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초(b. 1984)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문학적 상상으로 넘나들며 우리의 삶을 형태와 물질에 기대어 서사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가는 국내외의 과학 뉴스와 공상과학 소설에서 접한 비인간 생명체들을 통해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삶을 상상하고, 이를 조각, 설치, VR영상
등을 활용해 현재 시제로 치환한다.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전시 전경(시대여관, 2018) ©오묘초
초기 시리즈부터 현재까지 오묘초는 작업의 기반이 되는 소설을 먼저 쓰고 그 소설이 잉태한 세계관에 근거한 작업을
현실 세계에 낳아왔다. 소설 속 그의 상상은 물질의 형태로 번안되어 물리적인 현실 세계 내부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실체를 지닌 객체로서 제시된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시대여관, 2018) 또한 이러한 작업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창신동 쪽방촌에 위치한 폐허가 된 여관을 전시 공간이자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전시 전경(시대여관, 2018) ©오묘초
오묘초는 폐허의 잔재로부터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그들의
소외된 역사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시대여관을 무대로 삼아 동일한 결말의 옴니버스식 에피소드
12개를 상상하고, 이를 조각의 형태로 체현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폐허에 남겨진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을 한 겹 씩 드러내며 이에 새겨진 삶의 흔적과 기억들을 물리적 실체로 호명하고 현재화 한다.

《Broken Reality》 전시 전경(수림아트센터, 2020) ©오묘초
이후 오묘초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직면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령 2020년 수림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전시 《Broken Reality》에서는 가짜뉴스를 비롯한 온갖 정보가 떠돌아 다니는 인터넷 환경과 맞닿아 있는 오늘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Broken Reality》 전시 전경(수림아트센터, 2020) ©오묘초
작가는 스마트폰 액정 너머로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가볍게 보고 믿어 버리는 현상을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하여 전시 공간에 재현하였다. 관객의 눈 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원을 내리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홀로그램 영상을 누워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무수한 정보로부터 피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을 극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점보 쉬림프》 전시 전경(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21) ©오묘초
이후 2021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점보 쉬림프》에서는
거대 디지털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누적되고 있는 개인의 기억과 정보를 소재로 삼았다.
전시에서 작가는 사적인 기억을 비롯한 각종 개인 정보가 데이터 산물로 클라우드에 남겨지고 악용되는 현 시대의
문제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진 두 개의 공간을 조성하여 꼬집었다. 공간의 한 축에는 흙으로 만든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표면에는 인터넷상에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용자 인증 시스템인 ‘캡차(CAPTCHA)’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오묘초, 〈다른 곳에서 와서 다른 곳으로 가는 다른 곳의 문학〉(세부 이미지), 2021, 세라믹, UV프린트 월페이퍼, 스틸, 가변크기, 《점보 쉬림프》 전시 전경(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21) ©오묘초
인간과 기기를 구별하는 단서조차 거대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에 누적되고 있는 현실을 전통 조각의 방법론으로 우회하여
보여주는 한편, 다른 공간에서는 작가 개인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파편들과 사회 곳곳을 떠도는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이미지들’을 조각의 형태를 빌어 재현하였다.
예를 들어, 금속 체인과 유리로 만들어진 그물 형태의 조각은 어린
시절 처음 간 스키장에서 탄 1인용 리프트에 대한 공포스러운 기억을 담고 있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발 밑의 그물망에 떨어져 있는 사물들은 되려 작가로 하여금 추락을 상기시켰다.

오묘초, 〈점보 쉬림프〉, 2021, 파이렉스 글라스, 서지컬 체인으로 엮은 그물, 가변크기, 《점보 쉬림프》 전시 전경(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21) ©오묘초
작가는 캡차의 격자에서 리프트의 그물망을 겹쳐 보았다.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지만 인간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캡차는 마치 듬성듬성 엮인 그물처럼 인간이라는 토대만을 확인할 뿐이다. 작가는
이러한 빈틈을 채우는 일이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작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두 개의 전시 공간을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에 따라 새롭게
엮이고 해석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약하고 불안한 세계의 빈틈을 메울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2021년 오묘초는 뇌과학자와의 협업을 계기로 인간의 뇌세포 연구
모델인 바다달팽이를 이용한 ‘기억의 전이와 대리 감각 실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SF적인 상상을 작업에 녹여 내기 시작했다.
2022년부터 진행해 온 연작 ‘누디
핼루시네이션’은 ‘바다달팽이의 기억 전이 실험’에서 영감을 받아 기억과 감정이 데이터화되어 유통되고 타인의 기억을 편집하여 자신의 정체성으로 구성하는 미래의
모습을 제시한다.

오묘초, 〈누디 핼루시네이션 #1〉, 2022, 유리, 실버, 피그먼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인공식물, 레진, 서지컬 체인, 인공식물, 100x210x130cm ©오묘초
작가는 이러한 미래를 살고 있는 지성체를 수서인(水棲人)의 형태로 표현했다. 작가가 만든 세계관에 의하면, 미래의 인류는 환경파괴로 인해 지상에서의 삶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심해로 이주하여 수서인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다.

오묘초, 〈누디 핼루시네이션 #1〉, 2022, 유리, 실버, 피그먼트,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인공식물, 레진, 서지컬 체인, 인공식물, 100x210x130cm ©오묘초
미래의 인류인 수서인을 표현한 ‘누디 핼루시네이션’의 조각 작품은 바다달팽이의 외·내형을 닮은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곡선의 유리조형과 젤리처럼 바닥으로 퍼진 레진 설치물은 연체동물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신체를 연상시킨다.
투명한 유리 안쪽에는 언제든 타인에게 이식 가능한 기억이 저장된 뉴런의 긴 섬유질과 신경 세포체가 가지 줄기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세계관에서 탄생한 VR영상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 〈배럴아이〉(2023)는 타자의 기억을 자신의 삶으로 우회하여 전달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을 전제로, 그 기억에 동반되는 물리적 환경과 신체 사이의 이격 지점을 상상한다.
VR 속 세계는 지상에서의 삶이 불가능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며, 관객은 그 안에서 다양한 물성의 기억을 만지고 타인의 기억에 접하는 순간을 거닐며 이동하게 된다.

《변형 액체》 전시 전경(수림큐브, 2023) ©수림문화재단
나아가 오묘초는 2023년 수림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변형 액체》에서
‘누디 핼루시네이션’의 세계관을 더욱 발전시켜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과 그 이후 세계의 대안적 삶에 대해 다뤘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고대 균이 다시
출현하게 되는 것처럼, 오묘초의 조각은 인류의 존재 이전부터 생존했던 땅속 생명체가 진보하거나 퇴화한
변형 상태를 드러낸 유동적 존재로 작동한다.

그가 상상한 현생 인류 이후의 존재는 송진, 수초, 버섯 등 자연 재료를 혼합하여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체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살과 뼈가 아닌 1,0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녹는 물질인 유리와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져, 온도가 다른 환경에서 반고체화된 상태로 유동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형 생체조각은 고생대의 원시 생물을 닮았지만 인간이 축적해 온 지식 안에서 정의될 수 없는
새로운 뇌와 DNA, 진화의 정보를 가지고 태어난 새로운 종(種)을 제시한다.

이처럼 인간의 종말 이후 새로이 피어날 생명을 상상하는 오묘초의 작업은 새로운 기술이 담보할 수 있는 환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며, 인간이 미래에 취해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질문한다.
”제가 만든 조형물은
인간 이후의 세상, 우리 뒤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작은 상상입니다. 미래의 시점을 빌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거기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공존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길 바라요.” (오묘초,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오묘초 작가 ©수림문화재단
오묘초는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변형 액체》(수림큐브, 서울, 2023), 《Punch-Drunk: 발굴된 미래》(작은미술관 보구곶, 김포,
2023), 《배럴아이》(오시선, 서울, 2022), 《점보쉬림프》(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Cell Struggles》(파운드리 서울, 서울, 2025),
《예술과 인공지능》(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4), 《집(ZIP)》(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4도씨》(세화미술관, 서울, 2024), 《풍경들》(우손갤러리, 대구, 2023), 《데이터정원》(김희수아트센터, 서울, 2022),
《섀도랜드》(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1)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오묘초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2),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23)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작가는 2020년 수림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24년에는 아트바젤 스테이트먼츠
섹터에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은 수림아트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오묘초, Omyo Cho (Artist Website)
- 우손갤러리, 오묘초 (Wooson Gallery, Omyo Cho)
- 비애티튜드, 묵묵히,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 월간미술, 오정은 – 다시 만난 세계의 기억
- 한겨레, “예술로 사회적 문제 풀어낼 수 있어야”, 2020.07.02
-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점보 쉬림프 (Artist Residency TEMI, Jumbo Shrimp)
- 수림큐브, [서문] 변형 액체 (Soorim Cube, [Preface] Altered fluid)
- 파운드리 서울, [서문] Cell Struggles (FOUNDRY SEOUL, [Preface] Cell Strugg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