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경 (b. 1988)은 오늘날 일상 공간 속에 숨겨져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 구조, 혹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회화, 판화, 설치의 방식으로 노출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매체와 실제 날것의 물질, 재료들을 혼용하며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건축적 이미지와 다양한 매체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강이경의 작업은 주변의 일상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상황들 안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대립을 발견한다. 아름다움과 추, 구축과 해체, 질서와 무질서와 같은 애매모호한 경계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대립으로부터 느껴지는 긴장감과 이질감, 혹은 규정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조형적으로 다룬다.
이를 테면, 그의 초기작인 회화 작품 〈Forest〉(2012)는 평범한 자연의 풍경에서 비롯된 작가의 심리적
풍경과 자연의 자리를 콘크리트가 대신하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풍경을 다르게 바라봄으로써 생겨나는 작가의 상상과 문제의식들을 바탕으로 하며, 무감각해진
것들을 다시금 의식하고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강이경은 2013년부터 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함께 평면에서 벗어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작가는 어느 날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마주하게 된 건축 구조에 나타나는 수직, 수평의 비계 구조들과 철근에서 흥미로운 조형성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갤러리 이즈에서 열린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순환 구조》는
구축과 해체의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건축적 이미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강이경은 건축 비계
구조와 같은 임시 구조물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흔적과 잔여물들의 순환 구조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러한 반복적인 공사 과정에서 생긴 구조와 흔적들에서 질서와 무질서가 뒤엉켜 있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 조형적 요소들 사이의 상호적인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강이경은 익숙한 캔버스를 벗어나 알루미늄 판 위에 인터넷에서 찾은 설계 도면과 공사현장 일부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재구성하는 작업 〈Blueprints〉(2013)을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수집한 기하학적인 건축 구조의 이미지들을 축적, 반복, 결합하여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된 구조의 흔적들과 순환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순환 구조의 이미지들은 평면뿐 아니라 입체로도 재구축되며, 평면에서 나타날 수 없는 날것의 물질성 혹은 공간적 이해가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강이경은 공사 현장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미완성의 날것 상태들에 주목한다.
작가는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숨겨진 공간을 드러내는 일에
꾸준히 천착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풍경은 큐브, 그리드, 직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상들이 중첩되는 구조를 가지는 동시에, 불규칙적인
형상이 함께 존재한다.
작가는 다양한 매체와 작업 방식의 변주를 통해 그러한 형상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2017년에 선보인 〈Lamination of Reality〉은 형상이 반사되는 물성을
지닌 알루미늄 판을 접거나 기울여 놓음으로써 시각적 이미지에 동적인 느낌을 더한다.

그의 작업은 구축과 해체의 과정에서 질서와 무질서를 오가는 미완성의 건축 현장을 소재로 해왔지만 이러한 대립적인
힘 사이의 긴장감과 순환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도 닮아 있다. 사회라는 구조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질서와 시스템들이 만들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역동의 장이기 때문이다.

강이경, 〈Artificiality in Unknown Territory〉, 2018, 스크린 프린트, 38.1x38.1cm ©강이경
회화적 실천과 함께 실험적인 설치방식을 통해 늘 주변에 존재해 왔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부터 드러나는 표면을
다루어 왔던 작가는 2018년부터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 사이 간극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제는 여느 때와 같이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며 길을 찾아 가던 중, 시스템
오류로 인해 글리치 현상이 발생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이를 계기로 스크린 속 맵핑된 공간과
실제로 자신이 찾아가는 물리적 공간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강이경은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어 있음에 익숙해진 디지털 세대의 인식과 감각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찾아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가령, 스마트폰의 스크린 캡처 기능을 이용해 사진 이미지를 저장하고
수집한 다음, 이를 컴퓨터 작업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들과 혼합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글리치나 예상치 못한 에러들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강이경은 2021년 미국 샌포드 지하 연구소(SURF)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하세계의 암흑물질과 같은, 우리의
발 밑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실 속 보이지 않는 공간을
탐구하고자 작가는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등의 전문가와
협업하여 지하세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물로 제작된 작품들은 2024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2024 금호영아티스트》 전시에서 공개되었다. 벽화, 회화, 판화, 설치로
이루어진 전시는 연구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로부터 추출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축한 무한한 레이어의 공간적 상상을 제시했다.

지하에 존재하는 미지의 암흑세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동양 철학과 불교의 윤회 사상과 맞물리며 이어졌다. 그의 작업 과정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 건설된 지상, 지하,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공간들이 뒤집어지고, 배치, 분열, 거꾸로 돌아가는 등 끊임없는 변화과정을 통해 남겨지는 부산물, 과정, 흔적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신작에서도 기존 작업에서 응용되어 왔던 불교의 우주론과 그 순환되는 구조가 확장되어 나타난다. 예컨대, 지난달 퀸즈 칼리지 Klapper
홀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Entombed in Static》에서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 원형의 변화, 혹은 그 원형이 반복되는 과정을 시각화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또한 작가는 레지던시 기간 중 접했던 지하 공간을 통해, 지상과 지하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 공간을 시각화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이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곧 땅 속과 표면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인 고대의 무덤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강이경은 고조선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단군신화와 삼국시대부터 들려오는 신화적 존재들을 소재로 삼아 우주 천문학, 고대의 별자리에 대한 기록들을 편집하여 이미지를 구상했다. 구전으로
내려져 오는 설화나 기록되어지지 않은 역사문화 정보를 토대로 작가적 상상을 더한 재구성 과정은 페인팅과 드로잉을 통해 토템, 애니미즘 등의 고대의 종교적 상징들을 편집하면서 시작된다.
나아가 작가는 유라시아와 몽골지역에서 나타나는 노마드 부족들의 제례문화와 종교 신화적 의식들이 대한민국 역사와
공유하고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대륙간의 이동, 횡단을 통해
현 시대의 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영역이 확장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맺어온 인간과 신의 역사적 관계를 반추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강이경은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보이지
않는 공간들에 내재한 다층적인 구조들을 상상하며 시각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기에
무시되어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발굴해 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강이경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 안에 내재된 시대적 흐름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탐구를 이어 오며, 우리가 서 있는 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감각할 수 있는 작업들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속에서 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궁극적 호기심을 발현해왔는가? 현대에서 신화적 존재로 간주되어지는 것들, 그것들의 시대의 요구, 혹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어떤 식으로 변형해오고 있는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어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발굴해 내는 작가의 역할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강이경, 작가노트)

강이경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과 학사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서양화 석사를 수료하였으며,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Entombed in Static》(퀸즈 칼리지 Klapper 홀 갤러리, 뉴욕,
2025), 《Space on Lag》(그레파이트
온 핑크, 서울, 2023), 《Missing Mass》(유아트스페이스, 서울, 2021), 《Invented
Landsacpe》(웨스트 라스베가스 라이브러리 갤러리,
라스베가스,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2024 금호영아티스트》(금호미술관, 서울, 2024), 《Surviving Change》(찰스턴 하이츠 아트 센터, 라스베가스, 2023), 《Coming
Home》(어반 인스티튜트 포 컨템포러리 아트, 그랜드
라피즈, 2022), 《Unbound: The Altered Book》(치코 아트 센터, 치코, 2021)을
포함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강이경은 2021년 미시간주 호프 칼리지에서 조교수를 맡았고, 2024년부터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그는 2024년 퀸즈칼리지의 ‘토마스 첸 패밀리/크리스탈 윈도우 기금’을 지원받게 되는 첫 번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샌포드 지하연구소,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 카타르, 서울대학교 등 다수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References
- 강이경, Leekyung Kang (Artist Website)
- 강이경,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Leekyung Kang, Artist Statement)
- 오픈갤러리, 강이경 인터뷰 (Open Gallery, Leekyung Kang Interview)
- 갤러리 이즈, 강이경 작가 노트, 2014 (Gallery IS, Leekyung Kang Artist’s Note, 2014)
- Couchin the Desert, Leekyung Kang, Invented Landscapes
- 오픈갤러리, 혼돈된 건축 (Open Gallery, Panic Architecture)
- 금호미술관, 2024 금호 영 아티스트 (Kumho Museum of Art, 2024 Kumho Young Artist)
- 아시아경제, [갤러리 산책]보이지 않는 세계,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궁구', 2024.06.04
- 유아트스페이스, 강이경 작가 인터뷰 (U Art Space, Leekyung Kang 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