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라(b. 1992)는 소셜 미디어 공간, 메타버스와 같은 동시대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심화되어 표출되는 현상들에 주목하고, 현재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인물상, 상품을 상상하며, 이를 조각, 영상, 설치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각화하고 있다.

박소라의 작업은 사회와 기술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리즘 기반의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기술이 인간의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에 주목한다.
또한 작가는 개인이 어떻게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자신을 이미지로 표출하고 그 이미지가 다시 자아를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예를 들어, 2021년 작업인 〈Item
Inventory〉는 게임 환경 안에 놓인 캐릭터와 그 가상적 존재를 직접 조작하는 플레이어의 자아와 신체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박소라는 플레이어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를 직접 조작한다는 점에서, 게임
캐릭터를 사용자의 연장된 자아 혹은 신체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나아가 그는 온라인 게임 캐릭터의 의복과 아이템은 이러한 캐릭터의 신체적 역량 혹은 능력을 증진시키거나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현 세계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에, 박소라는 게임 캐릭터의 의상과 게임 아이템, 게임 디바이스 등 시각적인 디지털 요소를 조합하여 세라믹 조각 시리즈를 제작하고,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인벤토리 공간을 실제 갤러리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독특하고
언캐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했다.
네트워크화 된 디지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를 세라믹으로 재현하는 작업은 디지털 요소와 우리에게 친숙한
수공예적 요소를 혼합함으로써 관람자가 오랜 기간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창의력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임 캐릭터의 의복 아이템과 오늘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작업은 2021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린 개인전 《Connect-Disconnect-Reconnect》에서도 이어졌다.
박소라는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현실 공간에서 디지털 세계로 확장시키는 현상에 주목하며,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심미적 요소와 개인 디지털 기기의 개념적 요소를 이용해 미래의 기술을 상상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감정을 훈련하는 가상의 웨어러블 헤드기어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상품의 디자인을 고안했다. 이후, 이는 3D모델링과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조각 모형 형태의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Connect-Disconnect-Reconnect〉(2021)는 인간의 몸과 감정이 계속해서 개발해야 할 대상이 된 오늘날의 현실을 공상과학적 언어를 빌려 표현하고, 긍정적 감정이 자기개발과 같은 동시대 문화에서 개인의 생산성과 성과를 위해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 작동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 구상 방식은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출발해, 이러한 현실의 상황이 미래에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상상을 통해 작가는 미래 상황에 등장할 어떠한 구체적인 ‘상품’을 고민한 다음, 이를 ‘모형’의 형식으로 시각화한다.
또는 현재 맞닥뜨린 문제 상황이 심화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를 미래 시점에서 상상하고, 이야기를 직접 글로 써보면서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조각 모형과 함께 영상이나 설치로 발전하기도 하며, 두 가지 방식이 개별적으로 혹은 한 작품에 동시에
적용되기도 한다.

가령, 2022년 작업 〈Soft
Touch〉는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된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가상의 웨어러블 디자이너 ‘박사라’가 디지털 게임공간에 살며
일하고 있는 버추얼 휴먼 인플루언서 ‘김 제임스’씨를 위해
상상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디자인하고 이의 프로토타입을 하나의 조각작품으로서 제시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가상공간에 대한 미래적 상상,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의복과 인간의
외양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상황을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사회, 문화적
양상을 반영하여 그려낸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허구의 짧은 대화록과 가상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소재를 통해 ‘완벽한 신체’에 대한 관심, 유료화
서비스로 표현된 경제적 불균형, 속도감 있게 소비되고 있는 현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풍경 등 동시대
사회가 마주한 현상과 문제를 미래를 시점으로 한 공상과학 장르의 언어를 통해 다시 비춘다.

즉, 〈Soft Touch〉는
가상의 주인공들의 페르소나를 생성하고, 텍스트, 영상, 조각 모형을 통해 상상 속 이야기를 현실의 공간에 구현한다. 나아가
이러한 SF적 서사는 2024년에 발표한 3D 영상 작품 〈Meta Beauty Innovation〉으로 이어지며
확장된다.
이 영상은 〈Soft Touch〉에 등장했던 가상의
인물 ‘박사라’와 ‘김
제임스’가 가상의 뷰티 디바이스 회사를 설립하고, 이들이
개발한 제품과 프리미엄 서비스를 함께 출시한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제품설명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상 속에서 가상의 IT 회사 '메타뷰티 이노베이션'은 이들이 개발한 ‘I-Meta’를 통해 미래 디지털 휴먼을 위한 혁신적인 뷰티 솔루션을 제안하며,
디바이스의 기능과 용도, 사용 환경, 타겟 사용자에
대해 설명한다. 동시에 관객은 전시장에서 인스타그램 페이스 필터를 사용해 신제품을 착용해 보며 전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을 통해 박소라는 디지털 이미지 처리 기술과 메타버스 환경의 발전에 따라 외모와 신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작가는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뷰티 필터 기능처럼 클릭 한번으로 외모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가상 공간 속 신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미래의 디지털 휴먼에 대해 상상한다.
미래의 가상 세계에서는 노화와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타고난 신체적
외형을 변화 시키거나 새롭게 설정하는 데 제한이 없다. 이에 따라, 외모나
신체적 결함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욕망과 가치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오늘날의 사회적 가치와 기술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래 사회에서 어떤 새로운 욕망과 상품들이
등장할 지 상상하게 하며, 미래적 사유를 통해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진행된 〈NeoTex Depot〉(2023)는 어느 미래 시점의 디지털 공간을 살아가는 디지털 휴먼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저장하는 저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되었다. 미래 가상 인간의 웨어러블 뷰티 디바이스
I-Meta를 상상하고 이를 조각 모형의 형태로 재현하며, 인간의 살과 같은 사실적 스킨
텍스처들은 조각에 함께 담겨 전시 공간에 함께 설치된다.

박소라는 이 프로젝트를 매우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성격을 가진 공간인 공중화장실에서 선보였다. 그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소셜미디어와 공간적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생각해 작품의 일부로 구상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상상된 디바이스의 모형과 화장실이라는 공적 공간, 인스타그램
필터를 통해 현재와 미래, 가상과 현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탐구한다.

이와 동시에, 박소라는 현실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넘나들며 달라지는
신체 경험에 주목하며, 관객의 신체를 매개체로 삼아 두 세계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낙차를 재현하는
관객 참여형 설치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2022년부터 이어온 프로젝트 〈시티펜스〉는 관객이 자유롭게 위치와
모양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작된 설치 작품으로, 가상 세계에서 펜스의 역할을 하는 인터페이스를 현실
공간으로 옮겨와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현실에서 펜스가 도시의 공간을 구획하는 경계가 되듯이, 디지털 속의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공간을 분할하고 구획하는 경계가 된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두 공간을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차이도 경험한다. 특히 다른
공간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신체는 전에 없던 감정과 감각을 느낀다.
작품은 디지털화되면서 데이터로 경험되던 몸을 현실 세계에 위치시키면서 그 몸을 다시 공간의 척도로 되돌린다. 실제의 사물로 재현된 인터페이스 공간 안에서 관객은 다시 몸을 매개체로 이 사물들을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가상 공간에서와는 달리, 인간의 몸은 공간, 중력, 속도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존재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물리적 영향뿐 아니라, 관객은 이전의 관객들이
만들어 놓고 간 모양, 즉 사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물리적인 사물로 전환된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행되는 이 작업은, 데이터화된 몸을 현실 세계에 위치시키면서 신체적 감각이 새롭게 공간의 척도로 재생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박소라의 작업은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변화하는 우리의 몸과 정신,
그리고 일상에 대해 재고하게 하며, 이러한 변화와 그에 따른 문제들이 심화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 것인지 되묻게 한다.
”디지털 매체
환경, 특히 소셜미디어 공간을 통해 우리의 몸과 일상이 이미지로써 자본화되고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 속도와 이미지가 넘쳐나는 상황은
우리가 이미지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박소라,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박소라는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으로는 《Meta
Beauty Innovation》(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24), 《Dark Closet》(Keep-in-Touch, 서울, 2022), 《Soft Prologue》(쿤스트독523,
부산, 2022), 《Item Inventory》(수성아트피아, 대구,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4), 《당신을 통해서》(PS Center, 서울, 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프롤로그전 《미래에 대해 말하기: 모양, 지도, 나무》(성산아트홀, 창원, 2023), 《Summer
Exhibition》(Royal Academy of Arts, 런던, 2022), 《데이터정원》(김희수아트센터, 서울, 2022), 《New
Contemporaries 2021》(Firstsite, 콜체스터, 2021), 《London Grads Now》(사치갤러리, 런던,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소라는 2024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청년작가’, 2021년 영국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2021’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25년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References
- 박소라, Sora Park (Artist Website)
- 비애티튜드, 완벽한 아이디어는 없다
- 서울문화재단, [예술인 아카이브] 박소라_시각예술/조각 미디어 설치
- 매일신문, 대구예술발전소 9~12월 '2021 수창동 스핀오프'전, 2021.08.31
-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 소개] Meta Beauty Innovation (Daegu Arts Center, [Exhibition Overview] Meta Beauty Innovation)
-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소개]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Artwork Description] What Things Dream Ab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