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시대 미술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주요 국제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 한국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자리 잡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 동시대 미술이 해외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핵심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 미술 기관 및 네트워크와의 지속적인 협업

첫 번째로, 해외 주요 미술 기관 및 네트워크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다지려면, 단순히 해외 전시에 초대받는 것을 넘어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 국제적인 큐레이터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미술관 및 기관과의 공동 기획 전시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발적인 참여보다는 장기적인 협업을 통해 한국 미술이 국제적인 담론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뉴욕, 런던, 베를린, 홍콩과 같은 주요 거점 도시에서 한국 동시대 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해외 큐레이터와 아트 디렉터들과의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 전략과도 유사하다. 무라카미 다카시를 중심으로 한 일본 작가들은 단순히 해외 전시 기회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일본 미술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일본 문화청과 공공 기관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해외 미술계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동시대 미술 또한 공공 기관과 갤러리가 해외 주요 미술 기관과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2023년 10월 말 개관한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은 예술인과 단체 및 예술기업을
대상으로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등 예술 작품의 창·제작 실험부터 시연·유통·창업까지
예술 활동의 전반을 종합 지원하는 예술 특화 플랫폼이다.
서울시 광화문 인근 랜드마크 건물인 ‘트윈트리타워’에 5개 층
(지하 1층, 지상 6~7층, 16~17층)을 임대하여 층별로
창업과 인큐베이팅, 교육과 교류, 실험과 시연 인프라를 제공한다.


글로벌 미술 담론과의 연결

두 번째로, 한국 동시대 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려면, 글로벌 미술 담론과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이 다루는 주제들이 국제적인 미술 담론 속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편이다.

해외 미술 저널인 ‘Artforum’, ‘Frieze’, ‘e-flux’  등에 한국 동시대 미술과 관련된 기고 및 비평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환경, 인공지능, 젠더, 탈식민주의 등 국제적 이슈와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아트 씬에서 활동하는 평론가, 학자, 연구자들과의 협력을 확대하여 한국 미술이 국제적 맥락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남미 현대미술은 국제 미술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구축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들은 글로벌 미술 담론과 연결되는 전략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예를 들어, 리지아 클락과 안토니오 디아스 같은 작가들은 유럽과 미국의 현대미술 흐름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남미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리지아 클락(Lygia Clark) 남미 현대미술을 논할 때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며, 브라질 신구조주의(Neoconcretism)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이다. / 사진:빌바오구겐하임

한국 미술 역시 국제적 흐름과의 연결을 강화하면서도 고유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이 웨이웨이, <한 왕조 항아리를 떨어뜨리다>,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3점, 각 148 x 121 cm. 제공: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또한, 2017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Art and China after 1989: Theater of the World》 전시는 중국 동시대 미술이 글로벌 미술계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2017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Art and China after 1989: Theater of the World》 전시장면 / 사진 : 구겐하임 미술관

이 전시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의 중국 미술을 조망하며,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후앙 용핑(Huang Yong Ping), 쩡판즈(Zeng Fanzhi) 등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서구 미술계가 중국 현대미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하는지를 보여주었으며, 중국 현대미술이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국제적인 미술 담론 속에서 논의되는 방식의 모델을 제시했다.

한국 동시대 미술 역시 주요 미술관과 협업하여 이러한 방식의 대규모 그룹전을 기획하고, 국제적인 맥락 속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작가들의 장기적인 해외 활동 지원 시스템 구축

세 번째로, 한국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한 번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해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제 레지던시 및 연구 기회를 확대하여 작가들이 해외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며 활동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해외 갤러리 및 컬렉터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국제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및 민간 지원을 확대하여 해외 진출을 위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 펀딩, 정부 및 기업의 후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DAAD 베를린 예술가 프로그램, © Jens Ziehe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DAAD 레지던시와 빌라 메디치 레지던시 같은 제도를 통해 신진 작가들에게 장기적인 해외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또한 문화청이 주관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작가들의 글로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 역시 작가들이 일회성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해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미래, 지속적인 국제화에 달려 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국제 무대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단순한 해외 전시 기획을 넘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해외 주요 미술 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미술 담론 속에서 한국 미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미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강한 존재감을 가지려면 미술계 전반에서 보다 체계적인 지원과 열린 태도가 요구된다.

한국 영화산업의 글로벌 성공 사례를 보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까지 한국 영화계는 오랜 기간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해왔다. 이러한 기반을 통해 올 해 개봉한 “미키 17”과 같은 글로벌 차원에서의 영화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키 17” “극한직업 시리즈” 캐릭터 포스터

한국 미술계 또한 단기적인 전시 성과를 넘어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국제적 협업을 강화하고, 글로벌 담론과 연결하며, 작가들의 장기적인 해외 활동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 미술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