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조한나(b. 1991)는 해부학을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소로 사용함으로써, 본질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신체 내부를 재현한 듯한 그의 회화는 인간의 외양을 이루는 표면적인 것을 벗겨내어 그 안에서 보편적인 본질을 탐구한다. 작가에 의해 해체되고 재구성된 인간의 몸은 그 특징을 초월하여 우리 존재의 보편적 본성을 상기시킨다.

조한나, 〈Stehaufmännchen〉, 2022, 캔버스에 유채, 50x20cm ©조한나

작업 초기의 조한나는 인체 내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표정과 동작에 주목했다. 작가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공간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흥미로운 지점들을 캔버스 위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조한나는 독일에서 팬데믹 시기를 겪던 중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들을 마주하며 외부에서 드러나는 정체성을 배제하고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성적인 특징이나 옷, 피부색을 지우고 중성적인 실루엣으로 사람들을 표현했다.

조한나, 〈Weihnachtsmarkt〉, 2022, 나무에 유채, 30x25cm ©조한나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그림 속 인물의 성별을 유추하는 관람자의 피드백을 듣게 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정체성을 배제하고 싶다면 껍데기가 내 작품에 존재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며, 조한나는 사회적인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점점 표피를 벗기고, 인체 내부의 해부학적인 요소들에 시선을 옮겼다.


조한나, 〈Mass_series No.7〉, 2023, MDF에 아크릴, 21x29.7cm ©P21

이로써 조한나의 작업은 겉표면에 드러나는 특성뿐 아니라 인간의 외형 자체를 지우고, 그 내부의 구조를 그리며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체 표면에서 드러나는 인종, 성별 등의 정체성은 정보로 분류되지만 인체 내부는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가진다. 피부 위로 덧씌워진 여러 정보 레이어를 벗겨내고자 작가는 신체 내부의 해부학적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인간의 본질을 새로운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노해나 큐레이터는 그렇게 만들어진 조한나의 회화에는 “신체의 메타볼리즘과 유기체의 공생 발생이 포착되고, 민주적인 관계를 이루는 물질의 생동만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조한나, 〈Mass_series No.16〉, 2024, MDF에 아크릴, 21x29.7cm ©P21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해부학 전공 서적을 참고하여 여러 해부학적 요소들과 형태들을 공부했다. 그 다음, 캔버스와 같은 작업의 바탕에 즉흥적으로 하나의 색감 레이어를 얹고, 자연스레 우연으로 생성되는 붓 자국 등을 바라보며 구체적인 새로운 형태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때 조한나는 해부학적 서적을 통해 공부한 형태들을 바탕으로 어떠한 형태들이 접목되면 좋을지 신체를 파편화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들을 발견해 나간다.


조한나, 〈Portrait_series No.7〉, 2023, 나무에 아크릴, 40x30cm ©P21

작업 초반에는 해부학적 요소를 통한 형태적인 것에 집중했다면, 최근의 작업에서는 그러한 형태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상상하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서사를 확장해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조한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자 땅과 같은 공간적인 요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형태적 혹은 기능적인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뿌리와 같은 식물의 형태는 인간의 핏줄과 닮아 있다고 보았고, 인체와 땅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쉽게 그 내부까지 다 들여다볼 수 없는 새로운 미지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Land of Origins》 전시 전경(P21, 2025) ©P21

2025년 P21에서 열린 2인전 《Land of Origins》에서 조한나는 이와 같은 유사성에 착안하여 인체의 내부를 땅으로 비유해 공간을 구성하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그 속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조한나, 〈Portrait_Series〉, 2024, 나무에 아크릴, 40x30cm ©P21

현실의 신체 구조와 작가가 창조한 존재들의 혼합된 듯한 장면들은 가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화면을 선사하며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울림을 끌어낸다.
 
조각난 신체의 재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존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위에 그려진 “눈”을 발견하게 된다. 언뜻 그로테스크한 괴생명체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눈과 닮은 기관을 가졌음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낯설면서도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조한나, 〈Untitled〉, 2024, 캔버스에 아크릴, 150x180cm ©P21

작가는 이에 대해 “해부학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 새로운 자아성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형태들 위에 눈을 달았는데 이는 의인화, 캐릭터화를 의미한다. 해부학 자체가 그로테크스 하거나 다가오기 어려운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를 동등한 생명체로 바라보고 다가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의인화된 형태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조한나, 〈Untitled〉, 2025, 캔버스에 아크릴, 230x200x4.5cm (x2) ©국립현대미술관

아울러, 작가는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서도 마치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 본 듯한 내부 공간들이 묘사되어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땅속이나 인체의 근육 구조를 연상시키는 공간에는 식물의 뿌리, 근섬유, 미생물과 균류 등이 얽혀 있는 듯한 새로운 생명체와 같은 형상이 등장한다. 

조한나,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국립현대미술관

조한나는 회화 내부 공간 속 새로운 혼종적인 존재들에 생동감을 부여하고자 다양한 입체감과 여러 표면적인 텍스처를 더하는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투명한 안료로 마감 처리를 하여 캔버스 본연의 색을 그대로 남겨둔 다음, 그 위에 다양한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조한나, 〈Untitled〉, 2024, 캔버스에 아크릴, 27x33cm ©P21

이후 작가는 캔버스나 나무 판자 위에 아크릴릭 물감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양한 색감 레이어를 만든 뒤, 인두 또는 다양한 텍스처를 가진 붓이나 물, 헝겊 등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그 표면을 벗겨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기존에 쌓아 올린 레이어들은 서로 혼합되고 물성이 변화하는 과정과 흔적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게 되며, 화면의 표면감과 묘사된 대상들에 생동감을 더한다.


강철규, 〈이방인과 포식자〉, 2025, 캔버스에 유채, 227x364cm ©아라리오갤러리

마치 광학 기계를 통해 들여다본 신체와 자연의 내부를 재현한 듯한 조한나의 이미지들은 사회적 또는 문화적 기준 너머의 평등한 세계를 은유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 유기체와 비유기체, 나와 타자의 경계를 흐리며, 존재의 근원적인 상호연결성을 탐구하는 시각적 언어로 작동한다.  

그의 작업 속 경계 없이 이어진 새로운 혼종적 생명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내면의 본질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나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물감을 덧입히고 걷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간이 지나며 내 안에 쌓여온 감정과 기억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물감의 층이 쌓이면서 다양한 색감과 질감이 더해지고, 이를 통해 관람자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조한나, 작가 노트) 

조한나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한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소재한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 재학중이며, 개인전으로는 《Persona》(Raum6, 슈투트가르트, 2023)가 있다.
 
작가는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Land of Origins》(P21, 서울, 2025), 《Exoskeleton》(P21, 서울, 2024), 《Keine schlafenden Hunde wecken》(Wagenhallen, 슈투트가르트, 2024), 《Youth Sanctuary》(Joseph Konsum, 라이프 치히, 2023), 《Rundgang》(ABK, 슈투트가르트, 2022), 《Süsse Stückchen》(im Kunstverein, 뵈블링겐,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조한나는 2024년 P21 갤러리와 함께 프리즈 서울에 참여하였으며, 2025년 제27회 연방 미술학생상 후보자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