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석(b. 1990)은 전통적인 한국화를 매체로 삼아 한국의 전통 철학과 무속신앙을 동시대적 맥락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작가는 돌, 나무, 산 등 우리 주변의 것들을 통해 인간 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잇는 과거의 샤머니즘을 연구하며, 동시대의 예술가로서 오늘날 현대 사회의 다양한 존재들을 영적으로 연결하는 현대적 샤먼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지민석, 〈삼세불〉, 2014, 나무 벽에 회화 설치, 250x350x190cm ©지민석

지민석의 초기 작업은 불교미술의 도상 및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장기 부처’(2014-2016) 시리즈에서 지민석은 인간의 장기 등 해부학적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부처, 천신, 기타 신들의 모습을 재구성하였다.
 
작품 속에서 각 신의 형태 속에는 심장이나 폐와 같은 신체의 장기가 전통적인 불교미술의 도상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 낸다. 신성한 부처의 형태와 인간의 신체 장기를 결합함으로써 형태의 경계를 허묾과 동시에, “모두가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는 불교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지민석, 〈부처〉, 2015, 캔버스에 채색, 오브제 콜라주, 55x43x8cm ©지민석

이러한 전통 종교의 철학적, 도상적 재해석과 경계 허물기는 ‘부처’(2015-2019) 시리즈에서도 이어졌다. 이 시리즈 또한 다양한 불교 도상들을 차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는 마땅히 부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코카콜라 병, 신발, 치약 튜브, 와인 병, 일회용기 등 버려진 물체를 배치하였다.
 
지민석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생각해 무심코 지나치던 사물들을 신성한 신의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 하찮은 존재들을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지민석, 〈석가여래도〉, 2019, 캔버스에 채색, 오브제 콜라주, 250x130cm ©지민석

작가는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질문을 던짐으로써 모든 것이,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천명하고자” 하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쓰레기들을 만약 아기의 눈과 같은 처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느낀다면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의 이유가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지민석, 〈코카콜라〉, 2020-2023, 천에 아크릴, 170x60cm ©지민석

2020년부터 지민석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것들을 종교적 도상에 콜라주하는 작업에서 나아가 그러한 세속적인 사물들을 신의 모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초상화 시리즈 ‘백팔신중도’(2020-2023)는 작가가 직접 먹고, 마시고, 걸치고, 타고, 눈으로 소비한 것들에서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평판, 표준 등)을 떼어내 낯설게 관찰한 결과물이다. 부처나 보살의 모습을 족자에 담은 탱화(幀畵)를 차용하여 그려진 이 초상화들은, 미키마우스, 유튜브, 코카콜라, 에르메스, 비자 등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와 상품을 인격신으로 담아내고 있다. 


지민석, 〈에르메스〉, 2020-2023, 천에 아크릴, 170x60cm ©지민석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치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처럼 숭배되곤 한다. 예를 들어, 명품 브랜드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나 가치를 드러내려는 행위는, 상품 자체보다 그것이 지닌 사회적 상징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대의 일종의 미신이라 보며, 이러한 현상을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라고 비판한 바 있다.


지민석, 〈롤렉스〉, 2020-2023, 천에 아크릴, 170x60cm ©지민석

지민석은 이러한 상품들이 오늘날 신으로 여겨진다면 과연 어떠한 모습을 가질지, 종교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백팔신중도’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본주의 시대의 넓은 의미를 지닌 상징적 존재들에 신체적 속성을 부여하여 인격신으로 만든 후 이들을 종교적 도상 안에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신화적 서사를 만들었다.
 
108개의 신 각각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의 저작 『도덕경』을 해체하고, 108개의 대상을 관찰하며 재조합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대상에 덧씌워진 사회적 상징성을 무시한 채 새로운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그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였다.


지민석, 〈럭키참스〉, 2020-2023, 천에 아크릴, 170x60cm ©지민석

예를 들어, 지민석은 미국의 시리얼 브랜드 ‘럭키참스(Lucky Charms)’의 서사를 살펴보자면, “저 무지개에는 수많은 색과 빛이 숨어있다. 도와 가까운 사람만이 그 수많은 것들을 보아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면 오래 살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작가는 대상의 생김새를 훑어내거나, 해당 브랜드의 사업모델을 역설하여 넘어뜨리기도 하며, 때로는 제품을 소비할 때의 감각을 되새기며, 이를 동양 철학의 구절들과 연결 지었다.

지민석, 〈백팔신중도무〉, 2023, 퍼포먼스 영상, 11분 2초 ©지민석

108개라는 초상화의 수가 말해주듯 ‘백팔신중도’는 대상의 실재를 들여다보기 위한 작가의 자발적 수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수행은 놀이처럼 유희적인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일종의 놀이로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초상화 작업뿐 아니라 전통 종교무용의 형식으로도 이어졌다.
 
종교 의식 퍼포먼스 작업 〈백팔신중도무〉(2023)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무수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판매되는 공간이자 문화생활을 제공하는 이 일상의 공간에서 무용가는 행복을 향한 몸의 언어를 펼쳐 나갔다.  
 
최고은 큐레이터는 이 종교 의식을 통해 “언어와 움직임 사이의 미끄러짐, 대상과 무대의 부조화 등 복합적인 충돌이 전면에 드러내고 만다”고 설명하며, 이로 인한 어색함과 낯섦은 “실재와 관습적 사고 사이에 틈을 벌리는 열쇳말이 된다”고 보았다.


《백팔신중도》 전시 전경(상업화랑 을지로, 2023) ©상업화랑

지민석은 2023년 상업화랑 을지로에서의 개인전 《백팔신중도》에서 이러한 108개의 초상화와 경전, 의식 행위를 종합적으로 선보이며, 전시를 하나의 종교 ‘놀이’ 공간으로 제시했다. 작가는 전시 공간이 108개의 신을 위한 제단이자 작가의 ‘놀이’ 행위를 바탕으로 관객 각자가 새로운 놀이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백팔신중도》 전시 전경(상업화랑 을지로, 2023) ©상업화랑

본 전시에서 작가는 ‘백팔신중도’의 교리를 시각을 넘어 청각과 촉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선보였다. 제례악처럼 차분히 흐르는 〈백팔신중도악〉(2023), 느리고 유연한 움직임의 〈백팔신중도무〉(2023)는 108신의 초상화와 한데 어우러져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전시 공간을 낯선 비일상적인 장소로 탈바꿈 시킨다.
 
지민석은 낯선 표현과 소리들이 어우러진 이 놀이의 공간을 통해, 일상으로 되돌아간 관객들이 만물을 자유로운 관찰의 대상으로 볼 수 있기를, 즐거운 놀이의 대상으로 두기를 바랐다. 

《다대팔경과 문자들》 전시 전경(홍티아트센터, 2024) ©홍티아트센터

이듬해 지민석은 개인전 《다대팔경과 문자들》(홍티아트센터, 2024)에서 ‘백팔신중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자도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108개의 신 각각의 형상을 토대로 한 상형문자를 만들고, 이를 한자 형식의 문자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지민석은 이 문자들에 홍티아트센터가 위치한 부산 사하구 다대팔경(多大八景)의 자연풍경을 엮으며,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조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코신제례》 전시 전경(챔버, 2024) ©지민석

그리고 지민석은 2024년 챔버에서의 개인전 《코신제례》에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일차원적인 도상으로 창작하는 것을 넘어서, ‘코카콜라 여신’을 통해 더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작가만의 종교적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코카콜라 여신의 서사는 한없이 커져버린 태양으로 세상이 불타고 모두가 눈을 뜨지 못하는 때 숯에서 탄생하였다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여신은 눈을 못 뜨는 이들에게 검은 그림자를 내어주고, 인간은 만물을 바라보아 길을 알게 된다. 태양과 대적하는 코카콜라 여신이 태양의 속성과 같은 숯에서 탄생한다는 점은 기존 신화에 많이 등장하는 ‘일체화 현상’과 연관된다.
 
신화 속 ‘일체화 현상’은 대적하는 존재, 즉 미움의 존재를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모순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화의 합리성이다.

《코신제례》 전시 전경(챔버, 2024) ©지민석

또한 코카콜라 여신의 신화에는 신화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숫자 3의 해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코카콜라 여신 신화에서 발견되는 3가지 주요 소재, ‘숯’, ‘호리병’, ‘다리 달린 청어’는 3기능 체계를 따르고 있다.
 
코카콜라 여신이 탄생한 숯의 이중성은 신성을, 태양에 저항하는 어두운 기운이 담긴 호리병은 전투력을, 그리고 늘 코카콜라 여신 곁을 지키는 다리 달린 청어는 물과 땅을 오가는 존재로 숯과 같이 신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어마어마한 개체 수로 인간의 주요 먹거리로 사용되어왔듯 풍요를 의미한다.

《코신제례》 전시 전경(챔버, 2024) ©지민석

사람들에게 자신의 서늘한 기운을 내어주던 코카콜라 여신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을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호리병 속 어두운 기운을 하늘에 뿌린다. 코카콜라 여신과 대적하던 태양과 장군신은 새로운 중재를 맞이하고, 하루 한 번씩 하늘에 떠 있게 되며 이렇게 밤이 탄생한다. 이로써 신화 속 인류는 밤을 보고, 밤을 소유하고, 밤을 알게 되는 주체성을 회복한다.

《코신제례》 전시 전경(챔버, 2024) ©지민석

지민석의 작업 세계는 하나로 고정된 질서나 권력, 자본이 규정한 세계가 아니라, 왜곡된 가치와 소외, 망각이 만연한 세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극단적인 가치 편향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균형에 맞서, ‘중재’를 통해 인간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신화적 내러티브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체성 회복은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여신’ 신화에서 등장하는 커져가는 태양은 서구 중심주의와 자본주의가 가진 절대적 권력과 자기완결적 사유를 상징한다. 이에 저항하는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샤머니즘의 문맥 안에서 다시 쓰이면서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지민석은 이러한 상징의 재맥락화를 통해 서구가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편견이나 환상, 혹은 구원자적 태도를 뒤집는다. 다시 말해,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본과 신앙 사이에서 경계를 허물고, 그 안에서 새로운 주체성과 문화적 위치를 모색한다.

《알고 보면 반할 세계》 전시 전경(경기도미술관, 2024) ©월간미술

지민석은 “예술은 우리를 둘러싼 진지한 놀이를 허물 수 있는 새로운 놀이”라고 말한다. 지민석은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개념들을 하나로 엮어 대립과 반대항의 조건을 허무는 허구 짓기 놀이의 주인이 된다. 자신을 둘러싼 경제, 문화 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개념들을 자기만의 해석틀 안에서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전유한다.
 
이처럼 지민석의 예술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성(聖)과 속(俗)이 서로 혼재되고 화합된 대안적인 상상을 제시하며, 삶의 본질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자문하도록 만든다.

 “예술가란 고대의 샤먼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현대 사회의 샤먼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일상의 존재들과 우리를 어떻게 영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질문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은 예술이라는 새로운 놀이들을 통해 창조된다.”    (지민석, 2024 ARKO 영아티스트데이 청년예술가 포트폴리오 전시: 작가 소개)


지민석 작가 ©Saatchi Art

지민석은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에서 미술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Ritual en Honor a la Diosa Coca-Cola》(Arturo Herrera 문화재단 미술관, 파추카, 멕시코, 2025), 《코신제례》(챔버, 서울, 2024), 《다대팔경과 문자도》(홍티아트센터, 부산, 2024), 《입상진의》(굿스페이스, 대구, 2024), 《백팔신중도》(상업화랑 을지로, 서울, 2023), 《신중도》(삼각산아트랩,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마이애미 아트위크》(Gold Bust Motel, 마이애미, 미국, 2024), 《알고 보면 반할 세계》(경기도미술관, 안산, 2024), 《네오-메타-트랜스-》(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The bureau of Queer Art IV》(Dama Gallery, 캘리포니아, 미국, 2024), 《시간의 흔적》(갤러리A, 서울, 2023), 멕시코 국제 세르반티노 아트 페스티벌 《태평양을 건너서》(과나후아토, 멕시코, 2022), 《경치C》(파추카시립 미술관/마에스트란사, 파추카, 멕시코,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지민석은 2024년 부산 홍티아트센터 레지던시 입주작가 및 멕시코시티 Clavo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21년에는 티후아나 트리엔날 입선, 2018년 멕시코 주립 자치 대학교 미술관 주관 제13회 Arte Abierto 미술상을 수상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