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성(b. 1987)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조각의 유산을 현재의
맥락으로 가져와 새로운 형태의 조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전통적인
조각의 기법과 더불어 3D 프린팅, 영상 등 현대의 기법과
재료를 혼용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조형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The Motion Lines》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9) ©오제성
과거의 예술에서 작업의 출발점을 찾는 오제성의 관점은 오래된 작품으로부터 강렬한 감정을 느낀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2019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The Motion Lines》는 작가가 한국에서 우연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여인상을
보고 눈물을 흘린 기억에서 출발한다.
오제성은 자코메티의 조각상에 나타나는 생생한 브론즈 질감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는지, 그리고 그가 작품을 제작했을 스위스의 작업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고 한다. 작품을 중심으로 감성적 교감을 느낀 그 순간, 오제성은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에 존재한 예술가와 공동의 시공간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The Motion Lines》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9) ©오제성
이러한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직선적인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시공간이 중첩된 ‘시간 여행’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개인전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간, 시간, 기억과
그 안에서 총체적으로 형성되는 관계들을 영상과 사진이라는 시각적인 매개체로 연결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서사를 넘나들 수 있는 ‘시간 여행’을
제안했다.

한편 2020년부터 오제성은 한국의 다양한 재래 조각을 세라믹으로
만드는 작업 ‘INDEX’ 시리즈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전국의 이름 없는 불상 등 제도의 보호 바깥에 놓인 비지정 문화재들을 직접 답사하며, 이 전통 재래
조각이 지닌 미학적 가치와 기능, 그리고 내재된 서사에 주목하였다.
이후 작가는 현장에서 본 조각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작업은 동양화의 ‘사의(寫意)’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의는 실제로 본 풍경을 개인의 생각과 함께 재현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형사(形寫)와 반대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오제성, 〈INDEX#1〉, 2020-2022, 나무, 세라믹, 가변설치 ©대전시립미술관
오제성은 ‘사의’의 태도를
가지며 보이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답사를 통해 보았던 당시의 형상이나 감정에 더 비중을 두며
작업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지는 재해석되어 한국 재래 조각이 가진 특유의 해학적 요소가 강조되고, 동물로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 갔다.

오제성, 〈INDEX#3_다보각경도 (多寶閣景圖)〉, 2020, 철, 아크릴, 세라믹, 가변설치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그의 ‘INDEX’ 시리즈의 대표작 〈INDEX_다보각경도〉(2020-2024)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수용되고
재해석된 지점에 주목하며 제작된 작품이다. 이 작업에서 오제성은 서구 박물관의 원형이자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으로 불리는
초창기 개인 수장고의 형태가 청나라에 수입되어 보물을 모아둔다는 의미의 ‘다보각경도’로, 조선에서는 책가도의 형태로 변형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흡수된 대상을
주제로 삼는다.
작가는 실제로 본 다보각경도를 모델로 삼아, 그가 답사한 비지정 문화재를
3D 스캔 기술로 재현한 조각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한 다보각에 모아 두었다. 이때 조각들이 놓인 장식장 선반은 산업용 재료인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제작되었다.

이후 작가는 2022년작 〈INDEX_초천리
미륵불〉부터 3D 스캐닝과 프린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INDEX_초천리 미륵불〉은 김해 진례면에 위치한 무연고 미지정 문화재를 3D 스캐닝한 후, 이를 3D 소프트웨어
상에서 재구축하고, 전통 재료인 도자를 사용해 다시 물리적으로 환원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에는 사진의 방법론(스캔), 3D 소프트웨어의 방법론(성형),
소조의 방법론(거푸집), 도예의 방법론(소성), 3D 프린터의 방법론(평면을
쌓아 올리는 프린팅 방식)이 공존하게 된다.

오제성, 〈INDEX_초천리 미륵불〉, 2022, 세라믹, 나무, PLA, 사진 출력물 ©서울시립미술관
이는 ‘조각’ 제작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형식 실험을 보여준다. 동시대의 기술을 접목시킨 이 조각은 원본과 비슷한
양감과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크기나 형태가 변형되고 뼈대에 흙을 붙이는 구조화 과정이 빠져있을 뿐
아니라 스캔한 데이터를 마치 사진처럼 프린터로 출력하여 구축된다.
그리고 투명 미륵불 내부에는 원본을 스캔 및 촬영하여 얻은 디지털 정보(GPS,
크기, 사진)를 기술한 메세지가 담겨 있어, 훗날 파손되거나 부식되었을 때 디지털 정보를 통해 원본의 정보를 토대로 복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여기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내부 공간을 묘사한 3D 프린팅 조각도 더해져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박물관에 박제된
지정 문화재들과는 다르게 거리에서 인간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하며 연속성을 획득하고 있는 미지정 문화재라는
‘전통’이며 ‘조각’인 것을, 미래의 가상 공간 속에 어떻게 새롭게 위치시키고 그 간극을
노출하며 다시 이어지도록 할 것인지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INDEX’ 시리즈는 현장에서 본 전통 재래 조각의 형상을
기억을 따라 재구성하거나, 현대 기술을 통해 데이터화한 후 다시 손으로 빚는 방식으로 정보의 이동을
실험하는 작업이었다.
자유분방한 형태의 재래 조각에서 출발한 오제성의 조각 작업은 최근에는 완숙한 형식을 추구하였던 한국의 근대 조각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고 있다. 작가는 전통 재래 조각을 ‘사의’의 태도로 접근하는 ‘INDEX’ 작업과 마찬가지로, 선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가진 역사적 맥락과 감각을 자기만의 조형 언어로 번안한다.

예를 들어, 〈비옥토(肥沃土)〉(2023)의 경우 앞선 세대 작가인 박석원의 조각 〈초토(焦土)〉(1967)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인 〈초토(焦土)〉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대지를 음각의 형태로 표현하였다면, 오제성은
〈비옥토(肥沃土)〉에서 이를 양각의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이는 “한국사의 암울했던 시절을,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찰나’로 묘사했다”는
과거 박석원의 인터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제목 또한 ‘초토’와 반대되는 의미인 ‘비옥토’로
지었다.

《Ghost Protocol》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4) ©금호미술관
작품의 일부는 작가가 직접 촬영한 3D 스캐닝 데이터를 활용해 제작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현대의 건축재와 산업재를 사용해 부풀어 오른 형태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량화되고 규격화된 현대의 재료들을 활용함으로써 과거의 감각이 작품을 통해 동시대와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2024년작인 ‘조각에
대한 기억’ 시리즈는 한국 조각사에 대한 작가의 헌정으로서 제작된 작업이었다. 조각가 오상욱의 〈억압에 대한 기억〉(1997)을 참조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세 명의 사람이 머리에 무언가를 지고 일렬로 걸어가는 형태를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의 머리에 얹어진 덩어리 중 하나는 근대 조각의 시초인 김복진의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1938)의 3D 프린트된 얼굴의 일부이며, 다른 하나는 작업 중 버려진 건축용 재료의 포장재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국 조각의 계승 의지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전통과 현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해체하고 통합시킨다.

이처럼 오제성은 한국의 전통적인 감각이 현대의 기술에 기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조각으로 남아 있는 선대의 정신과 특유의 미적 가치를 계승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있다. 조형의 외피 아래 남겨진 것들을 현재의 시공간으로 호명하는 오제성의 작업은,
서구 미술사의 기준에 따라 한국 조각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유실된 가치와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제성은 전통 재래 조각에 내재한 조상들의 자유분방한 기재(奇才)와 한국 근대 조각의 시대적인 질감과 정서를 발견하고, 작품을 매개로
현재와 연결함으로써 전통이나 역사를 ‘단절된 과거’가 아닌
‘연속된 현재’로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와 현재가
작품을 매개로 네트워킹 하는 것. 저는 이것을 서로의 역사가 발생하는 정동(情動)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제성, Portrait of an Artist | Oh
Jeisung (오제성) | Documentary | Riveruns)

오제성 작가 ©디자인하우스
오제성은 국민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입체미술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미국
OTIS College of Art & Design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Ghost Protocol》(금호미술관, 서울, 2024), 《Joyful Sculpture》(The Square, 서울, 2023), 《Playful Sculpture》 (space xx, 서울, 2023), 《Ceramic Art Andenne》(Ceramic Art Andenne, 벨기에, 2022), 《The Motion Lines》(송은아트큐브,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알고 보면 반할 세계》(경기도미술관, 안산, 2025), 2024 조각도시서울, 《페이지 너머》(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2),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2021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썸머 러브》(송은,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오제성은 공간예술창작공간 해움(2023), Ceramic Art
Andenne, Andenne(벨기에, 2022), Ateliers des Arques(프랑스, 2022),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STUDIO(2021)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References
- 아트바바, 송은아트큐브 – [서문] The Motion Lines (Artbava, SONGEUN Art Cube, [Preface] The Motion Lines)
- 비애티튜드, 조각에 깃든 조상님의 멋을 이해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 아트바바, space xx – [서문] Playful Sculpture (Artbava, space xx – [Preface] Playful Sculpture)
-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설명글] 조각충동 (Seoul Museum of Art, [Artwork Description] Sculptural Impulse)
- 금호미술관, Ghost Protocol (Kumho Museum of Art, Ghost Protocol)
- 조각도시서울, 조각에 대한 기억 1, 3 – 오제성 (Sculpture City, Seoul, Memory of Sculpture 1, 3 – Oh Jeisung)
- Riveruns, Portrait of an Artist | Oh Jeisung (오제성) | Document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