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명(b. 1986)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소프트웨어) 경험이 시각예술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인 구조를 작동시키고 지탱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와 형태를 탐구하고, 이를 조각의 자리로 옮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구자명, 〈PBB〉, 2018,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서버컴퓨터, LCD, 감염된 하드디스크, 모뎀, LAN, 의자, 가변크기, 《PBB》 전시 전경(가변크기, 2018) ©구자명

2018년 가변크기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PBB》에서 구자명은 디자인 소프트웨어의 프로세스를 하드웨어(전시장)으로 옮기는 실험과 함께, 이와 반대로 하드웨어의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가져갔을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실험했다.  

그 실험의 진행방법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우선 디자인 프로그램의 환경(Artboard)을 전시장의 창으로 전사(Transcription)했고, 편집한 레이아웃이 내부에 압출되는 방법, 그 자체가 공간 분할과 인테리어를 이룬다. 이 과정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스(3D Computer Graphics)의 조형 규칙에 따라 평면으로부터 입체를 끌어내는 사고를 동반한다.

구자명, 〈PBB〉, 2018,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서버컴퓨터, LCD, 감염된 하드디스크, 모뎀, LAN, 의자, 가변크기, 《PBB》 전시 전경(가변크기, 2018) ©구자명

본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경계를 오가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개인의 형태는 어떻게 변모하고 동시대 미술과 어떤 대안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질문했다.  

구자명은 인간의 기관들이 컴퓨터 부품으로 대체될 미래의 시점에 데이터화된 신체에 오류를 일으키는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역할을 할 가상의 컴퓨터 샘플 파일 ‘PBB(Phoenix Phenotype Breeding)’를 구상했다.


구자명, 〈PBB〉, 2018,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서버컴퓨터, LCD, 감염된 하드디스크, 모뎀, LAN, 의자, 가변크기, 《PBB》 전시 전경(가변크기, 2018) ©구자명

전시는 이러한 인간-컴퓨터 바이러스의 디버그를 통해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상품화하는 가상의 상호인 ‘PBB’를 전시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 플랫폼의 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플랫폼은 카테고리의 구분 없이 다양한 샘플 파일들을 진열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의 특이점과 매체의 확장성을 지향하는 미디어인 미술-채널을 통해 고객과 관계를 맺으며, 이곳의 서버망을 사용해 브랜드를 광고하고 콘텐츠를 유통시켰다.  

이러한 구자명의 첫 개인전은 오프라인이 유효한 현 시점에서 상표가 개인을 완전히 대체하게 됨으로써 데이터로 만들어진 신체가 웹 안에서 교환할 수 있는, 대안적 플랫폼의 공간과 프레임을 제공한다.  

구자명,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2020, html, Javascript, IP주소, 분자모형, 하부장, 서버컴퓨터, 라우터, LAN, 가변크기,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구자명

이후 구자명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그것이 산업 및 시각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며, 소프트웨어의 형상을 골조(frame), 몸체(formwork), 표면(facade)이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해 시리즈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20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개인전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에서 작가는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인 전시 공간이 가진 시스템을 인터넷의 가상적 공간인 웹사이트의 골조를 바탕으로 새롭게 바라보며, 이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탐구했다.

구자명,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2020, html, Javascript, IP주소, 분자모형, 하부장, 서버컴퓨터, 라우터, LAN, 가변크기,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구자명

이를 위해 작가는 Space Willing N Dealing(윌링앤딜링), MMCA(국립현대미술관), SEMA(서울시립미술관), AVP lab(시청각랩), ASJC(아트선재센터), fondation d'entreprise, hermes(에르메스기업재단) 등 6개의 전시공간들의 웹사이트 구조를 분석한 후 그의 독특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해체, 재구성, 물질화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구자명,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2020, 분자모형, 290x480x300mm,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구자명

구자명은 웹사이트를 구성하는 언어인 ‘HTML’을 분석해 이를 ‘분자구조’ 모델로 치환한 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망을 3차원의 조각으로 변환하였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분자구조를 시각화할 수 있는 몰레큘러 그래픽(molecular graphic)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의 웹사이트 정보를 치수 값으로 정의한 뒤 분자 유닛이라는 새로운 미시 세계의 형태로 공간을 전치시켰다.  

구자명,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2020, html, Javascript, IP주소, 분자모형, 하부장, 서버컴퓨터, 라우터, LAN, 가변크기,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구자명

전시가 진행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내부에는 이 여섯의 유닛으로 만들어진 여섯의 또 다른 형식의 공간이 재구축된, 실험실(Lab)과 같은 환경으로 조성되었다.
 
구자명은 2009년 램 콜하스의 OMA-AMO 건축사무소에서 고정된 공간의 유기적 확장을 시도했던 건축물 ‘트랜스포머’를 참조하여, 다각도로 회전하는 조건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골조가 서로 응대하는 공간을 개발했다.  

이로써 프로그램으로 재구성된 전시장의 경계는 실제 전시장과 웹사이트를 잇는 데이터 창고(서버를 연결하는 컴퓨터)를 통해 연동되고,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된다.

구자명, 〈나약한 근육: 코드 표본〉, 2021, 생분해성수지, 탄소섬유, 강철, 3500x3200x500mm ©구자명

그리고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개인전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2020)에서 구자명은 프로그램의 ‘몸체’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불완전한 코드가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점차 수정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생물의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를 물리적 몸체를 지닌 조각의 형태로 구현했다.  

우선 그는 누구나 특별한 제한 없이 2,000만개 이상의 소스 코드를 자유롭게 읽고, 복제 및 개조하고, 재배포할 수 있는 개발자 커뮤니티 ‘스택 오플로(Stack Overflow)’에서 발견한 몇 가지의 코드를 추출했다.

구자명, 〈나약한 근육: 중복 없이 새 사용자 등록〉, 2021, 생분해성수지에 수전사, 강철, 1100x3500x800mm ©구자명

작가는 웹 생태계 안에서 유저들의 수정을 통해 변형되는 소스 코드의 모양들을 추적하며, 이러한 현상이 마치 인체의 근육의 성장 과정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찢기고 회복되는 과정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근육과 마찬가지로, 이 코드들은 유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분해되고 재조합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일종의 몸을 갖게 된다.

구자명, 〈나약한 근육: 위치 가져오는 중…〉, 2021, 생분해성수지에 수전사, 970x400x110mm (piece) ©구자명

동시에 작가는 코드의 구조를 관찰해 문제를 발견하고 부분을 고치거나 혹은 새로운 설계로 전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마치 시각예술의 조형법과 닮아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구자명은 근육의 성장 원리를 경유하여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추적하고, 이를 시각예술의 언어로 번안했다. 그 결과물인 ‘나약한 근육’(2021) 시리즈는 코드의 다발이 외부의 저항(개발자들의 수정과 개입)에 반응하면서 이루어지는 코드의 성장과 변형을 근육의 생성과 가장 유사한 산업 재료인 탄소 섬유를 이용해 부피를 가진 조각-몸체로 새로이 조형한 작업이다.

구자명, 〈구름-쓸모있는, 플러그에 연결된, 감싸는 층〉, 2023, 알루미늄, 시트에 인쇄, 5340x2320x70mm,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 전시 전경(스페이스 애프터, 2023) ©구자명

한편, 최근 개인전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스페이스 애프터, 2023)에서 구자명은 소프트웨어의 표면에 대해 다뤘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운영 체제와 바이러스가 하나의 환경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의 풍경을 인류가 오랜 시간 이어온 정원술의 개념과 연결해, 소프트웨어의 세계를 확장된 의미로 바라보고자 했다.

구자명, 〈붉은별-전사〉, 2023, 주석, 시트에 인쇄, 2990x2320x30mm,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 전시 전경(스페이스 애프터, 2023) ©구자명

이를 위해 작가는 ‘구름’, ‘붉은별’, ‘토끼’, ‘덩굴’ 등 자연에서 이름을 따온 소프트웨어를 선별하였다. 자연으로 호명된 이 소프트웨어들은 보안을 위해 제작된 운영 체제와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소프트웨어의 생태계는 언제나 잡초와 벌레가 들끓고 나무뿌리를 해치는 두더지와 잘 꾸며진 조경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정원의 생태계와 닮아 있다.

구자명, 〈토끼〉, 2023, 씨콜, 벤토나이트, 스테인리스 스틸, 1800x500x70mm,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 전시 전경(스페이스 애프터, 2023) ©구자명

구자명은 자연의 이름을 가진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디코딩 한 뒤 코드를 이루는 형태나 모양을 조각의 방법론 중 하나인 주조 방식으로 본떠 광물에 새겼다. 정원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원술이 만든 질서 아래 존재하는 생명의 난장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작가는 논리적 언어 뒤에 숨은 소스코드의 난장을 찾아내어 그 표면을 물리적인 형태로 개체화했다.

구자명, 〈소프트웨어 빼돌리기(고려항공)〉, 2024, 백동봉, 알루미늄 파이프, 스테인레스 스틸, 클램프, 케이블 타이, 1000x1400x900mm ©구자명

구자명은 이 작업을 통해 ‘붉은별’이라는 북한의 컴퓨터 OS를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북한의 소프트웨어 산업과 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폐쇄적인 국가 정책으로 인해 접근이 극히 제한된 북한의 소프트웨어를 추적하고 탐구했다.  

2024년 송은에서 열린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신작 ‘소프트웨어 빼돌리기’(2024) 시리즈는 이러한 배경에서 제작된 것으로, 북한의 선전 웹사이트 속 코드 구조를 생물학적 방법론으로 물질화한 작품이다.

구자명, 〈소프트웨어 빼돌리기(미래를 위하여: 송사리, 로동신문: 인간, 벗: 고양이, 남산: 노랑초파리)〉, 2024, 알루미늄에 UV인쇄, 종이에 인쇄, 가변크기 ©구자명

 이 작업에서 구자명은 알파폴드(AlphaFold) 및 유전체 브라우저(Genome Browser)와 같은 생물학적 방법을 거쳐 코드의 구조를 단백질과 DNA로 변환시켰다. ‘자금 세탁’ 개념을 차용한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작품은 코드의 출처와 내용을 은폐하거나 재구성해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끔 하는 변환술로 읽힌다.
 
웹사이트의 HTML 태그를 생명체의 기본 구성인 아미노산 및 염기서열로 물질화하는 전략을 통해 작가는 특정한 체계와 메시지를 지닌 코드가 생물학적 물질성을 덧입고 재맥락화되는 양상을 고찰한다.

구자명, 〈소프트웨어 빼돌리기(벗)〉, 2024, 유리창 시트, 5840x3060mm ©구자명

이처럼 구자명은 물리적인 현실 세계와 가상 공간에 자리한 소프트웨어의 기술이 서로 뒤엉키며 우리의 삶과 인식,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고찰해오며, 그 복잡한 내부의 구조를 손에 잡히는 물질로써 가시화한다.
 
소프트웨어의 하부구조인 코드를 추출해 물질 단위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이를 취약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제시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소프트웨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라 말한다. 견고한 구조의 이면을 가시화하고 기록하는 그의 작업은 “본래 언어이자 문자로서 무결해야만 하는 소프트웨어” 또한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관계망 안에서 변형되고 성장하는 개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본래 언어이자 문서로서 무결해야만 하는 소프트웨어가 자신의 운명적 굴레에서 벗어나,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의미를 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구자명,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구자명 작가 ©인천아트플랫폼

구자명은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평면회화를 전공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대학원 과정에서 입체조형을 연구했다. 개인전으로는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스페이스 애프터, 서울, 2023),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1),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0), 《PBB》(가변크기, 서울, 2018)이 있다.
 
아울러, 작가는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이름을 문지르며》(일우스페이스, 서울, 2024),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23), 《공중체련》(라라앤,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참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는 2024년 공주문화예술촌,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