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류 (b.1991)는 보통의 대상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가지게 된 정서와 순간의 감각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인물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여러 단면들을
포착하고 생성하여 그것을 화면에 조직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통해 낯익은 대상이 환기하는 사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을 회화적 언어로 표현한다.

윤미류, 〈The Studio I〉, 2020, 캔버스에 유채, 193.9x130cm ©윤미류
그의 초기 작업은 평범한 인물들을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대학원 졸업 후 사진관을 겸하던 화방에서 잠시 일을 하며 그곳에서 온갖 사람들이 가져온 사적인 이미지들을 접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들을 통해 그에 얽힌 개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이미지의 위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윤미류는 주변에 대한 목적 없는 관찰과 상상을 하게 되었으며, 주변
인물들이 공간이나 사물들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모습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윤미류의 초기 연작인 ‘The Studio’(2020-2021)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사흘간 함께 지내며 관찰한 한 목수 부부와 그들의 작업장을 담고 있다. 윤미류는
그곳에서 직접 관찰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다음, 이미지로 포착된 일상의 단면이 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들을 붓으로 옮겼다.

윤미류, 〈Dripping Wet III〉, 2021,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 ©윤미류
2021년 이후로 윤미류는 대상에 대한 관찰에서 나아가 직접 순간에
개입하여 연출을 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변화는 ‘Dripping
Wet’(2021) 연작에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역할과 상황을 지인들로 하여금 수행하게 만들면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화폭에 옮겼다.

윤미류, 〈Green Ray I〉, 2021, 캔버스에 유채, 145.5x97cm ©윤미류
이 연작에서부터 윤미류는 점차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주변
인물들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 대상과 마주보며 그들의 위치를 설정하는 시점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는 연출에 있어서 그림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떠올리는 “감각과
심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중간자”이면서 “회화적 실험과
사건을 위한 알리바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허구적 상황과 감각이 실제 인물과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며, 그것이 어떻게 몸을 가진 존재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윤미류는 드러내고자 하는 감각을 극대화하고자 색이나 물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배경, 사물, 의복, 도구를
선택한다. 이후 그는 연출된 장면을 아이폰이나 라이브 포토(Live
Photo) 기능을 사용하여 이미지로 변환한다.
촬영한 순간의 1.5초 전후의 상황이 함께 기록되는 라이브 포토 기능을
통해 이미지는 철저히 연출된 장면과 빛, 온도, 순간적인
표정과 움직임 등의 우연적인 요소들을 결합하게 된다.

윤미류, 〈Ambush I〉, 2022, 캔버스에 유채, 130.3x89.4cm ©윤미류
2022년 상업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B형 비염 귀염》에서 윤미류는 퍼포먼스라는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한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그림들은 순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 작업을 참고하여 그려졌다. 순간적인
움직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는 평면이라는 세계를 만나 하나의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윤미류의 시선에서 포착된 동작들은 타임라인에서 빠져나와 분명 어떠한 움직임을 내포하면서도 정지한 상태로 평면
위에 고정된다. 회화가 가진 피상성은 퍼포먼스가 가진 본래의 시간성을 걷어 냄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맞춰 흘러갈 내러티브 또한 갈피를 잃게 된다.

퍼포먼스의 순간들은 내러티브에서 벗어나는 대신 찰나에 포착된 색감과 붓질의 리듬으로 새로운 질감을 얻게 된다. ‘Ambush’(2022)와 ‘He’s Getting Too Clingy’(2022)
시리즈의 경우에는 파란색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며 마치 색면처럼 두드러진다. 그러나 각
그림 속 파란색은 그 당시의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 매끈하거나 축축하게 표현되며 순간의 감각적 질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윤미류의 그림은 인물과 사물을 매개로 특정한 환경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찰나의 감각을 포착한다.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구체적인 인물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는 순간이 만들어낸 옷주름, 빛의 반사, 색감 등
우연에 의한 감각적 성질들이 두드러진다.
양효실 비평가 또한 그의 회화가 “인물들이 아니라 회화성에 대한 실천”이라 보았다. 작가는 그에게 익숙한 주변 인물들을 새로운 상황 안에
넣어 그들을 매개체로 삼아 실제와 허구가 교차하는 찰나의 감각을 회화로 담아내는 미적 실험을 수행한다.

2023년 SeMA 창고에서
열린 개인전 《방화광》에서는 이러한 실험을 더욱 심화시켜 인물을 매개로 특정한 장면과 캐릭터를 통해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했다. 윤미류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포착하고자 인물들에게 여러 지시를 내렸고, 인물들은
그의 요청에 따라 움직임과 표정을 만들었다.
실제 인물은 허구적 존재를 연기하게 됨으로써 제3의 인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실제와 허구가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을 회화로 번역한다. 이 전시에서 그의 그림은 인물의 동세와 크기에 맞춰진 각목 틀에 설치되거나,
라이브 포토의 프레임을 길게 늘여 놓은 것처럼 가로로 설치되며 순간적인 움직임의 흔적들을 연달아 보여줬다.

2024년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Do Wetlands Scare You?》에서는 늪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무대로 삼아 연출한 회화적 장면들을 선보였다. 그림 속 장면들은 파괴적인 힘을 가진 늪지대의 마녀를 소재로 한 북유럽의 신화들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스산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가진 늪은 다양한 설화와 신화의 배경이 되어 왔으며,
그곳에서는 인간을 위협하는 정령이나 요정 혹은 괴물이나 귀신이 자주 등장한다. 독특한 모습의
영적 존재로 그려지는 이들은 인간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음으로 몰아넣는 존재로 묘사된다.
윤미류는 이러한 존재들을 이유 없이 인간을 해치는 사악한 영혼 혹은 마녀로 보기보다 다층적 맥락을 함께 탐구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힘과 미스터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작가는 늪을 배경으로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새로운 신화의 단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즉 이 그림들은 이전의 작업보다 더 서사적이고 밀도 있는 연출을 가지고 출발한다. 또한 이전 그림들은 물감의 물성을 통해 반짝이고 생동감 넘치는 표면을 구현했다면, 이 일련의 작업에서 물감의 빛과 질감은 탁하고 질척이며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속 세 여인은 물속에서 함께 손을 맞잡으며 부둥켜 안거나 관객 혹은 서로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의 표면은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일렁이는 물결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며 마치 환영 속으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그림들이 이끄는 곳은 기존의 신화들처럼 죽음이 아니다. 묵직한
붓질로 켜켜이 쌓아 올려진 윤미류의 화면 속에서 이들은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를 향해 매력적인 단서를 제시하며 끊임없이 생명의 불씨를
일으킨다.

이처럼 윤미류는 허구적 존재와 감각이 실제 인물과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며, 그것이
어떻게 몸을 가진 존재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특정 상황과 설정 속에
인물을 배치하고, 디지털 사진과 캔버스 표면을 오가며 여러 물리적인 형태를 연출한 뒤, 이를 화면에 조직하는 과정을 통해 대안의 환경과 구조 안의 다른 종들을 시험하고 상상한다.
이러한 그의 인물화는 회화로 번역된 인물들을 매개로 보는 이의 상상 속에서 무한히 확장될 새로운 서사의 불씨를
만들어 내며, 단순히 그림에 재현된 인물의 형상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사적이고 추상적인 경험으로 이끌어
낸다.
”이들을 통해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단면, 그리고
그들이 나를 통해 스스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담아보려고 한다” (윤미류, 작가노트)

윤미류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예술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Do Wetlands Scare You?》(파운드리 서울, 서울, 2024),
《방화광》(SeMA 창고, 서울, 2023), 《Double Weave》(카다로그, 서울, 2022), 《B형 비염 귀염》(상업화랑, 서울, 2022), 《Not Walking at a Consistent Pace》(Plan C, 전주, 2021)이 있다.
작가가 참여했던 주요 단체전으로는 《Sparks》(파이프갤러리, 서울, 2024), 《K90-99》(L.U.P.O., 밀라노, 2023), 《우연의 시차》(팔복예술공장, 전주, 2023), 《MATCH
BOX Edition 1. 2인조 X》(아트플러그
연수, 인천, 2022), 《전북청년 2022》(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22) 등이 있다.
윤미류는 난지창작스튜디오(2024), 금천예술공장(2023), 팔복예술공장(2022), 아트플러그 연수(2021)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정부미술은행, 인천문화재단, 전북도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윤미류, Miryu Yoon (Artist Website)
- 금천예술공장, 윤미류 (Seoul Art Space Geumcheon, Miryu Yoon)
- 인천문화통신 3.0, 윤미류 인터뷰 (IFCNEWS 3.0, Miryu Yoon Interview)
- 상업화랑, B형 비염 귀염 (Sahang-up Gallery, B-hyeong Bi-yeom Gwi-yeom)
- 이진실, 암류(暗流)로서의 포토제닉 (Jinshil Lee, The Photogenic as an Undercurrent)
- 파운드리, Do Wetlands Scare You? (FOUNDRY, Do Wetlands Scare You?)
- 양효실, 인물화 안 수행적 회화
- 박가희,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인물일까요? —회화적 실험을 위한 도구로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