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웅 (b.1985)은 세상의 이치, 생태계의 순환, 환경과 인간, 비인간의
관계 등에 대해 고찰하는 작가이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순환적 관계를 인식하고, 생태계 안에서 공생하는 존재로서 제안하고자 자연환경과 우리 주변의 환경 속에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이용해 최소한의
가공을 거쳐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재웅의 작업은 대형 페인팅 작업에서 출발했다. 유화를 주재료로 삼던
당시의 작업은 세계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반영되어 있었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그 시기의 작가는 “세계를 혼란스럽고 우연하고 마구잡이라고 여겼”으며 그러한 상태에서는 “순간적인 감각만이, 순간적인 감정만이 진실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렇기에 당시 작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특정한 주제나 이야기는 부재했다. 혼란스러운
세계를 다룰 때 일관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거짓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서재웅은 2018년 음양오행을 접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고, 이는 곧 작업의 변화로 이어졌다.
음양오행이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상반된 것이 사실은 연결되어 상호 보완하며, 서로
오고 가기를 반복하며 순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음양’과 목화토금수
다섯가지 속성이 상생과 상극의 관계 속에서 움직이며 변화하는 모습인 ‘오행’을 아우르는 동양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재웅은 음과 양으로 상징될 수 있는 서로 반대되는 것의 대립과 보완 관계를 탐구하며, 동양의 전통적인 소재들과 옛 그림을 따라 익히는 새로운 그리기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서재웅은 오행(목화토금수)으로
상징할 수 있는 상생과 상극의 순환 관계를 조각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조각은 주로 나무를
주재료로 삼는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재료를 새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산이나 공원에 잘려 있는 나무나 누군가 사용하다 남긴 버려진 목재를 가져다 사용한다. 그리고
만약 새 것을 쓸 때에는 되도록 천연재료나 독성이 약한 재료를 택한다.
재료를 재사용하거나 무해한 천연재료를 사용하는 이유 또한 음양오행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음양오행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한 기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후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환경에 영향이 덜한 재료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업사이클링 방식으로 만든 〈고라니〉(2020)의 경우에는 얼굴은 공원에 잘려 있던 나무 토막으로, 귀는
버려진 밥상의 상판을 잘라 만들어졌으며, 몸통과 발, 꼬리는
쓰다 남은 자투리 목재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재웅은 샤머니즘과 애니미즘, 그리고 자연철학 등 과거 선조들이
자연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기록들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았다. 이를 테면, 한국의 전통 신화에서 산사태나 지진으로부터 산을 지키는 산신할머니를 조각하여 인왕산에 설치하거나, 민속신앙에서 비와 바람을 상징하는 용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아 오늘날 기후 문제 중 하나인 미세먼지를 씻어내
주길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음양오행 사상의 존중에 기반한 그의 조각에는 수공의 흔적과 원재료의 결에 집중하여 쌓아 올린, 혹은 깎아 내려간 흔적을 담고 있다. 서재웅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때 “몸의 감각, 재료의 감각, 그리고 혼돈을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전동기기를 사용하기보다 수작업을 통해 손이 오고 간 흔적을 남기고, 가공을 최소화하여 원재료가 가진 특유의 매력을 그대로 살려서 작업한다. 여기서
혼돈을 중시한다는 것은 주제, 몸, 재료 등에 지향점이 있으나
때때로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고 “무목적의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무목적의 상태일 때 목적의 상태를 보완하여 오히려 목적을 명확하게 만들어준다고
보았다.

2022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불 피우는 사람들》에서는
그동안 몰두했던 기후와 생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재웅은 기후 위기를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를 음의 성격을 띠는 인공적인 ‘불’로 해석했다.
작가는 핸드폰이나 모니터의 파란 불빛, 가로등이나 전등, 열기를 내뿜으며 무언가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발전소, 자동차 등 현대
문명의 다양한 산물들을 인공적인 불로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보며 불을 중심에 두고 전시를 꾸렸다.

이러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은 모두 버려진 사물을 재사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시에서 메인으로 소개된 5가지의 조각들은 빌 게이츠의 책에 나온 기후 위기를 만드는 원인 4가지(무언가를 제조하는 일과 전기를 생산하는 일, 이동 수단, 그리고 가축의 사육과 재배)를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버려진 바둑판을 재사용해 만들어진 〈대장장이〉(2022)는 생산과
제조를, 목재를 재활용한 〈벼락신〉(2022)은 전기의 생산을
표현하고, 〈말〉(2022)은 과거에 오랜 세월 최고의 이동
수단이었던 말을 형상화하였으며, 〈소〉(2022)는 가축의
사육과 곡물의 재배를 상징한다.
기후 문제를 만드는 4가지 원인을 형상화한 네 개의 조각 주변에는
화석 연료를 상징하는 석탄기의 식물 화석을 두어 오늘날의 기후 문제를 야기하는 각종 산업 환경을 은유적으로 구축했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반인반자연의 형태를 가지며 과거의 신화와 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을 모티프로 하였으며, 〈벼락신〉의 경우에는 산업 혁명 이전의 전기를 의미하는 “번개, 뇌신, 벼락신”을 참조하고
있다.
이처럼 서재웅은 기후 위기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그러고 나서 버려진 나무 오브제들의 부분들을 이어 붙이고 연결하며, 과거와 현재가 서로 관계를 맺는 서사를 물질로서 형상화한다. 현시원
큐레이터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짓고 과거를 향해 시뮬레이션 한다”고
말하며, “기후 위기의 역사 안에 주체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조각을 구현했다”고 설명한다.

2024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개인전 《우리 사이엔》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단일 종의 차원이 아닌 생물, 자연, 지구의
시간의 흐름 속에 연결된 유기적 관계로서 바라보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를 보였다.
서재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오랜 지구의 시간, 즉
자연의 탄생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지구 생태계가 하나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갈래로 나뉘었고 서로
긴밀한 연결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과학의 진보와 동시에 전쟁,
기후 위기 등 삶과 자연의 불균형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음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철학 속에서 현재 겪고 있는 환경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어 예술적 태도로 풀어내고자 했다. 그 결과물로 선보인 조각들은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생명이 분화되며 존재해온 동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형상은 동물과 인간이 혼재된 형태를 가짐으로써
비인간과 인간의 연결성을 표현한다.
또한 화석 또는 반도체 소재로 사용되는 단결정 실리콘(99.99%의
실리콘)을 동물의 눈으로 사용했다. 영혼의 창으로 상징되어
온 ‘눈’의 재료로 지구의 오랜 역사를 품은 화석과 최첨단
소재인 단결정 실리콘을 사용하며, 생태계의 순환 및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오늘의 기술문명이 과거부터 이어진
연속적인 흐름, 즉 현대 기술문명과 과거의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서재웅의 작업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음양오행 세계관에 기반을 둔 그의 작업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근대 과학혁명의 근간인 인간 중심적 인식론을 극복하고, 지구의 순환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변화는 지구의 시각으로 볼 땐 조화로운 변화지만 인간의 삶에서 볼
땐 종종 시련이 닥쳐온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가뭄이 들고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다시금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시도한다. 균형을
잡으려는 행위, 조화를 이루려는 행동을 작업으로 표현한다.
낮과 밤처럼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맞물리는 것, 계절의 변화처럼 하나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표현한다. 작업은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고 내면에는 평화를, 생활에는 균형을 갖기 위한 행위인 것 같다.” (서재웅, 작가 노트)

서재웅 작가 ©서재웅
서재웅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우리 사이엔》(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4), 《불 피우는 사람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2), 《좌표없는 구름》(갤러리 밈, 서울, 2018),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릴없이 왔다갔다만》(대안공간
눈, 수원, 2015) 등이 있다.
또한 서재웅은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스핀오프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4), 《Heavy
Middle Light》(캡션, 서울,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 프롤로그전 《미래에 대해 말하기: 모양, 지도, 나무》(성산아트홀, 창원, 2023), 《Our
Week》(Process IJW, 서울, 2023), 《방법으로서의
출판(라이팅밴드)》(아트선재센터,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
- 서재웅, Seo Jaewoong (Artist Website)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문] 불 피우는 사람들 – 현시원 (Space Willing N Dealing, [Preface] Firemakers – Seewon Hyun)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불 피우는 사람들 아티스트 토크 (Space Willing N Dealing, Firemakers Artist Talk)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우리 사이엔 (Space Willing N Dealing, Between Us)
- 대전시립미술관,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스핀오프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 – 서재웅 (Daejeon Museum of Art, Daejeon Art and Science Biennale Spin-off 《Magnum Opus》 – Seo Jaew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