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영(b. 1989)은 ‘돌봄
노동’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에 주목하며, 다양한 공감각적인
매체의 작업을 통해 이를 둘러싼 삶의 구조와 그 안에서의 물리적, 정서적 긴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겪은 자전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 심리나 특수한 상황, 문제의식
등을 바탕으로 작업의 서사를 구상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러한 감정과 정서가 투영되는 장소와 순간을
재현해 오고 있다.

강나영, 〈이모집에선〉, 2019, 조각, 비디오, 사운드 / 시멘트 퍼티, 아스팔트, 발포제, 폴리스티렌 폼, 폴리카보네이트, TV, MDF 보드, 222x118x85(h)cm ©강나영
강나영은 해외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2019년까지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불안정함, 고독과 같은 심리적 상태들을 여러 매체로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작가는 내부의 관점과 외부의 관점이 충돌하는 상황, 즉 개인적인
삶의 의미와 외부의 객관적인 시점에서의 의미가 부딪힐 때 개인이 감당하게 되는 무의미함을 고찰해 왔다.

강나영, 〈For the Fist Bump I〉, 2021, 파라핀, 철제 원형 파이프, LED 램프, 폴리스티렌 블록, 페인트 ©강나영
이후 작가는 가족의 일원을 돌보게 되면서, 그의 작업은 대상을 지키고
보호하는 행위나 태도에서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만성질병을 앓거나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신체가
일상 생활 환경에 적응하며 겪는 물리적인 충돌 지점을 탐구해 오며,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요구되는 물리적, 정신적 힘, 그리고 그로인한 부담감과 염원을 감각의 형태로 재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강나영, 〈3년의 합 For the Fist Bump II〉(세부 이미지), 2022, 파라핀, 철제 원형 파이프, LED 램프, 폴리스티렌 블록, 페인트, 플라스터, 260x250x300(h)cm ©강나영
이후 강나영은 신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느끼는 복잡한 심리에 관심을 가져오며, ‘For the Fist Bump’(2021-2022)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여겨지는 것 또는
당연한 것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오른손’을
중심으로 신체 부위가 기능하는 기본적인 방식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상태에 집중했다. 따라서 신체의 일부가
작동하는 범위 안에서 발생하는 각기 다른 기능과 의미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나영, 〈3년의 합 For the Fist Bump II〉(세부 이미지), 2022, 파라핀, 철제 원형 파이프, LED 램프, 폴리스티렌 블록, 페인트, 플라스터, 260x250x300(h)cm ©강나영
이 작업은 가족 구성원과 그 구성원 간의 지지, 응원, 염원, 합에서 시작됐다. 주먹
오브제는 가족들의 손을 본떠서 제작한 것으로, 성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비교적 어린 여성의 주먹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그 주먹들을 지탱하고 있는 큰 세 덩어리의 조각은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을 때의 발과
바닥을 짚고 있는 손, 과일들을 움켜지고 있는 손 등의 특정 행위와 상황을 은유 하는 신체 부위 조각들을
포함한다.

강나영, 〈기대어 지탱하고 나아가는〉, 2023,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스티로폼, 스펀지, 실리콘, 폴리카보네이트, 우레탄 시트, 자작나무 합판, 모터 및 혼합매체, 가변크기, 《두산아트랩 전시 2023》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3) ©강나영
이러한 개인적인 염원을 담은 작업과 더불어, 강나영은 연약하고 본래의
기능을 잃은 신체가 생활 환경에서 충돌되는 지점들을 경험하며 접근성, 보호, 돌봄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를 테면, 《두산아트랩 전시 2023》에
참여하며 선보인 작품 〈기대어 지탱하고 나아가는〉(2023)은 특정한 신체가 사회 환경에서 겪게 되는
물리적인 난간들에 주목하며 제작되었다. 강나영은 항상 열려 있어 편리한 것으로 여겨지는 회전문이 사실
민첩하지 못한 노인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는 오히려 굳게 닫혀 있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 주목했다.

강나영, 〈기대어 지탱하고 나아가는〉(세부 이미지), 2023,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스티로폼, 스펀지, 실리콘, 폴리카보네이트, 우레탄 시트, 자작나무 합판, 모터 및 혼합매체, 가변크기, 《두산아트랩 전시 2023》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3) ©강나영
이를 바탕으로 한 〈기대어 지탱하고 나아가는〉(2023)은 회전문과
의수족(義手足)에 참조점을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접근성을 방해하는 일반 회전문을 실제 의수족이나 재활도구에 쓰이는 신체를 보호하거나 손상을 방지하는
실리콘과 스폰지와 같은 재료로 만들고, 각 문의 형태를 다양한 신체가 통과될 수 있게 제작했다.
실제 회전문처럼 네 개의 문들은 천천히 회전한다. 강나영은 이 작품에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지하는 보살핌의 제스처를 담으며, 우리 주변에 산재한 문턱과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비-듀티 Heavy-Duty》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4) ©강나영
이듬해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린 개인전 《헤비-듀티 Heavy-Duty》에서 강나영은 한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의 관계와 정신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집’이라는 공간에 투영하여 풀어내고자 했다. 작가는 이를 위해 전시장 내부를 일상의 공간 경험과 기억된 생활방식, 보조
장치를 따라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전환하였다.
강나영은 이전의 작업에서 특수한 신체가 보편이라 일컬어지는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대안적 공공 시설물 연구와
함께 정상화를 향한 온 가족의 염원을 담은 입체 설치와 영상 작업을 진행해 왔다면, 본 전시에서는 몸의
장애와 한계를 집이라는 객체에 비유했다.

강나영, 〈로컬룰: 화장실〉, 2024, 단채널 영상(컬러 / 2채널 사운드, 5분 27초, 루프), 폴리스티렌 블록, 발포제, 퍼티, 비누, 칫솔, 130x78x220(h)cm, 《헤비-듀티 Heavy-Duty》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4) ©강나영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영상 시리즈 ‘로컬룰’(2024)은 “문밖을 나가기 위한 훈련이 이루어지는 집안의 상황을, 그리고 이를 돕는 자들의 동작, 언어, 시선을 담은 영상설치 작업이다. 다만 여기서 훈련은 지극히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의미한다.(작가노트에서)”
거실 창문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서 수혜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각 신체 부위를 맡은 돌봄자 3인이 함께 균형을 잡으며 걷는 연습을 한다. 이들의 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식탁 앞에서는 음식 섭취와 발음교정을 위해 연습곡을 부르고, 화장실에서는 신체가 닿지 않도록 욕조, 변기, 문을 맡아 움직이는 모습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강나영, 〈로컬룰: 마인더갭〉, 2024, 단채널 영상(컬러, 2분 14초, 루프), 혼합매체, 180x83x18(h)cm, 《헤비-듀티 Heavy-Duty》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4) ©강나영
집안과 밖의 경계로서 현관이나 문지방은 미지의 불안한 상황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와 정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작가는 진입의 방해물로 작용하는 출입문의 문턱에 시선을 둠으로써 집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민한다.
강나영은 전시 《헤비-듀티 Heavy-Duty》와
관련하여, “연약한 힘을 다루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아직 인간을 대체할 가성비 좋은 기계 상품이 없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돌봄이 섬세하고 예민한 물리적·정신적 노동을 요구하는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의 작업은 연약함을 감각하기 위해 우리의 인식과 시선, 그리고
태도가 변화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강나영, 〈균형나비〉, 2024, 단채널 영상(컬러, 2분 17초, 루프), 화분, 종이, 가변크기, 《헤비-듀티 Heavy-Duty》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4) ©강나영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 나비의 이미지는 “연약한 힘을 다루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은유한다. 이는 피부를 가진 인간만이
나비의 날개를 잡는 것과 같이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두 날개로 균형을 유지하며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인간 역시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안에서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균형을 맞춰가며 살아간다는 점을 드러낸다.

최근의 작업에서 강나영은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집 문턱을 넘어 외출하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2025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외출하는 날》에서 작가는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로 구성되어
있는 가족이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외출하는 과정을 전시 공간에 재현했다.

《외출하는 날》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5) ©금호미술관
전시는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과 함께 외출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여정 속에 내재된 시간과 속도, 거리, 접근성, 감정
등을 내러티브 중심의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여정의 중심에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이는 몸이 불편한 가족과 함께 외출할 때 자동차로만 이동이 가능했던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영상은 가족이 차에 오르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다시 차에서 내리는 이동 과정을 어떠한 편집 없이 실제 이동 시간에 맞추어 전개되며, 관객은 이를 감상하는 동안 가족의 이동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강나영은 이러한 과정을 시각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관객이 직접 몸을 움직이고 다양한 감각을 동원하도록
함으로써 가족의 이동 여정에 동참하게 만든다. 이동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고 넘어서야 하는 수많은
난간들(울퉁불퉁한 요철들로 가득한 길, 자갈이 깔린 주차장
등)로 인한 긴장감과 감정을 공간화하며, 관객이 자신의 몸으로써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전에 참여하며 출품한 작품 또한 돌봄이 수반되는 이동의 여정을 다룬다.
그의 신작 〈E14〉(2025)는 한 가족이
영화 관람을 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영화관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발생하는 돌봄의 행위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공간들을 재현한다. 작가는 자동차, 자동문, 영화관의
장애인 좌석 등 다양한 이동 수단과 공간을 통해 가족들의 특수한 노동과 긴장감 등의 감정들을 입체적으로 재현하며,
이를 관객에게 경험의 공간으로 제시한다.

강나영의 작업은 연약한 힘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정상적인 혹은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돌봄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강조한다.
작가는
‘불완전한 몸’을 돌보기 위해 부과된 책임과 부담감, 그리고 염원이 어떠한 사회구조적 상황에서 생성되었는지 고민하고, 이를
동시대의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실험을 이어오며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해석되는 다양한 소수자들을 향한 시선과 태도에 대한 재고를 역설한다.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신체에서 촉발되는 감정과 심리 상태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무력감과 좌절감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기대하는 심리 등 신체 그 자체보다 주변적인 관계나 연결감에서 작업의 단초를 발견하고 있다.” (강나영, 인천아트플랫폼 《날 것》 전시 도록 인터뷰
중)

강나영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강나영은 University of Leeds 순수미술과에서 학사 졸업
후 Royal College of Art 조소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으로는 《외출하는 날》(금호미술관, 서울, 2025), 《헤비-듀티
Heavy-Duty》(씨알콜렉티브, 서울, 2024), 《The Missing
Fish》(오시선,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두산아트랩 전시 2023》(두산갤러리, 서울, 2023), 《re;side》(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수원, 2022), 《날 것》(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2), 《Fingers
Crossed》(아웃사이트, 서울, 2021),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0), 《Parlour
Geometrique》(Chiswick House, 런던,
2018), 《Hypnogogic Holiday》(Safehouse
Gallery 2, 런던,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참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고양, 2025), 수원문화재단 푸른지대창작샘터(수원, 2022), Mas Els Igols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바르셀로나, 2018)이 있다.
References
- 강나영, Nayoung Kang (Artist Website)
-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인터뷰 | 강나영 |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National Musue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ARTIST INTERVIEW | Kang Nayoung | Young Korean Artists 2025: Here and Now)
-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2025 고양레지던시 21기 입주작가 소개] 강나영 (National Musue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2025 MMCA Residency Goyang Artist-in-Residence] Nayoung Kang)
- 인천아트플랫폼, [도록] 날 것 (Incheon Art Platform, [Catalogue] The Raw)
- 두산아트센터, [서문] 두산아트랩 전시 2023 (DOOSAN Art Center, [Preface] DOOSAN Art Lab Exhibition 2023)
- 국립현대미술관, [리플렛]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National Musue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Refleat] Young Korean Artists 2025: Here and Now)
- 씨알콜렉티브, [서문] 헤비-듀티 Haevy-Duty (CR Collective, [Preface] Haevy-Duty)
- 퍼블릭아트, [리뷰] 강나영_헤비-듀티 (Public Art, [Review] Nayoung Kang_Heavy-Duty)
- 금호미술관, [전시 소개] 외출하는 날 (Kumho Museum of Art, [Exhibition Overveiw] A Sunday Outing)
- 서울자치신문, 금호미술관 2025 금호영아티스트 (2부) 강나영 유상우 주형준 작가 개인전, 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