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b.1991)은 조각과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 사이를 넘나들며, 입체와 평면의 관계성을 실험해 오고 있다. 작가는 주로 식물, 나무, 인물 등의 생물을 직접 관찰하여 이를 나무로 조각하고, 제작된 정물 조각을 다시 대상으로 삼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동훈, 〈화병〉, 2018, 소나무에 아크릴, 82.5x38.5x38.5cm ©이동훈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이동훈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문학 작품을 회화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문학의 내용을 평면의 이미지로 옮기고, 회화의 형식적 논리를 실험해 오던 작가는, 이후 캔버스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작업을 전환하게 되었다.

캔버스의 물성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액자를 만들었던 2017년경의 작업들은, 최근의 나무 조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보인다. 당시의 작업은 화면 안에 구축하는 내용이나 주제보다 캔버스의 형태와 회화의 형식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실험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직접 목조 기술을 배워 회화의 지지체를 ‘조각’하였으며, 이는 곧 본격적인 조각 작업으로 이동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동훈, 〈화분〉, 2018, 소나무에 아크릴, 60x35x35cm ©이동훈

2018년부터 이동훈은 나무로 액자를 조각하는 대신, 회화 속에 정물로 있을 법한 화분을 직접 가져와 관찰하고 그 형상을 나무로 깎아 만들었다. 이로부터 시작된 이동훈의 나무 조각은 세부적인 윤곽이나 질감을 표현하는 대신 전기 톱과 끌을 이용해 큰 덩어리의 형태를 만들고, 그 표면에 실제 대상과 유사한 색채를 칠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주로 화병이나 화분을 소재로 한 초기의 정물 조각은 “그리기”를 위한 삼차원의 회화적 지지체로서의 성격이 도드라진다. 안소연 비평가는 그의 정물 조각에서, “캔버스 프레임처럼 회화의 물리적 지지체로서 그 위에 그리기 혹은 칠하기와 같은 회화적 실천이 추가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모사의) 대상으로서 전형적인 캔버스 화면 위에 삼차원의 사물이 평면적으로 해석되는 회화적 가능성에 도전하는” 수행성을 읽어냈다.

이동훈, 〈플라밍고와 풀〉, 2019, 소나무에 아크릴, 164x82x57cm ©이동훈

2019년부터 이동훈의 정물 조각에 꽃 뿐만 아니라 새, 고양이, 과일 등과 같은 새로운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화병 또는 화분을 보고 만든 작품들의 경우에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크기의 작은 사이즈였다면, 이때부터 성인 키에 달하는 스케일로 확대되어 바닥 위에 세워졌다.

높이 164cm인 조각 〈플라밍고와 풀〉(2019)은 통나무 두 개를 연결해 놓은 듯 나뉘어진 조각의 상부와 하부가 수직으로 합체되어 있다. 이 조각은 원형의 통나무를 사방에서 입체적으로 돌려 깎은 윤곽을 가지면서도, 반복되는 직각면들과 표면에 원근감에 기반한 음영이 채색됨으로써 회화적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있는 실내》 전시 전경(드로잉룸, 2019) ©이동훈

이동훈은 그의 첫 개인전 《꽃이 있는 실내》(드로잉룸, 2019)에서 자신이 깎은 정물 조각을 다시 평면의 캔버스 화면 위로 옮기고, 이 둘을 나란히 제시했다. 작가는 실제 정물을 보고 조각으로 옮기던 작업에서 나아가 그 나무 조각에서 다시 그림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목재의 물성에 따라 조각된 실제 정물들은 다시 작가의 손에 의해 평면으로 그려지며 또 한번의 추상의 과정을 밟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입체 조각과 평면 회화는 전시장 안에 거울 이미지처럼 나란히 병치되며, 서로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조각과 회화 사이의 긴밀하고 잠재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동훈, 〈화분1〉, 2019, 캔버스에 아크릴, 72.5x60.5cm ©이동훈

그의 정물 조각은 사실적인 입체 표현보다 색채의 채도와 음영이 표면에 칠해지며 형태의 면이 인식되는 한편, 이 조각을 정물로 삼은 회화 작업들은 모든 시점을 2차원 평면 위로 균질하게 퍼트려 그려진 듯 실제 대상의 입체감과 거리감이 제거된 채 납작하고 평평하게 그려졌다.

이동훈, 〈무제〉,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20x200cm ©이동훈

실제 대상-조각-회화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실험해 오던 이동훈은, 각각 다른 대상을 참조로 하고 있는 개별 작품들을 하나의 화면 안으로 결합한 〈무제〉(2020)를 선보였다. 이 회화 작품은 개별적으로 제작된 세 개의 작품 〈화병〉(2020), 〈상사화〉(2020), 〈선인장〉(2020)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정물을 토대로 한 그림에는 시점 또는 거리감이 통일되지 않은 채 각자의 추상적인 색면이 부각되어 하나의 화면에 콜라주된 것처럼 보인다.

《조각이 춤도 추네요》 전시 전경(갤러리SP, 2021) ©갤러리SP

2021년 갤러리SP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조각이 춤도 추네요》에서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한 인물 조각을 소개했다. 전시에서 선보인 인체 조각들은 K팝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안무와 그들이 입은 의상이 서로 결합하며 구축되는 입체적 형상에 주목하며 만들어졌다.

이동훈은 작업의 소재로 삼은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연속적인 움직임의 순간에 포착된 입체적인 구조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구축한다.

이동훈, 〈Black Mamba〉, 2021, 소나무에 아크릴, 65x35x37cm ©이동훈

인물의 움직임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의 조각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몇 초간의 연속적인 안무의 동작들을 하나로 중첩시켜 표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몸통은 그대로 표현된 한편, 춤의 연속적인 흐름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팔은 여러 개로 중복되어 나타난다.

그의 조각은 신체 동작의 중첩을 통해 신체 움직임의 연속성을 내포하면서도 이를 정지된 사물의 몸체로 고정시킨다.

이동훈, 〈맛 Hot Sauce 1〉,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00x200cm ©이동훈

그리고 회화 작업은 1차로 제작된 조각을 회전대 위에 올려 두고 조각이 회전하는 상태를 파노라마로 촬영하여 나온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이는 조각을 보고 재현하되, 양감을 가진 대상보다는 조각에서 나타나는 색채와 질감을 2차원 평면에 옮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정물 조각과 회화 사이에 카메라를 매개로 한 가상의 이미지가 개입되면서, 그의 작업은 조각과 회화의 매체적 조건 속에서 디지털 편집과 기술이 만들어낸 동시대의 시각적 감수성을 담게 된다.

이동훈, 〈아네모네와 델피늄 1〉,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90x390cm / 〈아네모네와 델피늄〉, 2022, 은행나무에 아크릴, 73x45x45cm ©이동훈

이후의 작업에서도 조각을 회전시켜 그 순간의 단면들을 찍은 사진을 참조하여 평면으로 옮기는 방식이 이어졌다. 2022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New Rising Artist: 탐색자》 전시에서는 다시 화분이나 화병을 대상으로 삼은 정물 조각과 이를 토대로 그린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정지된 정물 조각을 눈으로 보고 포착한 색면을 회화로 추상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사진에 담긴 조각의 표면과 그 위로 덧칠해진 물감의 색채에서 드러나는 색면들을 캔버스 화면에 가로 방향으로 연속하여 나열하였다.  

《가벼운 안무》 전시 전경(갤러리SP, 2023) ©갤러리SP

한편 2023년 갤러리SP에서 열린 개인전 《가벼운 안무》에서는 기존 조각의 주재료로 사용해온 나무가 아닌 얇고 가벼운 종이를 재료로 삼아 K팝 안무를 조형화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동훈의 종이 작업은 “재료적 특성을 달리할 때, 조각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유로이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종이의 물성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K팝 아이돌의 동세와 움직임을 다루기에 더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동훈, 〈New Jeans〉, 2023, 아크릴 채색한 종이, 압정, 스테이플러, 아크릴 채색한 스테인리스 스틸, 핀, 나무 패널, 146x52x72.5cm ©이동훈

그는 참조한 무대의 색감과 대비를 아크릴 물감으로 조색했고, 밑칠용 붓을 사용해 안무의 속도감이 드러나는 색종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칼과 가위를 이용해 볼륨과 윤곽을 섬세하게 만든 다음, 미리 준비된 부분들을 붙여 나가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종이의 휘어지고, 주름지고, 접히는 특성은 안무의 동세를 따라 자연스럽게 핀, 타카, 본드, 철사 등으로 순간에 고정되었다. 이러한 덧댐의 과정을 반복하여 콜라주 방식으로 구축된 종이 작업들은 특유의 묵직한 중량감을 전해주었던 기존의 나무 조각과 회화 시리즈와는 또 다른 가볍고 경쾌한 고유의 선명함을 전달한다.

이동훈, 〈Compilation 1〉, 2023, 벽에 종이, 압정, 택, 스테이플러, 400x680x54cm ©이동훈

한편 개별 작업들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형태로 벽면을 채운 종이 부조 작업 ‘Compilation’(2023) 시리즈는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제작되었다. 작가는 안무 동작의 부분을 확대하거나 편집한 다음, 유연한 종이의 물성과 주어진 전시장의 큰 벽과 낮은 층높이를 활용해 안무의 궤적이 담긴 거대한 부조로 추상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조는 꽂힌 핀이 잠시 해체되어 확장된 모습으로 벽에 고정되거나, 벽의 일부가 다시 채색되어 3차원 공간에 놓이는 등 유동적으로 변주되어 전시되었다.

《가벼운 안무》 전시 전경(갤러리SP, 2023) ©갤러리SP

이처럼 이동훈은 주로 생물인 대상의 동세를 포착하기 위해 나무의 결과 질감을 따라 형태를 1차로 조각한 뒤, 2차로 다시 조각을 캔버스 위에 배열하고 복기하는 양식미를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종이라는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질감과 형태를 실험하며, 대상과 재료, 그리고 조각과 회화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더욱 심화해 나가고 있다.

”나의 조각은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대상을 보고 그림을 그리지만, 빛과 음영, 형태에 따라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림으로써 재현하는 것은 조각으로 구현된 결과물을 눈과 카메라의 관점에서, 색채로써 다시 배열하고 복기하는 과정이다. 조각의 영역에서 가질 수 있었던 태도를 그림으로써 상기하는 행위다.” (이동훈, 작가 노트)

이동훈 작가 ©노블레스

이동훈은 경희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꽃이 있는 실내》(드로잉룸, 서울, 2019), 《조각이 춤도 추네요》(갤러리SP, 서울, 2021), 《Woman》(VSF&milk,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2), 《가벼운 안무》(갤러리SP, 서울, 2023)가 있다.

또한 작가는 《언박싱 프로젝트 3.2: 마케트》(VSF,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4), 《grid 3》(biscuit gallery, 도쿄, 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창원, 2023), 《조각 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NEW RISING ARTIST: 탐색자》(제주현대미술관, 제주, 2022), 《오브젝트 유니버스》(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오는 5월 8일 갤러리SP에서 열리는 단체전 《Crush Zone》에 참여한다.

참여한 프로젝트 및 협업으로는 《묘지를 위한 기념비》(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홍승혜 개인전: 무대에 관하여》(일민미술관, 서울, 2021)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울산시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