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원 (b.1996)은 오래된 도자기 인형을 소재로 한 동시대의
정서를 담은 회화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신진작가다. 작가는 일상에서 수집한 낡고 오래된 인공/자연물들의 형태를 빌어 삶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존재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와 작가 본인이 처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행위의
결과물로서 화폭 위에 그려진다.

최지원은 지금까지 ‘생명이 없는 대상’들을 줄곧 그려 왔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띈 모조품들을 소재로
삼아 개인적인 감각과 경험을 생명이 없는 존재들을 경유하여 표현한다.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대표작
도자기 인형 그림들은 2019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모티프로 삼은 도자기 인형은 17세기 중국 기술을 배워 세라믹
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유럽 기업들이 1800년대 말부터 제작한 인형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인형의 배경보다는 표면과 재질이 지닌 촉각, 그리고
물성 자체에 주목했다.

최지원은 화려하고 매끄러운 표면과 단단한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속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부주의하면 한순간에
깨져버리고 마는 도자기 인형의 이중적인 속성으로부터 동시대의 정서를 겹쳐 보았다. 그로부터 작가는 겉은
빈틈없이 매끄러워 보이지만 늘 불안감과 긴장을 품고 사는 동시대인의 정서와 쉽게 소비된 후 신속하게 폐기되는 ‘요즘의’ 감정들을 빗대어 바라보았다.
이후로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형상을 한 도자 장식품이 가지는 매끈하고 반짝이는 시각적 특성을 인물에 덧발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 속 매끈한 인물들은 폭죽이 터져도 반응하지 않고,
으슥한 숲길에서도 대담하게 걸어가는 등 무감각한 표정을 띄고 있다.

또한 인형의 얼굴이 화면 전체를 채울 만큼 크게 확대되어 그려지거나, 정적인
상반신에 초점을 맞추어 그려졌다. 이로 인해 보는 이는 자연스럽게 차갑고 무표정한 도자기 인형의 얼굴과
시선에 집중하게 된다. 최지원은 이러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함과 무감각한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처럼 매끈하게 빛나는 도자기 인물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요즘의’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을 비롯한 오늘날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불안이라는 정서의 정체는 ‘희망 없음’과
‘무기력’으로 설명된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증폭되는 위기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불안의 감각으로 자리잡았다.
나아가 최지원은 이러한 동시대의 정서를 도자기 인형의 표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하여 표현한다. 가령 뾰족한 가시나 불꽃, 렌즈나 눈물 같은 소재를 함께 그려 넣음으로써
불안한 감정을 다양한 상황에서 드러내어 보인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사물인 인형이 눈물을 흘리거나, 콘택트 렌즈를
끼는 등의 설정은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인형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말한다. 억지로 눈물을 쏟게 하거나, 시력
없는 눈에 렌즈를 끼는 행위를 부여함으로써 마치 감각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이도록 한다.

최지원의 그림에서 이질적이고 대조적인 요소들의 병치는 상반된 질감의 충돌로써 시각 외의 감각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뾰족한 것들의 방해’(2021)
시리즈에서는 매끈한 도자기 얼굴 앞에 뾰족한 가시를 배치시켜 감각의 대비감을 극대화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그의 작품에서 시각을 통한 촉각성은 보는 이에게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야기하며, 내재된 욕망의 측면을 건드린다.

최지원, 〈가시꽃과 여인〉, 2021, 캔버스에 유채, 116.8x72.7cm ©디스위켄드룸
또한 작가는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에 저마다 다른 각도의 빛을 투사하여 하나의 캔버스 안에 이질적인 감각이
충돌하도록 연출한다. 가령 〈가시꽃과 여인〉(2021)은
인형의 피부에 맺히는 반사광과 옅은 반짝임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묘사한 반면 그 배경으로 위치한 화려한 꽃과 가시는 광원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만큼
납작한 양감을 가진다.
이러한 시각적 대비는 깨질 듯한 삶의 연약함과 긴장감을 떠올리게 하며, 화면
앞에서 마치 유리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현재의 선명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2022년부터 그의 그림에는 문, 블라인드, 커튼과 같이 안과 밖을 구분 짓는 막의 형태가 새로운 요소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도자기 인형들 사이 또는 인형과 관객 사이에 놓인 이 요소들은, 폐쇄와
개방을 동시에 암시하며 경계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이 모호한 경계 사이에 위치한 도자기 인형들은 현대인의 불안정하고 복합적인 정서를 더욱 다양한 상황 속에서
투영한다.

이처럼 최근 최지원의 작업은 인형 너머의 공간으로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2023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 개인전 《채집된 방》에서는 도자기 인형을 포함해 생명체를 닮았거나 생명이 있었던
존재들이 놓이는 ‘방’을 구축한 회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최지원은 자신의 방안에 가만히 놓인 장식품, 도자 인형, 오래된 새집 모양의 시계, 창틀에 말라 떨어져 있는 곤충을 바라보며, 덧없는 삶의 가냘픔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작가는 이 실체의 형태와
존재 의미에 집중하며 숨결을 불어넣듯이 붓을 움직이고, 스스로 구획한 초현실적 공간 안에 새롭게 위치시킨다.

자신의 삶을 다해 정지된 사물들은 그의 회화 안에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사이에 자리하게 된다. 이들이 놓인 회화 속 공간은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 건축 요소들로 꾸려지며
그들의 존재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정지된 시간의 방을 항하여〉(2023)은 주어진 공간을 사방으로 분할하면서도 연결할 수 있는 문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 있으며, 〈블루문〉(2023)은 유리창 구조를 통해 인형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방을 이루고 있는 문과 창, 액자 틀, 블라인드 등의 구조물들은 그의 작품에서 삶과 죽음의 간극을 넘나드는 상징적인 포털로서 기능한다. 관객들은 작가가 열어 둔 방을 하나 둘 들여다보며,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의 마디마디를 떠올리고 그 속에서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최지원의 정물화는 작가의 말처럼 “살아있음과 죽음 사이에 놓여진
작품”이다. 작가는 아름답지만 덧없고, 단단하지만 연약한 사물에서 자기 자신과 주변을 비추어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삶과 죽음, 화려함과 덧없음, 견고함과
연약함이라는 반대의 성질이 교차하는 그의 회화는, 동시대 개인들의 삶 전반에 스며든 무감각함과 고립감, 불안함과 긴장감을 함축적으로 생산하며 우리에게 공감의 정서를 전달한다.
”아름답지만 무섭고, 가깝지만 멀고, 강하지만 연약한 것처럼 상반되고 어긋나는 감정들이 동시에 발현되는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양면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순간들이 모여 현재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과 위로의 정서를 얻었으면 좋겠다.” (최지원,
어반라이크 인터뷰, 2022년 1월호)

최지원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멈춰버린 시간》(박서보재단, 서울, 2024), 《채집된 방》(디스위켄드룸, 서울, 2023), 《차가운 불꽃》(디스위켄드룸, 서울, 2020)이
있다.
최근 참여한 단체전으로는 《Stemming from Umwelt》(탕 컨템포러리 아트, 베이징,
2024), 《Inter-frame》(백스테이지, 상하이, 2024), 《自我 아래 기억, 自我 위 꿈》(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Future Solos 2》(베저할레, 베를린, 2023),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경기도미술관, 안산, 2022), 《사유의 베일》(일우스페이스, 서울, 2022) 등이 있다.
최지원은 2024년 키아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2022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에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박서보재단, 중국 엑스뮤지엄, 호주 화이트 래빗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디스위켄드룸, 최지원 (ThisWeekendRoom, Jiwon Choi)
- 디스위켄드룸, [서문] 차가운 불꽃 – 이가현 (ThisWeekendRoom, [Preface] Cold Flame – Gahyun Lee)
- 메종 마리끌레르 코리아, 인형의 꿈, 2024.05.17
- 현대리바트, [인터뷰] 청춘은 차갑다, 작가 최지원
- 키아프 서울, [ARTICLES] ARTIST INSIDE 2022 : 불안하고 위태로운 청춘의 초상
- 디스위켄드룸, [서문] 0인칭의 자리 – 박지형 (ThisWeekendRoom, [Preface] Is there any place for us? – Jihyung Park)
- 어반라이크, COLLECTOR’S FAVORITE, 202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