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예술을 한다는 개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AI가 만든 그림이 유명 경매에서 판매되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는 시대다. 챗GPT,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AI 기반 툴이 등장하면서 창작의 영역에서도 AI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18년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2500달러(약4억9132만원)에 판매됐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더욱 커지고 있다. AI가 만든 작품도 예술로 인정해야 할까?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감성인가, 아니면 기술적 완성도와 효율성인가? AI의 발전이 예술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위협할 수도 있다. AI가 예술을 만들어내는 시대,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창작을 필요로 하는가?


 
바둑기사 이세돌과 AI, 인간이 AI를 따라가는 시대?

2016년, 바둑 역사상 가장 주목받은 대국이 열렸다. 인간 대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AlphaGo)의 대결. 결과는 AI의 4대 1 승리였다.


알파고와 제3국을 시작하는 이세돌 9단 / 구글 제공

전통적으로 바둑은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이 중요한 게임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AI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수를 두며,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냈다. 패배한 이세돌은 후에 이러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AI가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다."

AI가 인간보다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예술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예술가가 더 이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존재가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트렌드를 따라가는 역할로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AI 예술이 단순한 도구인지, 아니면 창작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논의로 이어진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인간과 AI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인간을 기계에 비유했다. 그는 신체를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적 구조로 보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성과 언어에 있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은 단순한 자동기계(automata)이며, 영혼이 없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Res Cogitans)로,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표현이 가능하다. 신체(Res Extensa)와 정신은 별개이며, 정신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240 Old Boy Writer'는 동작을 자동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부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 사진 : Hackaday

데카르트가 말한 기계적 신체는 단순한 물리적 기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규칙과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존재를 의미했다. 그의 기계론은 근대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물리적 법칙에 따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의 AI처럼 데이터 기반의 학습과 자기 최적화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기술과는 구별된다.

즉,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AI와 같은 첨단기술을 통해 지능을 모방하는 존재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 작동 방식과 사고 과정을 기계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철학적 개념이었다. 따라서 AI가 창작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과 같은 예술적 창조성을 가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AI 시대에 적용해 보면, AI는 뛰어난 계산 능력을 가진 ‘기계적 신체’일 뿐이며, 예술적 창의성을 지닌 정신적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AI가 창작하는 이미지와 음악은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한 결과일 뿐, 진정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코끼리도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인가?

한때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코끼리가 붓을 들고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리는 장면.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코끼리도 예술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일본에 사는 10살 아시아 코끼리 '유메카'의 그림 그리는 영상(2018). / 출처 : SBS 뉴스

사실 코끼리는 특정한 패턴을 따라 그리도록 훈련을 받은 것이었다. 코끼리의 그림이 조형적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그 안에 창작의 의도와 감정이 없다면 그것을 예술로 볼 수 있을까?

AI가 창작한 예술도 이와 유사하다. AI는 기존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I가 예술적 의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생성한 작품이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해도, 그것이 단순한 데이터 분석의 결과라면, 인간이 창작한 예술과 같은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예술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예술은 인간의 경험, 감정, 철학, 그리고 창의성이 결합된 행위이다. AI가 뛰어난 창작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의 정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AI는 예술가를 도울 수 있지만,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인간만이 감정을 느끼고, 삶을 경험하며, 그것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 발전 속에서 AI가 주도하는 예술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인간만의 창조적 가치를 지켜갈 것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해서 인간의 창의력을 앞서간다고 해도 예술은 결국 인간이 생산해 낸 인간만의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AI의 결과물을 예술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결과만을 예술이라는 범주로 규정하고 인정하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