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탁영준(b. 1989)은 퀴어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 그리고 특수한 장소성이 이질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을 추적해 영상과 조각의 형태로 그 구조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유색인종이자 성소수자로서 한국과 유럽에서 경험한 정치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양극화 현상에 대한 작가의 반응으로, 물리적 장소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과 그에 따라 벌어지는 인식 작용, 믿음의 형태, 몸의 태도 등에 주목한다.

탁영준, 〈Salvation〉, 2016, 레진, 종이, 풀, 락카, 176.5x65x65cm, 《The Others》 전시 전경(쾨니히 갤러리, 2016) ©쾨니히 갤러리. 사진: Roman Maerz.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탁영준은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퀴어 혐오를 접하고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둔 유럽으로 이주하게 된 작가는, 그 지역의 교회 건축물을 포함하여 신을 향한 인간의 기도가 빚어낸 다양한 종교적 이미지와 조형물들을 본격적으로 탐색했다.
 
퀴어 정체성을 가진 작가에게 교회라는 공간은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가장 낮은 자들과 이방인에게 열려 있는 사랑과 포용의 공간인 동시에, 보수적인 관습과 규범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교회는, 작가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닫힌 공간”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오랜 인류의 믿음으로 구축된 공간의 역사와 실체를 관찰하면서 그 안에 얽혀 있는 혼종성의 흔적들을 살핀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안소연 아티스틱 디렉터는 “교회의 전통 안팎에 스며든 세속적이고 이교적인 관습을 들춰내려는 시도는 그에게 의문투성이인 종교적 도그마의 오류를 찾고 거기에 작은 균열을 내려는 행위가 된다”고 설명한다.


탁영준, 〈구원〉, 2016, 레진, 종이, 풀, 락카, 176.5x65x65cm ©탁영준. 사진: Elmar Vestner.

이를 위해 탁영준은 인류에게 익숙한 종교적 도상이나 고전 장르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오랜 주류의 역사 속에 자리해오며 정통성을 부여 받아 익숙해진 형식을 활용하는 한편, 작품의 매체, 제작 방식, 주제 사이의 관계를 불명료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익숙함이라는 안전지대에 균열을 낸다.
 
특히 그 중심에 신체를 개입시켜 수작업이 가미된 제작 기법이나 촉각적 시각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불완전성, 몰입적 친밀성, 혼성적 중간성 등을 부각시켜 왔다. 

예를 들어, 2016년 베를린 쾨니히 갤러리에서 열린 기획전 《The Others》에서 선보인 조각 작품 〈구원〉(2016)은, 작가가 수집한 성소수자 혐오 전단지를 레진으로 제작한 전통적인 성모 마리아 형상 위에 콜라주한 작업이다. 작가는 특정 단체에게 있어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종이 낱장들을 흑백 톤에 따라 질서 있게 배열된 미적 재료로만 사용함으로써 전단지들이 담고 있는 도덕주의적 내용을 해체한다.   

탁영준, 〈흩어진 과거〉, 2019, 현대자동차 차체 1대에서 해체된 금속 조각 1,242개, 니켈 도금, 가변크기 ©탁영준.

한편 탁영준은 설치 작품 〈흩어진 과거〉(2019)에서 자동차를 매개체로 삼아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업은 20여년 넘게 현대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근무했던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가에게 있어 현대자동차는 사적인 기억과 급속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경제 성장이라는 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매개체로 다가왔다.

탁영준, 〈흩어진 과거〉, 2019, 현대자동차 차체 1대에서 해체된 금속 조각 1,242개, 니켈 도금, 가변크기 ©탁영준.

작가는 현대자동차 1대의 기본 골격 구조를 무작위로 절단하는 과정에서 단단한 본체가 실은 얇은 철판 겹겹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탁영준은 이로부터 국가라는 단단하고 거대한 집단과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취약한 개인들의 존재를 겹쳐보았다.  

이에 따라 작가는 차체의 단단한 구조를 해체하고 분해하여 기존의 목적성을 제거하고, 마치 유리 표면처럼 주변을 반사하고 투영하는 파편들로 변형시켰다. 이를 통해 단일한 완전체가 아닌, 불완전하지만 각자의 생김새와 특성에 따라 다양한 빛을 발하는 무수한 파편으로서 존재하는 개인들을 상기시킨다.   

탁영준, 〈굴레〉, 2020, 레진, 종이, 풀, 지름 400cm, 제11회 베를린 비엔날레 《The Crack Begins Within》 (KW 현대미술 인스티튜트, 2020) ©탁영준.

2020년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굴레〉(2020)는 이전 작업인 〈구원〉과 같은 방식으로 콜라주하여 제작한 10개의 예수 십자가상으로 이루어진 대형 조각 설치 작업이다. 당시 전시 공간은 거대한 예배당으로 꾸려졌고, 그 가운데 놓인 10개의 팔 벌린 예수상은 서로의 손목을 포갠 채 지름 4미터에 가까운 커다란 원형을 그리는 모양새로 배열되었다.  

이 구성은 보수 개신교 단체 구성원들이 매해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를 막고자 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행렬 앞에 몸을 던져 바닥에 드러눕던 모습에서 착안하여 이루어졌다. 모든 이를 사랑으로 품겠다는 인류애를 상징하는 양팔을 벌린 예수의 형상 위에 그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따른다고 주장하는 일부 단체가 제작한 메시지가 겹쳐지면서, 그 역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탁영준,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 2021, 단채널 HD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18분 45초, 제16회 리옹비엔날레 《Manifesto of Fragility》 전시 전경(Guimet Museum, 2022) ©탁영준. 사진: Vinciane Lebrun.

이처럼 탁영준은 종교적 또는 사회적 맥락이 얽혀 있는 공간이나 사물들이 가진 본래의 목적성이나 기능을 해체시켜 불완전하고 이질적인 상태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물성을 다루는 작업들을 전개해오던 그는, 최근 비물질적인 매체에 촉각적 시각성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오고있다.  

작가는 퀴어 신체와 건축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구조, 체계, 건축은 이성애 규범주의를 기반 삼아 구축됐고, 퀴어 신체는 그에 맞도록 자신을 각색하거나 자신에 맞도록 그 틀을 변형시켜야 했기에 주변 환경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매개체라 볼 수 있다.


탁영준,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 2021, 단채널 HD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18분 45초 ©탁영준

이에 따라 작가는 주변의 복합적인 상황을 고도로 정제하거나 응답할 수 있으면서도, 이를 관객과 소통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용에서 찾았다. 안무가와 무용가 사이의 끊임없는 지령, 대화, 번안은 지속적으로 신체, 접촉, 동작을 부각시키고, 이 담화와 표현은 비물성이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촉각적인 시각성이라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탁영준의 컨템포러리 댄스 필름 연작에는 매우 상이한 조건들이 제시되고 그 안에서 퀴어 신체가 자신을 둘러싼 정황을 예리하게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무용을 통해 양극성의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탁영준,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 2021, 단채널 HD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18분 45초 ©탁영준

팬데믹 기간에 제작된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2021)는 작가의 댄스 필름 연작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이었다. 이 댄스 필름은 베를린에 위치한 유서 깊은 교회와 게이 클럽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양극에 놓인, 서로 상반된 두 공간은 ‘사랑’과 ‘일요일’이라는 연결고리로 결합된다. 안식일이기도 한 일요일에 신자들은 교회로 향하지만 그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클럽에 모이곤 하기 때문이다.
 
필름은 각각 한 명의 안무가와 한 명의 퀴어 댄서가 한 때는 붐볐으나 이제는 인적이 드문 공간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든 공간에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규범이 있기에 이들은 바흐의 피아노 곡에 맞춰 의뢰 받은 공간에 부합하는 안무를 일차적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촬영 당일 작가의 의도된 지시 변경에 따라 이들은 서로 반대 공간에 엇갈려 배치됨으로써 안무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들은 갑작스레 낯선 공간에 들어온 타자가 되었지만, 안무를 번안해가는 과정에서 공간 또한 새롭게 길들여지면서 상반된 두 공간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기 시작한다.


탁영준,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2023, 단채널 4K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18분 53초 ©탁영준

2023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에서 처음 선보인 댄스 필름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2023)의 경우에는, 이중 구조 속에 여러 역사적, 문화적 참조사항들을 배치해 작업의 시공간적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다.
 
영상은 서양의 부활절 기간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세족례가 행해지는 성 목요일의 행렬을 연결고리로 삼아, 퀴어 댄서의 신체를 통해 전통 속에서 극단화된 젠더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을 담고 있다.  

우선 탁영준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세족 목요일에 예수 십자가상을 짊어지고 행진하는 외인부대 군인들의 마초적인 모습에 주목했다. 작가는 1920년 이래 지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이유와 결합하여 기독교 문화에 스며든 초남성성과 군국주의적 정서를 기이하게 바라보며, 그와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행렬을 구상했다.


탁영준,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2023, 단채널 4K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18분 53초 ©탁영준

세족례를 마친 깨끗한 발에서 출발한 작가의 아이디어는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겨지는 여성의 신체를 그려내어 여성성을 극단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발레 마농의 2막 1장의 한 장면을 차용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이 장면을 베를린의 게이 크루징 장소로 유명한 숲길에서 다섯 명의 퀴어 댄서들이 번안하도록 지시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기 위해 다른 댄서들의 신체 위로 올라가는 몸 동작은 십자가상을 연상시키며, 십자가 행렬의 초남성성과 마농에서의 초여성성이 대비되면서도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로 연결된다.


탁영준,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 2024, 단채널 4K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20분 ©탁영준

그의 세 번째 컨템포러리 댄스 필름 작업인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2024)는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구전되는 유기적인 구조를 안무적인 맥락에서 변주시킨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저술가 라스 뮈팅(Lars Mytting)의 소설 『자매 종』(2019)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애정 관계를 주요 서사로 다루는 동시에 중세 목조 교회의 ‘자매 종’에 얽힌 전설, 그리고 전 국가적 근대화와 맞물린 혼종성이 주입된 공동체의 구조적 변화와 건축사를 살핀다.


탁영준,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 2024, 단채널 4K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20분 ©탁영준

이에 착안하여 제작된 영상은 두 명의 십대 후반 여성 무용가가 각자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창작한 안무에서 시작해 두 명의 남성 무용가의 듀엣 안무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번안, 재창작의 과정을 쫓는다. 이야기, 기억, 공감으로 직조된 안무의 조각들은 12세기에 지어진 노르웨이 중세 목조 교회와 퇴역한 대형 여객기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향해 단계적으로 응답하고 중첩하며 점차 그 얼개를 드러낸다.

탁영준,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 2024, 단채널 4K비디오, 컬러, 5.1 사운드, 20분,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 전경(송은, 2024) ©송은문화재단

이처럼 탁영준은 견고한 인류의 역사에서 혼종성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에 내재한 양극의 이야기들과 의미를 촘촘하게 직조하여 융합해 왔다. 이러한 작업은 집단의 이익과 효율을 위해 베타적인 단일성을 강조해온 거대한 구조에 충돌하여 균열을 내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복수의 세계라는 대안적 현실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그 믿음의 피력이 가열 차졌고 매 극단을 내달리는 부류들이 전 지구적으로 가시화되며 분열의 고착은 이제 기반 구조가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체를 두리번거리며 작업하다 보면 그런 구분을 일삼는 주체인 인체만큼 서로 제각각인 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믿음에 따라 그 구성 요소들에 울타리를 지어가며 자기 입맛에 맞는 동질감을 조성하고 저 경계 너머를 손가락질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 작품마다 자기모순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그것만큼 실로 인간적인 게 없지 않을까요?”
 
 
 
(탁영준, 아뜰리에 에르메스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작가와의 대화 중) 


탁영준 작가 ©송은문화재단

탁영준은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에서 미술 월간지 기자로 일을 하기 시작해, 이후 베를린으로 이주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Pain Is Left After the Bite》(필립 촐링거, 취리히, 2024), 《목요일엔 네 정갈한 발을 사랑하리》(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23), 《Double Feature: Young-jun Tak》(율리아 슈토쉑 파운데이션, 뒤셀도르프/베를린, 2023) 등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개최했다.
 
또한 작가는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제4회 방콕 아트 비엔날레(BACC, 방콕, 2024), 《Unsentimental Education》(BB&M, 서울, 2024), 제16회 리옹 비엔날레(기메 박물관, 리옹, 2022), 제11회 베를린 비엔날레(카베 현대미술 인스티튜트, 베를린, 2020), 제1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이스탄불 모던, 이스탄불, 2017) 등 다수의 그룹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탁영준은 제9회 베를린 마스터스에서 젊은 작가에게 수상하는 ‘TOY 베를린 마스터스 상’(2021)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제24회 송은미술대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