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 (b.1986)는 전 세계 도시 환경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재료인 철재와 일상적인 사물들을 이용하여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설치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의 작업은 공간이 가진 건축적 구조와 문법을 수용하면서도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에 내재된 통상적 관념이나 규범을 비틀어 공간의 수직적 위계와 경계를 지워 나간다.

이요나의 작업은 첼리스트로서 꿈을 키워 나갔던 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팔목이
다쳐 결국 미대에 입학하게 되며 순수 미술을 공부하게 된 작가는, 소리에 대한 그의 집착이 시각적 언어로서의
‘선’으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작가는 연주할 때 고정해주는 용도로 첼로 밑부분에 나와 있는 쇠 스파이크를 보고 “만약 이 스파이크가 공간에 계속 이어져 나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스틸 로드(steel rod)를 이용한
설치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요나, 〈Line works〉, 2012, 철재, 503x712x300cm ©이요나
이후로 이요나는 철재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가기 시작했고, 직접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가며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한때 압도적이고 자유로우며 선적인 소리를 내는 현악기에 매료되었던
작가는, 철재라는 원료가 주는 강인하고 부드러움 안에서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구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실험과 함께, 이요나는 그의 작품이 놓일 공간과의
관계성을 탐구했다. 전시장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것 또한 작가의 음악적 배경이 배후에 자리한다. 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공간의 규모, 그 날의 느낌 등을 파악해
공간에 맞는 응답(respond)을 하듯이, 이요나는 전시가
열리는 공간의 특성이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철재를 이용한 설치 작업 〈Line works〉(2012)는 미니멀리즘과 구성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적인 선의 조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장소 특정적으로 공간에 개입함으로써 공간과의 관계성 그리고 신체적 지각의 변이를 탐구했다.

이요나, 〈Tangential Structures〉, 2013, 철재, 오브제, 가변 크기 ©이요나
한편 〈Tangential Structures〉(2013)에서는 유연한 철제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서로 겹치게 배치하여 카오스적 풍경을 구현하고 감각적인 공간체험을
가능케함으로써 또 다른 방향성과 변주를 보여주었다.
이요나는 작가노트에서 이러한 설치 작업에 대해 “때론 추상적이면서도
서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공간 안에 늘어진 선들은 자유롭고 감각적이며 즉흥적이지만 철재라는 산업성 그리고 기계적인 요소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요나 개인전: 인 트랜짓》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16) ©대안공간 루프
2016년 이요나는 난지창작스튜디오에 교환 작가로 3개월간 머물며 기존의 설치 작업에 한국적인 맥락을 더하는 작업을 구상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과 서울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빠른 이동성에 주목한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공산품(야외 플라스틱 테이블, 편의점 천막, 파라솔 등)을 수집해 서로 다른 시공간을 콜라주 하면서 혼종적인
미지의 장소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 결과물은 같은 해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개인전 《이요나 개인전: 인
트랜짓》에서 더욱 확장된 규모와 진화된 구조로 선보였다. 〈In
Transit〉(2016)은 루프 전시장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건축 구조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측량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공간과 상호 조응 하는 조형적 흐름을 형성한다. 또한 각 층마다 설치된 작품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관객의 공간 체험을 하나의 호흡으로 이끌어 갔다.

《이요나 개인전: 인 트랜짓》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16) ©대안공간 루프
작품은 전시 공간과 반응하는 동시에 공간의 맥락과 이질적인 일상적 오브제들이 곳곳을 점유함으로써 낯선 감각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감각적 차원의 공간을 제안한다. 그 중, 대중교통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손잡이나 안전봉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전환시키는 일시적 통로에 대한 상징물로서 자리하며 전시장은 경계적인 장소로
변모한다.
공상과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공간성이 정교하게 짜인 〈In Transit〉은 어느 시점인지, 또 어떤 곳인지 혼돈을 야기하며
기존의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사이 공간들을 형성해 낸다.

이러한 점에서 이요나의 작업은 공간과의 조화, 소통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작가는 이를 넘어 특정 공간 자체를 작품의 요소로 삼는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작품이 놓일 장소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이해가 우선된다.
이요나는 최대한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물며 관객의 움직임이나 공간성을 관찰한다.
그 다음으로 스케치업이나 블렌더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간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고, 컴퓨터에서
작업의 구조와 배치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7년 OCI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MONOCHROME ON DISPLAY》에서는 미술관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오늘날 미술계를 둘러싼 상업화와 규격화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반영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에서 이요나는 액세서리 매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MDF제
스페이스 월을 이용하여 화이트 큐브 공간의 벽면을 거대한 규모로 덮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마치 상품처럼
조형물들이 줄지어 진열되었다. 조형을 상품처럼 진열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화이트 큐브의 하얀 벽과 어우러져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단색화처럼 보인다.
미술관 벽면을 덮은 거대한 조형 진열장은 오늘날 작업과 전시 이면에서 작동하는 상업화와 규격화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2020년 부산 비엔날레에 출품한 설치 작업 〈En Route Home〉(2020)는 과거 근대조선공업의 중심지였던
부산 영도에 위치한 폐창고의 장소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작가가 주목한 영도라는 지역은 한국 근 현대
산업의 역사만 아니라 6.25 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깃든 이주와 노동의 섬이기도 하다.
이요나는 이러한 맥락을 가진 창고의 천장 구조에 영감을 받아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이어 붙여 미로를 만들고, 그 안에 침대, 맥주 캔, 휴지, 통조림 캔, 칫솔 등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물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과거 산업용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점유한 생활의 흔적들은 영도라는 지역이 가진 삶과
노동의 역학관계를 가시화한다.

2023년 아트선재센터 건물 옆 한옥의 내부 정원에 설치되었던 〈Fountain In Transit〉(2023)은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을
구부리고, 자르고, 용접해 만든 선형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 구조물에는 도시 환경과 가정에서 발견되는 오브제들이 개연성 없이 결합되는데,
서로 연관성이 없는 장소들과 관련된 사물들이 동일한 위계에 놓이며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실내와
실외 등 서로 다른 공간의 개념이 뒤얽히게 된다.

작품 내부에 설치된 샤워 부스 트레이와 샤워 수전은 내부공원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제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분수를 한시적으로 재가동시켰다. 전통적인 조각은 실용적인 기능이 부재한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화이트 큐브 공간에 놓여 왔지만, 이요나는 미술과 디자인, 건축의 영역을 상호 연결하며 기능의 부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오히려 그것의 역기능을 강조한다.

202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공간 배치 서울》에서는 실내와
실외,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물리적/개념적으로
지우는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에 함축된 다양한 층위의 시간과 속도를 연결했다.
전시와 동명의 작업 〈공간 배치 서울〉(2024)는 미술관 바깥에
위치한 한옥에서 출발해 미술관 내부의 계단을 타고 서울의 풍경이 펼쳐진 옥상으로 연결된다. 내부와 외부, 서로 다른 층계를 오가는 전시의 경로 사이에는 침실 가구나 욕실, 주방, 미화 용품처럼 사적이고 실용적이기에 전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을 놓음으로써 미술관이 가진 통념을 뒤흔든다.

서울의 복잡하고 촘촘한 지하철 노선, 분주한 환승역, 신호를 기다리는 인파와 줄 지은 버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
등 작가 개인의 경험과 중첩해 인지한 도시의 움직임과 속도를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을 매개로 꿰어낸다.
또한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에 하차 벨이나 버스 손잡이, 신호등, 벤치 등 우리가 이동 중에 발견하는 사물들을 결합해 작품이 설치된 전통 한옥과 현대적인 미술관 건물에 쌓인
서로 다른 시간성을 지금 이 순간의 시간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처럼 이요나는 유동적이고 선형적인 사물인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과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일상적 사물들을 결합해
다양한 층위의 시공간을 교차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일시적인 구조물들은 특정한 장소의 맥락과 호흡하는
동시에, 그 장소에 얽힌 통념을 깨는 이질적인 사물들을 개입시키며 색다른 공간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공간과의 협업이 성공적인지의 여부는 작업을 설치하면서 알게 돼요. 어느 시점에서 공간이 반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제가 잘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공간이 비로소 작업을 이끌어갈 때 제가 할 일은 끝난 거예요.” (이요나, 메종코리아 인터뷰 중,
2024.08.20)

이요나 작가 ©이요나. 사진: Adam Bryce
이요나는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Wall, Floor, Ceiling》(파인 아트 시드니, 시드니, 2025), 《공간 배치 서울》(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 《An Arrangement for 5 Rooms》(오클랜드미술관, 오클랜드, 2022), 《Kit-set
In-transit》(파인 아트 시드니, 시드니, 2021), 《In transit》(웰링턴시립미술관, 웰링턴,
2018-2019)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작가는 벅스턴 컨펨포러리(멜버른, 2024), 아트선재센터(서울,
2023), 더니든공공미술관(더니든, 2022), 부산비엔날레(부산, 2020), 리옹비엔날레(리옹, 2019), 성곡미술관(서울,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창원, 2016)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이요나는 네덜란드 얀반에이크 아카데미(2021-2022), 뉴질랜드
고벳-브루스터 미술관(2020), 난지창작스튜디오(2016), 금천예술공장(2016)에서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
- Korea Tomorrow, 철재를 이용하여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작가, 이요나, 2016.09.02
- 대안공간 루프, 이요나 개인전: 인 트랜짓 (Alternative Space LOOP, Yona Lee Solo Exhibition: In Transit)
- 비애티튜드, 자기 생명력을 지닌 작업
- OCI 미술관, MONOCHROME ON DISPLAY
- 아트선재센터, 오프사이트 (Art Sonje Center, off-site)
- 아트선재센터, 이요나: 공간 배치 서울 (Art Sonje Center, Yona Lee: An Arrangement for a Room)
- 메종코리아, 요나의 도시,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