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주(b. 1988)는 경계의 안과 밖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차이를
물리적인 조각의 형태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작가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허구적 실체와
현실에 존재하는 간극에 주목하며, 이를 다양한 재료의 접합과 병치를 통해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촉각성을 시각화한다.

장효주, 〈Panopticon〉, 2015, 3D 애니메이션, Full HD, 1min 50sec. ©장효주
작업 초반의 장효주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입체적인 형상을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물리적 매체를 다루는 과정과 동일하게 재료를 자르거나 붙이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덩어리가 부재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이후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실험적인
조각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장효주, 〈R.S. #1〉, 2019, 세라믹, 27x37x2.8cm ©장효주
이를 위해 물리적 신체를 가진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작가는 전통적인 조각 또는 공예의 재료부터 자연물, 공산품, 산업재료 등 다양하고 서로 이질적인 재료를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이러한 자신의 조각적 실험을 “재료적 놀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와 일상적인 오브제 또는
비조각적인 재료를 합치고 병치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해 나가며, 이를 작품에 접목시키는
장효주의 작업 과정을 의미한다.

그의 재료적 놀이로서의 작업은 세라믹, 에폭시, 라텍스, 인조 모피, 금속, 직물 등 다양한 재료의 본래의 속성과 쓰임을 없애고 예상치 못한 접합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물은 마치 현실 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를 대면한 듯한 경험을 자아내거나 보아서는 안 될 내부의 것이 밖으로
흘러나온 듯한 생경하고 기묘한 상태로 전시장에 놓인다.

장효주, 〈O.S. #6〉, 2021, 라텍스, 인조 모피, 줄, 가변크기 ©장효주
아울러 장효주는 3D 프로그램이라는 진공 상태의 가상 세계에서 물리적인
역학이 작용하는 실제 세계로 작업을 전환하면서, 재료적 실험뿐만 아니라 결과물이 실제 공간 안으로 옮겨졌을
때 어떠한 상태의 변화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어떤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탐구했다.

《Diplomausstellung》 전시 전경(AdBK Munich, 2020) ©장효주
중력에 의해 벽면으로부터 떨어져 내려와 아래를 향해 축 쳐진 모습의 ‘R.S.’(2019-2020)
시리즈,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모피가 바닥면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는 모습의 ‘O.S.’(2021) 시리즈 등은, ‘중력’이라는 자연의 힘과 덩어리의 물질이 만났을 때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공간과 어떤 긴장감 있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장효주는 일상적인 공간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안과 밖 양 끝의 낙차를 ‘질감-촉각’을 통해 강조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2021-2022) 시리즈는 우리의 일상에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섞이는 공간 중 하나인 발코니를 주제로 삼아 제작되었다.
작품은 실내와 실외의 중간 지대인 발코니를 연상시키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난간 조형물과 함께 라텍스로 만들어진
까마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까마귀는 실외라는 공간적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라텍스로 된 피부를
통해 조각의 표면과 내면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장효주,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 #1-2〉, 2021, 라텍스, 쇠사슬, 프랑스식 발코니, 가변크기 ©두산아트센터
라텍스는 장효주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작가는 이를 “조각의 안과 밖을 뒤집는 주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설명한다. 피부처럼 얇고 유연한 라텍스의 물성은 어떠한 형태든 표면에 밀착되며 조각의 ‘외부’를 ‘내부’처럼 보이게
하거나, 그 반대로 내부의 구조나 윤곽이 외부로 드러나게 만든다.

또한 라텍스의 유연한 속성은 조각의 안팎을 물리적으로 뒤집어 표현할 수 있어,
형태의 경계를 전복시키거나 해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효주는 이처럼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써 라텍스를 작업에 등장시키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뒤집는
조각적 장치로 활용한다.

이러한 물질과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팬데믹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와 맞물리며 심화되었다. 물리적 경험의 부재가 물리적 접촉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고 본 작가는, ‘물질화’ 그리고 ‘대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모순점을 찾아 이를 작업의 주제로 삼아 왔다.

2024년 지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는
대부분 휴대폰과 모니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시각 경험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 장효주는 디지털로 접하는 대상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실제 대상 사이의 간극을 조각의 ‘촉각성’에 입각하여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특성을 다뤘다.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전시 전경(지갤러리, 2024) ©지갤러리
이전 개인전에서 작가는 공간적 차원에서의 안과 밖을 다뤘다면, 본
개인전에서는 물질 자체의 안과 밖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액정 위에 손가락을
얹으며 모든 이미지를 제어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촉각성, 즉 물질의 본질에는 도달할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미끈한 유리 액정을 통해 나타나는 납작한 디지털 이미지를 물질로 옮김으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낙차에 물리적 덩어리를 부여했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장효주의 조각은 겉보기에는 실재로의 접근에 제약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는 순간 조각의 이면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얇은 막과 같은 장치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Cast Skin’(2023-2024) 시리즈는 지퍼가
열어 젖혀져 있어 감춰져 있던 내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그 내부에는 천이나 털과 같은 촉각적인 재료들이
채워져 있지만, 얇은 실리콘 막이 그 위를 감싸고 있어 재료의 질감은 이내 뭉툭해지고 만다.

장효주, 〈Cast Skin #1〉, 2023, 실리콘, 지퍼, 3x3x1310cm ©지갤러리
관람자는 활짝 열려 있는 지퍼 사이로 보이는 내부의 존재를 분명하게 감지하지만 투명한 막에 의해 안쪽에 담긴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육안으로 표면만이 감지될 뿐 촉각이나 여타의 감각적 경험은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져 지퍼가 단단히 채워진 후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임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이는 곧 모니터 화면 안에 갇힌 세계를 향해 손을 뻗어도 기기의 표면에만 머무르는, 즉 본질에는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장효주, 〈Cast Skin #1-3〉, 2024, 실리콘, 지퍼, 가변크기 ©지갤러리
이처럼 장효주는 기성품의 원리를 활용하여 납작한 가상의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통합시킨다. 이때 작가는 일상적인 재료로 낯선 조합을 만들어 내며, 보는 이에게
익숙한 동시에 언캐니(Uncanncy)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우리가 일상과 실제에서 가상의 이미지를 대면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장효주는 이와 같은 유사 감각을 역추적하는 과정을 관람자와 공유하며, 조각의
새로운 지표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지가 덩어리의 물질로 옮겨질 때, 물질(Material)은 실재계의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중력-너무 학문적인 개념이 아니라 원초적 힘과 물질의 관계)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커다란 덩어리를 잘라보자면, 그 덩어리의 단면은 비어있나
차있나의 의문이 생겨난다. 때때로 그 단면은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효주, 작가 노트)

장효주 작가 ©삼성문화재단. 사진: 바스티안 자텔베이거.
장효주는 국민대학교 입체미술 전공 졸업 후, 뮌헨조형미술대학에서 Stephan Huber 교수에게 수학한 이후 Alexandra Bircken
교수로부터 사사하여 마이스터슐러린으로 디플롬을 졸업하였다. 개인전으로는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지갤러리, 서울, 2024), 《까악까악 - 훠어이
– 쨍!》(사가, 서울, 2022), 《까마귀! 까마귀! 까마귀!》(게독, 뮌헨, 2021)이 있다.
또한 작가는 《동물들》(Galerie Gruppe Motto, 함부르크, 2024), 《중심의 전환》(토탈미술관, 서울, 2023), 《두산아트랩 전시 2023》(두산갤러리, 서울, 2023), 《대면_대면 2021》(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2),
《전시후도록 2021》(웨스, 서울, 2021), 《그 사이 어딘가》(시청갤러리, 뮌헨, 2020) 등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참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는 파리 시테 레지던시(2025-2026), 레지던시
우라(URRA; 2024)가 있으며, 에르빈 및 기젤라 폰
슈타이너 재단에서 프로젝트 지원(2024) 및 베이에른주 과학예술부에서 스튜디오 지원(2023)을 받았다.
References
- 장효주, Hyojoo Jang (Artist Website)
- 사가, [서문] 까악까악 - 훠어이 - 쨍! (SAGA, [Preface] Caw caw – Shooo – Ping!)
- 두산아트센터, [서문] 두산아트랩 전시 2023 (DOOSAN Art Center, [Preface] DOOSAN Art Lab Exhibition 2023)
- 지갤러리(G Gallery), Jang Hyojoo 장효주 |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Artist Talk
- 지갤러리, [서문]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G Gallery, [Preface] Invisible to the Naked Eye)
- 매일경제, 활짝 열린 지퍼, 그 안이 궁금해지네, 2024.05.21
- 삼성문화재단, [보도자료] 2025-2026년 파리 시테 레지던시 입주작가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