정희가 암살되며 군부 정권은 막을 내렸으나, 곧바로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이어받으며 또 하나의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의 폭압적 통치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혹은 광주학살)이다. 이
시위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주도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공수부대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미지 회복을 위해 전두환 정권은 대중문화를 활용했다. 정부는 ‘3S 정책(Sports,
Sex, Screen)’을 도입했다. 1980년대는
1982년 프로스포츠 리그 출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이어졌으며, 올림픽은 한국이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로
국제 무대에 등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보다 완화된 성 관련 규제는 에로 영화와 비디오 시장의 확장을
낳았다. 한편, 1986년 외국 영화 수입 자유화 이후 헐리우드
영화사들은 한국 내 배급을 직접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국내 영화 산업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음악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새로운 문화 소비자로 부상했고, 이들은 조직적이고 열정적인 팬덤 문화를 형성했다. 컬러 TV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보급과 함께 1980년대는 댄스 음악의 급성장 시기로 기록된다.
한류의 서막 – 억눌림과 억제, 그리고 표현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현대자동차 150만 대의 수익을 능가했다는 소식은, 30년 만에 등장한 문민
정부 김영삼 정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부는 문화 산업이 지닌 경제적 가능성과 수출 가치, 국가 외교력 향상 수단으로서의 잠재력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시기 인터넷은 대학과 연구기관에만 한정되어 있던 것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개방되었고, 한국은 디지털 혁명을 선도적으로 수용하며
ICT 분야에 조기 투자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했지만, 실직한 젊은 세대는 IT 기반 창업에 나서며 빠른 회복의 동력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제조업 중심 산업에서 벗어나 지식 기반·기술 중심 경제와 문화 산업에 집중했고, ‘문화 산업 수출 4배 확대’를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은 혼란과 격변의 20세기를
거치며 강인한 생존력과 적응력을 길러냈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한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했다.
문화 정책, 창조
산업, 디지털 기술이 교차하던 시기에 태동한 한류는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문화 시대에 접어들며 기술 중심의
문화 강국으로서 한국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통을 뛰어넘고, 영향을
섞어내며,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 한국은 이제 세계 대중문화를 재편하는 움직임의 선두에 서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축적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