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삭(b. 1986)은 전통적인 소조 조형법인 ‘모델링’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의 시각성과 사물,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경험에 대해 질문한다. 그에게 있어서
모델링은 단순히 재현을 위한 수단이 아닌 조형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이며, 문이삭은 이를 ‘덧붙이기’라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오늘날 조각과 물질의 위상을 탐구하는 동시에 이미지와 사물 그리고 인간의 유동적인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물들: 조각적 시도》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17) ©두산아트센터
문이삭은 작업 초기부터 이러한 소조의 ‘덧붙이기’와 함께 사물의 가소성을 반복적으로 실험해 왔다. 특히 그는 제작
공정이 즉각적이고 가소성이 자유로운 합성수지를 주재료로 삼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교차하며 확장하는 이미지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다루어 왔다.
예를 들어, 2017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사물들: 조각적 시도》에서 문이삭은 오늘날 스크린을 통해 인지되는 사물의 시각성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3D 기술로 만들어진 입체-사물이
평면의 스크린을 매개로 드러날 때 충돌하는 시각성을 소조의 기법을 활용해 실험했다.

문이삭, 〈표준원형(지표면, 튜브1, 주전자2)〉, 2016, 스티로폼, 아크릴채색, 에폭시코팅, 23x42x25cm, 34x37x32cm, 36x45x34cm ©문이삭
이를 위해 문이삭은 사용자가 평면과 입체-사물을 대하는 시각성을 기반으로
하는 3D 제작 프로그램의 뷰포트(viewport) 문법을
참조해, 이미지를 물리적 공간 안에서 재병합했다. 이때 그는
스크린 속에서 평면일 뿐인 4개의 시점(위, 전면, 왼쪽, 투시)을 입체로 변환하고 육면체 스티로폼을 기본 재료로 삼아, 이를 열선을
이용해 어떠한 ‘사물’로 만들어 냈다.
그 결과물인 ‘사물’은 열선에 추를 매달아 스티로폼을 깎아 나가는 제작 과정에서 중력, 시간, 재료로 인한 변수가 발생함에 따라 예측하지 못했던 우연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문이삭은 이와 같이 스크린 내부(2차원)와 외부(3차원)의 충돌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표면을 매핑하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변수들이 포함된 모든 것을 일련의 ‘사건’이라 지칭한다.

문이삭, 〈세례요한의 두상 6〉, 2016, 발포폴리스틸렌, 아이소핑크, 에폭시, 레진, 안료, 탈크, 32x43x37cm ©두산아트센터
나아가 이 전시에서 문이삭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기본
입체도형 소스에서 시작해 다양한 사물, 그리고 조각의 가장 전통적인 소재인 인체까지 다뤘다. 이러한 작업에서 작가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인물의 두상이나 신체를 모티프로 삼지만, 특정 도상이 갖는 서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형태적 실험을 위한 요소로만 활용했다.
가령, ‘세례 요한의
두상’(2016) 시리즈에서는 3D 프로그램의 4가지 시점을 기반으로 만든 스티로폼 두상을 전통적인 방식의 소조의 기법을 활용하여 만든 점토 가면으로 덮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래의 도상과 형태는 뒤틀리고 뭉개진다.

문이삭, 〈A-01〉, 2017, 혼합매체, 140x60x45cm,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 봄, 2017)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이처럼 동시대 조각 재료인 합성수지를 이용해 전통적인 조각의 소재를 다루는 문이삭의 작업은 단순히 합성수지가
전통 조각의 재료만큼 미적 가치와 잠재력이 있는지 탐구하는 데에 있지 않다.
윤원화 연구자는 그의 작업에 있어서 진짜 문제는 “조각가가 조각을
하기 위해 기계를 흉내내는 시대에 인체가 조각의 특권적 주체이자 대상으로 제 위치를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 조각가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보았다.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 봄, 2017)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동료 작가 김웅현과 협업한 개인전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 봄, 2017)에서 문이삭이 선보인 인체 군상 파편들은 “기계를 모방하지만 기계가 되지 못하는 작가 자신의 몸체”를 반영하고
있었다.
전시의 제목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인체 군상은“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움직이는 인체를 축복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을 찬미했던
올림픽 정신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 봄, 2017)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약동하는 몸들은 조각나고 훼손된 인체의 파편이 되어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채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원래 각각의 작업은 올림픽과 관련된 특정한 인물들을 구상하는 일에서 출발하였다. 이때 문이삭은 작가 김웅현에게 이 인물들의 구체적인 설정을 의뢰하고, 그렇게
구상된 김웅현의 장치를 개념적 좌대 및 숙주 삼아 인간 군상 조각을 제작했다.
문이삭은 이러한 인체 조각의 형태를 조형하기 위해 모델링 데이터인 3D max
오픈소스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온전한 인체의 형태가 아닌 손, 발, 팔, 다리, 머리 등의 부분들이 분리되어 각각이 여러 개로 분열되거나 중첩되는 형태를 가진다.
형태를 복수로 결합하는 것에 대한 자유로움과 한 형태를 여러 시점으로 지각할 때의 공간적인 감각을 통해 문이삭의
인체 조각들은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궤적을 갖고,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인물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 봄, 2017)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이러한 문이삭의 작업은 3D 모델링 데이터를 따라 CNC 조각기로 스티로폼을 깎아 빠르고 저렴하게 장식적 덩어리들이 생성되는 오늘날 사물들의 순환을 연상시키지만, 그는 단지 이를 모방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로부터 출력된 조각난 몸들이 또 다른 순환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이 새로운 순환은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되며, 각각의
사건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들이 발생하게 된다.

《분신술: 서불과차》 1주차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금천예술공장. 사진: 이의록.
2019년 팩토리2에서
열린 개인전 《분신술: 서불과차》에서 문이삭은 이미지/텍스트
인플루언서로 활동할 참여자들을 초대해 조각의 물질과 경험, 기록이 온라인과 SNS 같은 여타의 시공간 속 좌표로 동기화되는 일종의 분신술을 실험했다.

《분신술: 서불과차》 2주차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금천예술공장. 사진: 이의록.
전시 《분신술: 서불과차》에서 문이삭은 분신술의 형식을 참조한 불로초
조각과 프랍(지형지물)조각을 선보였다. 전시의 부제로 쓰인 ‘서불과차’는
진시황의 신하 서불의 불로초 탐사 여정을 지칭한다. 문이삭은 본 전시에서 관람객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곳곳에 흩어진 불로초를 탐사할 것을 제안하였다.

문이삭, 〈Makutu와 불로초(3주차)〉, 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 ©금천예술공장. 사진: 이의록.
이는 오프라인의 신체적인 경험과 온라인의 축적된 경험들을 중첩, 총체적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분신술이 펼쳐진 전시장의 풍경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변화하였으며, 전시 기간 중 전시와 관련된 모든 이미지들을 인스타그램 계정(@clone_technique)에
리포스트함으로써 관람자의 현재와 온라인의 과거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전시에서 문이삭은 ‘주체적 복제’가
특징인 ‘분신술’을 참조해 이미지와 조각, 전시장을 복제하고 이들의 협응을 실험함으로써, 각종 스마트 기기로
재편된 세상에서 전시 관람 경험은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질문한다.

《BEAM ME UP!》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1) ©금호미술관
이처럼 문이삭은 유동적인 방식으로 재료/사물들의 가소성과 덧붙이기를
실험해 왔다. 이때 덧붙이는 대상은 상황에 따라 물질 자체가 되거나 다층적인 개념이 되며, 작가 자신의 작업과 타인의 작업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공간과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2021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BEAM ME UP!》에서 작가는 사물이 이미지로, 이미지가 사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바뀌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인공 사물’을
진단하기 위해 합성수지 점토로 그리기와 만들기를 교차하며 사물 조각을 직조했다.

《BEAM ME UP!》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1) ©금호미술관
전시 제목 “Beam me up”은
SF명작 ‘스타트렉’(1966-)의 대원들이
공간 이동을 요청할 때 외치는 용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이삭은 이러한 ‘공간 이동’의 형식을 참조하여 사물이 이미지로 해체되고 또 다시 사물로
재조합되는 지점을 탐구하고자 했다.
전시에서 선보인 〈별구름〉(2021)과 〈달빛 곡예단〉(2021) 등 다층적인 이미지가 중첩된 조각 작업은 일상과 예술, 이미지와
사물, 수직과 수평,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오늘날 새롭게
정의된 사물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얼핏 보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오늘날 사물의 위상, 나아가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삶을 녹여낸다.

《Rock & Roll》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2) ©뮤지엄헤드
이후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미지와 사물의 중간 지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상에서의 흙의 조형성과 사물성(Objecthood) 사이를 탐구하는 것으로 확장하여, 일상의 흙으로
세라믹을 조형하는 실험으로 나아갔다.
2022년 뮤지엄헤드에서 열린 개인전 《Rock & Roll》에서 문이삭은 서울의 ‘산’과 ‘바위’에서 출발한
흙으로 만들어진 세라믹 조각을 선보였다. 그는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먼저 서울에 위치한 산인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에 직접 올라 바위를 관찰하며 흙을 채집했다.

《Rock & Roll》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2) ©뮤지엄헤드
그리고 채집한 흙을 미리 만든 조형토 판 표면에 덧입히며 작업을 완성하는데, 여기서
전체 조각의 형상을 담당하는 조형토 판은 대상이 되는 바위를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재현하기보다 일종의 추상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조형토의 형태를 잡기 전 작가는 바위를 서예나 한국화 드로잉을 하듯 종이에 먹으로 옮겨 그린다. 바위의 일부를 넓고 빠른 최소한의 면과 선으로 즉흥적으로 나타낸 붓질의 흔적이 바로 조형토 외곽 형태의 모티브가
되고, 그 면은 산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인다.

문이삭, 〈열개-북한 #1〉(세부 이미지), 2022, 조형토, 흙(북한산), 도판, 1260도 소성, 125x45x60cm, 《Rock & Roll》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2) ©뮤지엄헤드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조형토 판들은 어린이용 입체 퍼즐 장난감처럼 교차되고 포개지며 직립 가능한 상태가 되고
최종적으로 소성 과정을 거쳐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된다. 개별 판이 갖는 정면성과 시점을 여러 방향으로
쌓고 중첩시키며, 또 일부 파기하며 입체를 조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전시장의 조각들은 산과 바위라는 대상과 경험의 증거물로서
흙과 물질을 전면에 드러낸다. 흙이라는 물질을 중심으로, 신체적이고
촉감적인 동시에 직관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써 조각의 발생이 모색된다.

문이삭, 〈리컨스트럭트〉, 2014-2025, 혼합재료, 가변크기, 《미니버스, 오르트 구름, ㄷ떨:안녕인사》 전시 전경(아르코미술관, 2025) ©아르코미술관
이처럼 문이삭은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쌓고 덧붙이며 결합하는 방식으로 동시대의 물질/사물의 위상과 그에 따른 인간의 경험에 대해 다루며, 조각의 존재성과
인식, 조형론과 그 관습에 관해 질문해 오고 있다.
모든 사물이 온라인으로 이행하는 현 시대에 이러한 문이삭의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과 유동성을 획득했을지라도 인간의 신체는 여전히 유한한 사물로서 땅 위에 서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에 의해 저급화된 인공사물에도 여전히 개별적인 삶이 투영된 각각의 모양들과 사물의 가상화, 이미지화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여전히 땅 위에 발 딛고 있는 우리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문이삭, 금천예술공장 12기 입주작가 오픈스튜디오 인터뷰에서 발췌)

문이삭 작가 ©우손갤러리
문이삭은 국민대학교 입체미술전공 학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Rock & Roll》(뮤지엄헤드, 서울, 2022), 《BEAM
ME UP!》(금호미술관, 서울, 2021), 《분신술: 서불과차》 (팩토리2,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미니버스, 오르트 구름, ㄷ떨:안녕인사》(아르코미술관, 서울, 2025), 《White
space》(수림큐브, 서울, 2024), 《UNBOXING PROJECT 3.2: Maquette》(VSF, LA,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 《조각충동》(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Take me Home》(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문이삭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2),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21)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금호영아티스트(2020) 및 SeMA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2017)에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
- 우손갤러리, 문이삭 (Wooson Gallery, Isaac Moon)
- 갤러리SP, [리플렛] 이상한 물건들 (Gallery SP, [Reflet] The Strange Things)
-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 이달의 표지 작가 문이삭, 2021.07
- 두산갤러리, [서문] 사물들: 조각적 시도 (DOOSAN Gallery, [Preface] Things: Sculptural Practice)
- 서울시립미술관, 조각하는 인간 – 윤원화 (Seoul Museum of Art, A person who sculpts – Wonhwa Yoon)
- 스페이스 소, [작품 설명글] 매터데이터매터 (Space So, [Artwork Description] matterdatamatter)
- 팩토리2, [전시 소개] 분신술: 서불과차 (Factory 2, [Exhibition Overview] CLONE TECHNIQUE : SEEKING ELIXIR)
- 금호미술관, [전시 소개] BEAM ME UP! (Kumho Museum of Art, [Exhibition Overview] BEAM ME UP!)
- 뮤지엄헤드, [서문] Rock & Roll (Museumhead, [Preface] Rock & Roll)
- 스팍TV, [금천예술공장]12기 입주작가 오픈스튜디오_6호_문이삭_그리기와 만들기 사이, 중의적 사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