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하 (b.1996)는 반짝이는 동시에 불안정한 오늘날 청춘들의 초상을 그린다. 초상화와 정물화, 풍경화를 넘나드는 그의 회화는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청춘들의 활기찬 모습 이면에 자리해 있는 젊음의 불안을 포용한다.

이목하는 실제 모델이 아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우연히 접한 익명의 얼굴들을 선택해 그림을 그린다. 소셜미디어 속 익명의 청춘들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거나 활짝 웃고 있을뿐,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불안이나 무력감 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청년 세대에게 소셜미디어는 일상을 기록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소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연출은 그들의 속내를 더욱 더 감추게
만든다.

이목하, 〈초연한 생일날〉, 2019, 광목에 유채, 95x85cm ©이목하
이목하는 이러한 연출이 차마 감추지 못한 내면의 틈새를 포착한다. 그는
행복한 모습으로 포장된 일상을 올리는 행위에서 청춘들의 무해한 저항, 즉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이들의 소리 없는 발버둥을 발견한다.
2020년 갤러리 아노브에서 열린 개인전 《방 안의 큰 불》은 이러한
젊은 세대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림들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수집한 익명의
얼굴들과 함께 타오르는 불꽃이 주된 이미지로 등장한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타오르는 불꽃의 움직임은
그림 속에 담긴 인물들의 조용한 저항과 닮아 있다.

작가는 이러한 불꽃을 방 안에 위치시키는데, 여기서 ‘방’은 작가 혹은 그림 속 인물의 내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에는 각자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불꽃이 스스로의 내면을 따뜻하게 밝히기도 하고, 짊어진 마음의 짐들을 불태워 버리기도 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스크린 속 환하고 선명했던 청춘들의 얼굴은 작가의 붓질에 의해
혼탁한 색감과 빛 바랜 톤을 덧입게 된다. 이목하는 네 가지의 색(CMYK)을
차례로 쌓아 올리는 디지털 인쇄기의 출력 방식과 유사한 기법을 사용하여 표면을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겹겹이 쌓인 붓터치의 흔적들과 여러 층의 투명한 물감 레이어는 화면의 과장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내밀한 감정이 서서히 발현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이목하, 〈어두운 빛줄기〉, 2021, 광목에 유채, 145.5x112.1cm ©디스위켄드룸
그리고 이목하의 화면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 듯한 강렬한 빛과 어둠 속으로 밀려난 풍경 사이의 대조가 도드라진다. 이는 회화의 역사에서 극적인 빛의 효과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긴장,
슬픔과 고뇌를 재현하고자 했던 많은 선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늘진 어둠은 색면처럼 추상화되어 화면을 차지하거나, 인물의 얼굴
위로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며 밝은 표정을 흐릿하게 만든다. 마치 피사체를 삼키려는 듯이 화면 속에 자리한
어둠은 개인을 소외시키는 사회를 은유한다.

광목 천 위로 붓질이 겹겹이 쌓아 올려질수록 이미지의 원본은 작가에게서 점점 더 멀리 달아나게 된다. 매끈했던 이미지의 표면은 궤적이 온전히 살아 있는 붓의 흔적으로 흐려지고, 인물의
표정은 색의 촘촘한 레이어 속에 갇힌다.
인물의 형상은 흐릿한 색의 장막에 가려지며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대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감정과 슬며시 겹쳐지게 된다.

이목하, 〈자아 기능 오류〉, 2022, 광목에 유채, 180.2x144.4cm ©제이슨함
이목하는 소셜미디어에서 찾은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독특한 회화 기법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연출해 낸다. 그리고 작가는 개인들이 사진 속에 은근슬쩍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장치 혹은 단서들을 포착하여, 이를 원래의 의미에서 비틀어 화면 곳곳에 이질감을 불어넣는 장난과 위트로 전복시킨다.
이로 인해 화면 속 대상들은 직접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모호하고 이중적인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드러난 대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스러움을 자아낸다.

이목하, 〈자아 기능 오류 04〉, 2023, 광목에 유채, 162.4x130.7cm ©제이슨함
이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성을 지니고 있고 때로는 그로부터 혼란을
느끼곤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으로 나를 대표하는 소셜미디어는, 오늘날 개인의 이중성이 더욱 극명해지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이중성이라는 개념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다.

2023년 제이슨함에서 열린 개인전 《창백한 말》에서는 소셜미디어에서
찾은 동시대 여성 인물들이 연출된 서사 속에서 도발과 침착성, 아름다움과 강렬함, 순수와 타락을 동시에 표현하는 모습으로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언뜻 보면 얇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이 쌓인 물감이 견고하게 드러나는 그의 회화 표면처럼,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띠고 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양가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반영한다.

이목하, 〈Surface Tension 03〉, 2023, 광목에 유채, 194x157.5cm ©제이슨함
예를 들어, ‘자아 기능 오류’(2022-)
시리즈는 성장 과정에서 한 사람의 자아가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사건이나 감정을 다루며 그에 따라 형성된 양가적인 속성들을 담아낸다. 한편, 커다란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Surface Tension’(2023-) 시리즈는 감정이 극한까지 달한 순간의 모습을 더욱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전 작품에 비해 2배 가까이 커진 이목하의 인물화는 관람객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함께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목하는 작은 크기의 캔버스 안에 그려진
여성의 형상이 약자처럼 여겨질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피하고자 캔버스의 크기를 키워 인물이 무대로 등장하는 듯한,
선언적인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목하, 〈자아 기능 오류 02〉, 2023, 광목에 유채, 180x144.4cm ©제이슨함
그리고 작가는 작품을 둘러싼 여러 시점 사이의 관계를 설정한다. 여러
마리의 금붕어가 서로 뒤엉킨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자아 기능 오류 02〉(2023)는 웹상에서 사람들을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동시에 작가 자신도 관찰을 당하는 위치에 있는 이중적인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누군가의 시선과 군상들을 금붕어로, 웹의 스크린을 어항 막으로 삼아 위협적인 정서를 묘사한다.
작가의 전지적 시점을 반영한 작품의 서사는 작품 속 다양한 시선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도달하며 완성된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결된 작품 속 대상들은 지속적으로 관찰자가 자기 자신을 본질적 관점에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목하, 〈어두운 빛줄기 02〉, 2023, 광목에 유채, 227.3x181.8cm ©제이슨함
이처럼 이목하는 젊은 세대의 수많은 얼굴을 바라보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정한 이중성을 그림에 담아 낸다. 얇고 투명한 듯 보이지만 견고한 붓질로 구축된 그의 그림은 이러한 불안정한 감정의 충돌과 동시대적 정체성을
회화의 언어로써 풀어내고 있다.
”제 작품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싶습니다. 멀리서는 사진이라고 생각되지만 가까이 보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리고
난 후에는 작품이 캔버스인지 종이인지도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싶어요.
제 작품을 보고 작가의 성별을 단정지을 수 없길 바라요. 저는 이러한
이중성으로 작품을 가득 채웁니다. 이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을 항상 새롭게 하고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목하, 제이슨함, 2023)

이목하는 세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석사 재학 중이다. 개인전으로는 《FACE ID》(카를로스/이시카와 갤러리, 런던,
2025), 《창백한 말》(제이슨함, 서울, 2023), 《방 안의 큰 불》(갤러리 아노브, 서울, 2020) 등이 있으며,
2023년 아트바젤 홍콩 ‘디스커버리즈’ 섹션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작가가 참여한 단체전으로는 《Karma II》(제이슨함, 프리즈 No.9 Cork
Street, 런던, 2025), 《SeMA 옴니버스: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4), 《능수능란한 관종》(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4),
《인공눈물》(뮤지엄헤드, 서울, 2024), 《Jason Haam: Five Years, Part One》(제이슨함, 서울, 2022), 《0인칭의 자리》(디스위켄드룸, 서울, 2021) 등이 있다.
이목하는 2019년 ‘아시아프
프라이즈’를 수상한 바 있으며, 2024년 ‘아트시 뱅가드 2025’에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
- 제이슨함, 이목하 (Jason Haam, Moka Lee)
- 루이즈더우먼, 이목하 (Louise the Women, Moka Lee)
- 아트인컬처, [New Look] 이목하 – 청춘의 페르소나, 떨림의 순간 (조재연), 2024.04.22
- 아트렉처, 약하지만 강한 존재들의 무해한 저항 – 이목하 개인전: ‘방 안의 큰 불’
- 제이슨함, 창백한 말 (Jason Haam, Innuendo)
- 디스위켄드룸, [서문] 0인칭의 자리 – 박지형 (ThisWeekendRoom, [Preface] Is there any place for us? – Jihyung Park)
- 아트조선, 아릿한 불협화음의 하모니, 마치 ‘이목하’의 그림처럼, 2023.09.27
- BAZAAR, 떠오르는 여성 아티스트 4, 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