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완(b. 1983)은 여러 미디어에서 수집한 자연의 이미지를 재조합하고 의인화하여 초현실적인 풍경과 상황을 만든다. 마치 동화나 우화, 혹은 세밀하게 그려진 종교화처럼 보이는 그의 회화는 초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믿음의 방식과 심리, 그리고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장종완, 〈Corner of the earth〉, 2010, 캔버스에 유채, 193x130cm ©장종완

인류는 불안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유토피아 혹은 낙원을 그리며 구원을 갈망해 왔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인류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천국’을 그리며 죽음 이후의 약속된 낙원을 시각 예술로 전파하였고,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스스로가 이룩한 산업화를 통해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기적인 합리성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현대 인류는 여전히 끝없는 불안감과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종완은 이러한 지점에 주목하여 그림을 그린다.

장종완, 〈New normal〉, 2010, 캔버스에 유채, 45x27cm ©장종완

그의 초반 작업인 ‘에덴’ 시리즈는 원경 위주의 하늘과 산, 땅 등을 배경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머무르는 전형적인 낙원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풍경 속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정원이나 분재, 이종교배 동물들이 조합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불편함이 느껴지는 극도의 이상적인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풍경과 상황들의 바탕은 다양한 곳에서 온다. 예를 들어, 작가는 종교 선전물, 선전 포스터, 달력 그림 등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가에게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들로, 친숙하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괴리감을 유발한다.

장종완, 〈Happy garden〉, 2013, 캔버스에 유채, 60.5x40.5cm ©장종완

장종완은 이처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단적으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덮어낸 낙원의 풍경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극도로 이상화 되고 편향된 이미지의 전형적인 구도와 모티프를 차용하여 불안감으로 차 있는 미래의 모습을 모순적으로 드러내고, 천국으로 비유되는 이상적인 사회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다. 


장종완, 〈I hear your voice〉, 2014, 리넨에 유채, 45.5x53cm ©장종완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는 유년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울산에서의 경험이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크기의 조선소, 대규모 자동차 공장, 석유 공단 등 대기업에서 제공되는 월급, 복지제도 등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풍요로웠던 울산의 모습 이면에는 사회주의 국가를 연상시키는 기업 총수에 대한 찬양, 전쟁을 방불케 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등 기묘하게 뒤틀린 낯선 풍경들이 존재했다.
 
장종완은 이러한 자신의 기억과 경험 속 풍경들이 과거가 아닌 현재, 울산을 벗어난 현실 곳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천국의 모습을 기묘한 신세계의 형태로 풀어냈다.


장종완, 〈Pieta〉, 2019, 한지에 과슈, 194x130cm ©장종완

이후 작가는 ‘에덴’ 시리즈에서 버섯이나 브로콜리, 인삼, 밀크 씨슬처럼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식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작가는 이러한 식물들을 의인화하여, 영생과 미용을 위한 인류의 맹목적인 믿음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우화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Organic Farm》 전시 전경(아라리오갤러리, 2017) ©장종완

2017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Organic Farm》에서 장종완은 낙원의 풍경을 동물의 가죽 위로 옮겼다. 동물의 죽음 위에 그려진 평화롭고 행복한 목가적인 풍경들은 인간 중심의 사회 이면에 가려진 잔혹함을 모순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가죽 회화’ 시리즈 초기에는 “이 가죽의 원래 주인인 동물이 죽기 전에는 좋은 데서 뛰어놀지 않았을까? 사후에는 좋은 곳에 갔을까”처럼 해당하는 동물이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았을지, 죽은 후에 어디로 갔을지를 상상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려졌다. 


장종완, 〈He spoke and all was still〉, 2015, 사슴 가죽에 유화, 110x155cm ©장종완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희생된 동물을 애도하고, 인간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짐에도 동물의 죽음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인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종완은 이러한 고민을 해오며 처음에는 작가의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가죽을 사용하였으나 이후에는 인조 가죽이나 가죽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을 구매해 동물 모양으로 가공하기도 했다. 

장종완, 〈Walk with god〉, 2016, 염소 가죽에 유화, 75x53cm ©장종완

그의 회화는 동물의 가죽과 털,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인간의 이기심으로 희생된 동물들의 존재와 인간의 잔혹함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똑같은 동물의 가죽일지라도 그것이 옷이나 신발, 가방의 형태를 취하면 쉽게 죄의식을 잊곤 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 존재를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외면해온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프롬프터》 전시 전경(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020) ©장종완

2020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프롬프터》에서 장종완은 전시 공간을 연설대처럼 무대화 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국제 정치 담론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이 전시는 “표면적으로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이해관계에서 치열하게 짜고 치는” 모습이 마치 “연극적으로 느껴졌”던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특히 작가는 회담장을 비롯해 정치 담론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치밀하게 계획되어 놓인 그림과 조각 등의 사물들에서 연극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프롬프터》 전시 전경(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020) ©장종완

실제로 각국의 대통령 집무실, 의사당, 회담장 등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이나 소품 모두 지도자의 권위와 그 나라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 마치 연극무대 한편에 몰래 자리 잡은 ‘프롬프터’처럼, 이들이 상징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치적 기호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장종완은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그의 작품들로 정치공간이 하나의 잘 꾸며진 연극무대와 다름 없음을 시사하고자 전시를 꾸렸다. 작가는 풍자의 의도보다는 해당 공간이 가진 미장센이 정치인이나 회담을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아우라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순수하게 미술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

《GOLDILOCKS ZONE》 전시 전경(파운드리 서울, 2023) ©작가 및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2023년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GOLDILOCKS ZONE》에서 작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보여온 풍경에 대한 관심을 우주로 확장해 진화, 개량 등의 개념에 농업과 퓨처리즘을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농촌과 목가적 소재로 우주적이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장종완은 그간작업에서 애용해 온 동식물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불러오는 한편, 서양란 꽃을 참조해 인물의 독특한 머리모양을 그리는 등 새로운 모티프를 사용했다.

《GOLDILOCKS ZONE》 전시 전경(파운드리 서울, 2023) ©작가 및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제목인 ‘골디락스 존’은 영국의 전래동화인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금발 소녀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동화 속에서 숲속을 헤매던 골디락스는 곰 세 마리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접시에 담긴 적당한 온도의 수프를 먹고 기뻐하며, 적당히 편안한 침대에서 잠이 든다.
 
현재 이 단어는 이상적이고 최적인 경제 상황을 뜻하는 경제 용어, 그리고 행성이 지구와 유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항성 주변의 구역을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GOLDILOCKS ZONE》 전시 전경(파운드리 서울, 2023) ©작가 및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서양란 모양의 머리나 작은 요정 같은 겉모습을 띠는 작품 속 존재들은 평온한 농가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거나 논밭의 채소를 수확한다. 낯선 모습의 이들은 익숙한 배경 속에서 묘하게 시선을 끈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작품 속 장면들은 다가올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인 동시에 지구온난화 이전의 목가적인 과거 풍경에 대한 회고이자 지금의 지구 풍경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현재이기도 하다.
 
장종완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골디락스 존, 즉 지구를 대체해 이주하여 거주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가 과거에 이미 존재했는지, 혹은 현재 존재하는지, 혹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가깝거나 먼 미래에 존재할지 함께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GOLDILOCKS ZONE》 전시 전경(파운드리 서울, 2023) ©작가 및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아울러, 전시를 관통하는 또 다른 주제는 상반하는 개념들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함이다. 작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식물, 농업, 녹색의 개념이 품은 여러 이야기를 한 화면에 결합해 SF적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동시에 기괴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유기농’ 마크를 단 제품이 잠식해 나가는 시장의 모습이나 기하학적으로 개간된 논과 밭, 궁극의 아름다움과 맛을 향해 개량되어 가는 꽃과 과일은 더 이상 농업이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것만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GOLDILOCKS ZONE》 전시 전경(파운드리 서울, 2023) ©작가 및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장종완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해 인공적으로 변형되고 정복된 자연의 풍경을 담으며, 이상향의 세계를 마냥 아름답게 묘사하는 대신, 그 풍경이 내포하는 기괴하고 뒤틀린 인간 욕망의 민낯을 드러낸다.  

즉 그의 작업은 ‘이상’ 또는 ‘낙원’이라는 환상 이면에 가려진 불완전함, 불안, 공포 등의 감정을 기묘하고도 초현실적인 풍경에 녹여낸다. 그렇기에 언뜻 낯선 풍경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화두는 결코 낯설지 않으며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잠시 멈추어 고찰하게 만든다.

 ”우리의 미래는 가능할까?”    (장종완,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장종완 작가 ©파운드리 서울

장종완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누아르 마운틴》(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4), 《GOLDILOCKS ZONE》(파운드리 서울, 서울, 2023), 《프롬프터》(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 2020), 《Organic Farm》(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17), 《I hear your voice》(금호미술관, 서울, 2014)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광주, 2024), 《커플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4), 《피곤한 야자수》(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 《예술가의 지구별연구소》(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3),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2),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2),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일민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장종완은 2014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8기 레지던시에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