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오가영(b. 1992)은 사진의 경계를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 작가는 주로 도시 공간 이면에 존재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카메라 렌즈로 담아낸 다음 후편집을 통해 상상의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색한 사이》 전시 전경 (화이트노이즈, 2021) ©오가영

오가영의 작업은 거대하고 딱딱한 스펙타클의 도시 공간 이면에 생동하는 비인간 존재들의 생태계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표나 상징 등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작업의 대상들은 서울, 베를린, 뉘른베르크, 뉴욕, 헤이그 등 다양한 도시에 거주하고 적응해 온 작가의 이방인으로서의 시각과 감각을 통해 포착된다.

《어색한 사이》 전시 전경 (화이트노이즈, 2021) ©오가영

작가는 카메라 혹은 아이폰을 들고 걸으며 촬영한 사진 이미지를 컴퓨터로 옮긴 다음,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를 편집하거나 왜곡, 후보정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편집한 사진의 레이어를 쌓아가며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과 주관이 개입됨으로써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탄생하게 된다.

오가영은 더 나아가 “사진이 한 장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더 끌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사진이 설치되는 방식에 다른 옵션이 없을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다. 이러한 사유는 새로이 전시를 열 때마다 이미지 편집과 더불어 프린트한 2차원 평면의 사진 이미지의 물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는 작업으로 이끌었다.

《어색한 사이》 전시 전경 (화이트노이즈, 2021) ©오가영

2021년 화이트노이즈에서 열린 2인전 《어색한 사이》에서 선보인 ‘Cat Series’ (2021) 연작은 작가가 마주한 고양이들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오가영은 이 작업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한 다음, 사진을 오리고 엮는 등의 행위를 거듭하며 사진 종이 자체의 물질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실험했다.

오가영, 〈세미프레임시리즈〉, 2021, 매트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유리, 경첩, 바퀴, 가변크기,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2021) ©오가영

2021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에 참여하며 선보인 ‘세미프레임시리즈’(2021)의 경우에는, 사진의 피사체를 액자도 파티션도 아닌 중립적인 상태로 위치시켰다. 오가영은 사진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해체, 변주, 재배치하고 손으로 형상을 오려내어 유리 표면 위에 붙였다.
 
유리의 투명한 물성은 바깥으로 튀어나가는/소용돌이치는 이미지가 전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유리의 앞뒤로 이미지를 부착하거나, 한쪽에만 붙여 빈 뒷면을 숨김없이 드러내거나, 바닥 면까지 내려가도록 하는 등 사진 이미지를 고정된 액자에 가두는 방식이 아닌 전시 공간 안을 자유롭게 침범하고 유동하는 모습으로 위치시켰다.  

또한 네 장의 유리에는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경첩과 실제 유리 면을 움직이게 하는 바퀴가 부착되어 있어 이미지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오가영, 〈세미프레임시리즈〉, 2021, 매트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유리, 경첩, 바퀴, 가변크기,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 전시 전경 (일민미술관, 2021) ©오가영

각 작업은 평범한 일상적인 순간에서 비롯된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전시장 벽을 뚫고 바닥으로 흘러 내려 나오는 듯한 형상의 작업은,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담장을 바라보다가 벽이 공간을 가르며 무언가를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 순간, 작가는 벽을 자유롭게 빠져나와 이를 무시해버리는 존재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고, 이는 동일한 이미지를 두 번 복제해 앞면과 뒷면에 붙여 마치 벽을 뚫고 나오는 듯한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오가영, 〈Tongue Bed〉, 202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83x93cm, 《템포러리 랜딩》 전시 전경 (디스이즈낫어처치, 2022) ©오가영

한편 2022년 디스이즈낫어처치에서 열린 단체전 《템포러리 랜딩》에서 오가영은 ‘입 속’과 ‘땅 속’을 촬영한 이미지로 5점의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 속 입과 칫솔, 땅과 뿌리의 이미지는 본래 서로가 관여하는 상태에서 비틀어진 모습으로 나타나며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여러 개의 칫솔이 하나의 입 안에 들어가 있거나, 바깥으로 노출된 땅 속의 뿌리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받는 형상으로 나타나거나, 입 속과 땅 속의 이미지가 뒤섞이며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템포러리 랜딩》 전시 전경 (디스이즈낫어처치, 2022) ©오가영

이처럼 오가영은 극히 선택적으로 외부 물질을 받아들이는 섬세하고 예민한 두 대상의 안전한 상태를 흩뜨린다. 그리고 전시장에 거리를 두고 놓인 5개의 작품은 각각 다른 모양과 방식의 고정체에 연결되어 중력에 관한 긴장감을 다른 무게로 보여준다.

오가영, 〈Web(in Pink, Green and 0)〉, 2023, 실크, 실크실, 면사, 울사, 보일 천에 피그먼트 프린트, 311x200cm, 《오토힙노시스》 전시 전경 (지갤러리, 2023) ©지갤러리

이처럼 오가영은 사진 이미지를 통한 다양한 매체적 실험과 더불어 그의 상상으로 재구성된 낯선 감각의 이미지를 설치하는 방식 또한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2023년 지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오토힙노시스》에서는 벨벳, 실크, 보일, 면, 매쉬 등 다양한 질감, 두께, 투명도의 천들 위에 이미지를 옮기고, 그 재료적 속성에 따라 조형화한 설치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된 패브릭 설치 작품들인 〈Morningside Park Snail〉(2023), 〈Web(in Pink, Green and 0)〉(2023), 그리고 〈Snail(Void)〉(2023)는 작가가 이방인으로서 거주하고 있는 도시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촬영하여 인쇄 후 천들을 오리고 엮어 천 위에 공간의 층위를 겹겹이 쌓아 나간다.

오가영, 〈Morningside Park Snail〉, 2023, 면, 울, 면사, 울사, 폴리에스터 실, 보일 천에 피그먼트 프린트, 241x175cm, 《오토힙노시스》 전시 전경 (지갤러리, 2023) ©지갤러리

오가영은 새로운 도시의 맥락에 맞춰 적응하면서 느끼는 괴리와 포용에 대한 상충하는 내적 감각과 서로 다른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에 주목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한 대상들은 보통 어디에서나 관찰할 수 있는 자연의 순환과 연관된 중립적인 것들이었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달팽이’는 이를 관철하는 은유적인 대상으로 마치 이미지를 복사/붙여넣기 하듯이, 천 위에 인쇄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달라붙는다.

《Half Sticky》 전시 전경 (IBK 기업은행 본점 로비, 2023) ©오가영

이와 같이 오가영은 수집한 이미지를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재편집하는 동시에 오려내고 구멍을 내거나 엮고,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등의 수작업적인 방식으로 사진 매체의 물성을 활용한 작업을 이어 왔다.  

2023년 ‘IBK & GMoMA YOUNG ARTISTS 2023’에 선정되어 선보였던 개인전 《Half Sticky》에서는 사진의 물질적 속성을 확장시켜 스폰지 등 이질적 재료와 작품을 지탱하는 지지체로서의 가벽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켰다. 가벽 구조나 벽면 등 공간적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작가는 하나의 거대한 사진 설치물로 확장하고, 디지털 콜라주 사진의 물성을 유연하게 만든다.

《Will you Marry Me?》 전시 전경 (Subtitled NYC, 2025) ©오가영

오가영의 최근 개인전 《Will you Marry Me?》(Subtitled NYC, 2025)에서는 그의 주변 환경을 담은 이미지가 아닌 작가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콜라주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가의 최근 연작 ‘Unpleasant Episodes’(2025)는 유머와 도발,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가슴과 유두를 하나로 엮는다.  

그에게 있어 몸은 친밀함의 장소이자 욕망이 투사되는 장소이며, 개인적인 경험과 외부의 시선 모두에 의해 형성되는 장소이다. 특히 여성의 가슴과 유두는 어떤 조건에서는 찬미의 대상이 되는 한편 다른 조건에서는 가려지거나 납작하게 눌려야 하는 억압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오가영, 〈Hug me〉, 2025, 《Will you Marry Me?》 전시 전경 (Subtitled NYC, 2025) ©오가영

오가영은 이러한 모순을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곡선과 돌출된 부분을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그것들이 어떻게 동시에 과잉 노출되면서도 무시되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작가는 사진을 겹치고 섞는 디지털 콜라주 과정을 통해 신체가 어떻게 납작하게 편평화되고, 기호나 오브제로 체계화되는지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신체는 익살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드러나며 신체로부터 촉발되는 익숙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벗어난다.  

《Will you Marry Me?》 전시 전경 (Subtitled NYC, 2025) ©오가영

이와 더불어 오가영은 실크와 흙이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이 작업의 확장된 일부로서 등장시킨다. 실크의 반투명성은 노출과 은폐 사이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신체가 인식되는 방식과 투사되는 방식 사이의 간극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흙은 덩어리나 곡선을 형성하면서도 본질적인 불안정한 물성을 내포하며 작품 속 이미지와 상응한다.  

여성의 신체에 덧입혀진 기존의 맥락을 해체해 우스꽝스럽고도 언캐니하게 드러나는 그의 작품 속 신체들은 어떠한 해석이나 결말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신체들은 단일하게 통합되지 않고, 소비되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그 거부 자체를 직면하게 만들어 불편한 존재가 되기를 자처한다.

《Will you Marry Me?》 전시 전경 (Subtitled NYC, 2025) ©오가영

이미지를 선택, 편집, 왜곡, 후보정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기술과 함께 자신의 신체를 유사 도구로 설정하며, 다양한 매체 실험에 몰두해 오고 있다. 이러한 오가영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동시대적 확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유연성, 확장가능성, 그리고 복구가능성 등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한 번에 눈에 잘 띄지 않거나 표면에 존재하지 않아서 괄시하는 이면의 현상들, 비교군이 달라졌을 때 바뀌는 해석들, 상상의 장면 등을 엿보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오가영,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오가영 작가 ©SHOUTOUT LA

오가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뉘른베르크 예술 아카데미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개인전으로는 《Will you Marry Me?》(Subtitled NYC, 뉴욕, 2025), 《Half Sticky》(IBK 기업은행 본점 로비, 서울, 2023), 《Softsharp》(실린더,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오토힙노시스》(지갤러리, 서울, 2023), 《포스트모던 어린이 2부》(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3), 《물거품, 휘파람》(두산갤러리, 서울, 2022),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일민미술관, 서울, 2021), 《Foam Talent》(Foam Amsterdam,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7) 등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오가영은 2025년 뉴욕 Light Work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IBK & GMoMA YOUNG ARTISTS 2023을 비롯한 다수의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