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킴(b. 1985)은 정상성을 향해 나가는 세상에서 배제되고 버려진 존재들의 의미와 거기서 발생하는 강렬한 충동적 에너지를 탐구한다. 그는 주로 퀴어,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사도마조히즘, 대중문화, 종교와 신비주의를 주제로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듀킴, 〈내가 조금 더 설렐 수 있게 ♡ Purple Kiss〉, 2018, 단채널 비디오, 3분 56초 ©듀킴

듀킴은 그의 작업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신체가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퀴어적 서사를 시각화하고, 사회 구조와 이분화된 사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해왔다. 예를 들어, 2018년에 발표한 작업 〈내가 조금 더 설렐 수 있게 ♡ Purple Kiss〉에서 듀킴은 HornyHoneydew라는 이름의 샤먼이자 K-pop 아이돌 자아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해 노래한다.


듀킴, 〈내가 조금 더 설렐 수 있게 ♡ Purple Kiss〉, 2018, 단채널 비디오, 3분 56초 ©듀킴

작업은 호모 사피엔스가 샤머니즘을 통해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견뎌 온 샤먼 HornyHoneydew는 금성이 가장 밝게 뜨는 날 허물을 벗은 새로운 인류에게 영혼을 불어넣는 의식을 진행한다.
 
점차 금성과 같이 변화하고 있는 지구에서 살기 어려워진 호모 사피엔스는 이러한 포스트 휴먼으로의 진화를 통해 또다시 번영을 꿈꾸게 된다.


《내가 조금 더 설렐 수 있게 ♡ Purple Kiss》 전시 전경(아카이브 봄, 2018) ©듀킴

이 작업에서 듀킴은 포스트 휴머니즘을 젠더, 섹슈얼리티, 종교와 과학 등을 통해 시각화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 여성 아이돌의 K-pop 노래를 차용하고 샤머니즘에서 찾을 수 있는 Two spirts, Multiple gender와 같은 논바이너리의 확장된 젠더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문화와 사회의 이원론적인 성역할과 이성애 규범적 사고를 해체한다.


듀킴, 〈에프에프36(FF36)〉, 2019, 레이저컷팅된 스테인리스 스틸, led 조명, 프로젝션 맵핑(반복재생), 180x90x90cm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19년 듀킴은 자신이 만든 샤먼 HornyHoneydew를 통해 인류를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불의 사용을 전제로 진화했다 여겨지는 호모 사피엔스의 신화 속에서 불은 창조의 힘이자 변화 혹은 변형의 힘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한국의 샤머니즘에서도 불은 여러 의식에서 다른 영적인 차원으로 운반시키는 매개체로 사용되어 왔다.
 
한편 불은 파괴와 재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에서 지옥을 불구덩이로 묘사하듯이 주류신앙에 반대했던 사람들,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 동성애자들을 형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을 사용하였다.


《화형》 전시 전경(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19)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19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의 개인전 《화형》에서 듀킴은 불이 가진 양가적인 힘, 즉 ‘창조의 힘’과 ‘파괴의 힘’을 통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신인류의 미래를 그렸다. 전시는 기독교 신화의 구조를 거칠게 전유하며, 그 역사에서 박해당한 ‘비천한 이들’을 샤먼 HornyHoneydew의 불의 의식으로써 순수한 존재로 승화시킨다.  


듀킴, 〈환영〉, 2019, 디지털프린트 천, 실, 쇠꼬챙이, 퀴어부적(캘리그라피:김태연), 150x115cm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동성애를 행한 이들을 화형에 처하는 중세의 이미지를 차용한 〈환영〉(2019)은 승화된 희생자를 연상시킨다. 듀킴은 이 영혼들을 위로하고 다른 세계, 즉 탈-이분화된 세계로 보내기 위한 의식으로써 천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붉은 이미지 아래 화염병과 부적을 놓는다. 이는 사로잡힌 영혼을 위로하고 풀어주기 위해 굿을 하고 난 후 부적을 태우는 한국 민속신앙의 의식 행위와 겹쳐 보인다.
 
이처럼 소수자를 처형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불은 그의 작업에서 한국 민속신앙의 주술성을 통해 박해당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해방시키는 방법으로 전유된다. 샤먼 HornyHoneydew가 인도하는 세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차별과 혐오의 이분법적 구도로부터 해방된 다수의 개념이 공존하는 새로운 인간 사회를 제시한다.


《Tangible Error》 전시 전경(d/p, 2020) ©듀킴

이듬해 듀킴은 순수함과 더러움, 성스러움과 비천함, 주체와 객체 등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바탕으로 하였던 지난 작업들을 종합하며, 샤먼이자 자신의 K-pop 아이돌 자아 HornyHoneydew의 두 번째 싱글 작업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Kiss of Chaos〉를 발표했다.
 
2020년 d/p에서 열린 단체전 《Tangible Error》에서 듀킴은 이 음악 작업의 발매 현장을 수메르 여신 이슈타르의 신화와 결합시켜 전시의 형태로 구현하기도 하였다.

《친애하는 공포에게》 전시 전경(아웃사이트, 2020) ©듀킴

한편 2020년 아웃사이트에서 열린 개인전 《친애하는 공포에게》에서 듀킴은 샤먼으로서의 사명을 내려 놓고 ‘사도마조히즘’을 통해 인간의 신체와 마음에 공포와 권력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듀킴은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낸 가학과 피학의 지하감옥을 전시장 지하 공간에 연출했다. 그곳은 외설스러움과 신성함이 도치되고 마조히스트의 굴욕조차 모든 긍정성의 쾌락으로 전이된 장소였으며, 그 안에서는 ‘기관 없는 신체’들이 금기의 쾌락을 향유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듀킴, 〈How to Become a True Post-Human〉, 2020, 스테인리스 스틸, 단채널 영상, 4분 50초, 《친애하는 공포에게》 전시 전경(아웃사이트, 2020) ©듀킴

예를 들어, 공중 감옥에 매달려 있는 항문은 대변이 아닌 말을 배설한다. 지능을 가진 이 구멍은 항문에 대한 억압을 중단하고 항문을 통해 궁극의 쾌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혁명에 대해 논리적으로 역설한다.
 
그 주변으로는 육체를 버린 성기와 유두, 구강과 항문, 손과 발이 그것을 압박하는 도구들에 연결된 채 쇠창살 곳곳에 물신으로 자리한다.


듀킴, 〈신체의 사용〉, 2020, 스테인레스 강, 스티로폼, 레진, 실리콘, LED 조명, 가변크기, 《친애하는 공포에게》 전시 전경(아웃사이트, 2020) ©듀킴

금기의 쾌락으로 연결된 신체 구조들이 만들어 낸 이 장소는 “포스트휴먼의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다.” 상실도 공포도 존재하지 않는 듀킴의 포르노토피아를 지나 텅 빈 무대의 뒤편에 진입하는 순간 공포의 문턱에서 강렬한 쾌락과 몸의 감각을 느꼈던 마조히스트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듀킴, 〈세레모니〉, 2020, 헤드라이트, 스피커, 인체감지센서, 사운드, 8'20", 가변크기, 《친애하는 공포에게》 전시 전경(아웃사이트, 2020) ©듀킴

금기를 쾌락의 작은 도구로 둔갑시키는 안전한 유희의 구조 바깥에서 진짜 공포를 마주하고 역설적으로 감각의 해방을 느낀 자전적 서사를 통해 금기(또는 사회적 질서)라는 표피 속에 숨겨진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I Surrender》 전시 전경(Various Small Fire, 2023) ©듀킴

나아가 듀킴은 2023년 VSF 서울에서의 개인전 《I Surrender》을 통해 기독교적 도상 및 종교적 관습과 BDSM의 개념적 유사성을 다양한 조형적 언어로 풀어냈다.
 
전시에서 작가는 퀴어와 기독교라는 대척점에 놓인 두 주제를 가지고 돔(Domination)과 섭(Submission)의 SM 플레이 구도를 만들었다. 가령 〈In the Garden〉(2023)은 기도하는 손으로 보이는 동시에 SM 플레이에서 피스팅을 하는 돔의 손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은 형태를 따라가다 보면, 점차 두 마리의 뱀 몸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듀킴, 〈In the Garden〉, 2023, 혼합매체 (실리콘 캐스팅, 금속, 비즈), 60x40x20cm, 《I Surrender》 전시 전경(Various Small Fire, 2023) ©듀킴

뱀은 기독교의 구약성서에서 원죄를 상징하지만, 고대에서는 환생과 불멸을 상징하는 창조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이처럼 얽히고 꼬인 형상은 사탄에 대한 기독교적 도상인 동시에 상반된 존재가 연결될 가능성을 암시하며, 금기시 된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In the Garden〉를 비롯하여 이 전시의 모든 작품들은 서로 대립하는 에너지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장면들을 조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각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 목재 프레임, 철창, 창살과 같은 고딕 건축의 요소들과 신체의 살점을 연상시키는 실리콘이 서로 뒤엉켜 있으며, 종교와 퀴어, 그리고 성(聖)과 속(俗)이라는 두 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에너지를 조각적으로 표출한다.

《The Last Scene-부서질수록 확장되는》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23) ©대안공간 루프

같은 해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개인전 《The Last Scene-부서질수록 확장되는》에서 듀킴은 기독교와 퀴어, 그리고 K-pop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중, 기독교와 퀴어의 교차성을 다룬 〈메타템플〉(2022) 프로젝트는 대안 가족으로 기능하는 커뮤니티 공간인 ‘하우스 오브 엑스트라바간자(House of Xtravaganza)’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다.
 
듀킴은 하우스 오브 엑스트라바간자의 핸즈 퍼포먼스와 보깅(손의 제스처를 활용한 안무)을 연구하고, 예수가 걸었던 수난의 길을 ‘손의 표정’으로 표현한 최의순의 손 조각 14점을 보깅 댄스의 핸즈 퍼포먼스로 재해석했다.


듀킴, 〈메타템플〉, 2022, 비디오, 14분 2초 ©듀킴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 즉 퀴어라는 존재에 의해 다시 움직이게 된 예수의 손은 〈메타템플〉이라는 대안적 종교 사원 안에 자리하게 된다. 듀킴은 퀴어와 기독교가 대립되는 세계가 아닌 서로 연결되어 보호하는 〈메타템플〉이라는 사원을 통해 이성애적 가치에서 배제된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보호공간을 제안한다.


《The Last Scene-부서질수록 확장되는》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23) ©대안공간 루프

한편 영상 작업 〈라스트 씬〉(2023)에서 작가는 K-pop 무대의 마지막 장면과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연결시킨다. 작가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최대한 극적으로 표현하는 K-pop의 구조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마무리되는 기독교적 서사 구조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제 자신을 불살라 무대를 마친다는 일종의 성스러움과 엑스타시로 환호하는 관객은 예수의 순환과 부활이라는 메타포와 오버랩된다.
 
면류관 형태를 한 샹들리에 〈룩 LOOK〉에는 개인 방송을 위한 링라이트 조명과 아이폰이 매달려 있다. 이 작업은 인스타그램 필터를 통해 관객이 제 자신의 얼굴을 배제된 이들의 얼굴로서 투사해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듀킴, 〈룩 LOOK〉, 2022, 철, 알루미늄, 점토, 네온 라이트, 라이트 스틱, 3D 프린트 레진, 아이폰, 혼합 매체, 115x75x30cm ©대안공간 루프

이처럼 듀킴은 변화와 충돌의 임계점에 있는 예술, 종교, 정체성의 다양한 교차점을 자신의 신체를 포함한 여러 매체를 통해 다루어 왔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져 온 것들을 예술이라는 일종의 주술을 통해 연결시키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와 생성의 에너지를 가시화한다.
 
이러한 듀킴의 예술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며, 그 균열의 틈새에서 소외된 존재들이 다시 피어 오를 수 있는 대안적인 세계를 제안한다.

 ”저는 불편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저도 사회에서 불편한 존재일 수 있고요. 퀴어의 어원이 ‘이상함’이잖아요. 정상 범주 밖의 것들을 작업으로 드러내 공유함으로써, 이상함을 표출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듀킴, 데이즈드 인터뷰 중) 


작가 듀킴 ©ODDA Korea. 사진: 박정우.

듀킴은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조소과 석사, 건국대학교에서 금속공예 학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The Last Scene-부서질수록 확장되는》(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3), 《I Surrender》(Various Small Fires, 서울, 2023), 《Apocalypse Kiss》(Fragment Gallery, 모스크바, 2021), 《친애하는 공포에게 Dear Fear》(아웃사이트,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The Last Carnival》(PS Center, 서울, 2025), 《How to Destroy Angels》(The Horse Hospital, 런던, 2024), 《능수능란한 관종》(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4), 《Autohypnosis》(지갤러리, 서울, 2023), 《Fanatic Heart》(Para Site, 홍콩, 2022), 《노래하는 사람》(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1),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0), 《포스트-사이버 페미니스트 인터내셔널》(ICA, 런던, 2017) 등 국내외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듀킴은 두산갤러리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ISCP(뉴욕, 미국, 2023),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2),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1)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홍콩 Sunpride Foundation, 뉴욕 The Here and There Collective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