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곤(b. 1994)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내부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몸은 만질 수 있으며 너무도 당연하게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내부의 세계는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온전히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러한 신비로움이 응축된 몸에 대해 탐구하며, 몸속의 감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신체적 특성과 형상을 현실 세계의 풍경과 뒤섞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연상하게 한다.

《불거지는 풍경》 전시 전경(공간형, 2019) ©임창곤. 사진: VDK_Generic Image.

초기 작업에서 몸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내부로 향하기보다는 외부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몸의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한다. 가령 2019년 공간형에서 열린 개인전 《불거지는 풍경》은 퀴어 남성의 신체에 가해진 타자화와 대상화에 투쟁하듯 그려낸 강렬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과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붉고, 조각나고, 조합된 남성의 신체들은 대담한 태도로 기존 “정상적”인 범주의 성 관념에서 벗어나는 성적 행동이나 감정 등을 노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 남자들은 엉덩이를 높이 들어 성기와 항문을 드러내고 있거나, 쭈그리고 앉은 채 부끄러움인지 소심함인지 모를 감정을 모순적이게도 제일 대담하게 드러내 놓고 있다.

《불거지는 풍경》 전시 전경(공간형, 2019) ©임창곤. 사진: VDK_Generic Image.

이 일련의 작업들은 타자화된 퀴어 남성으로서 겪게 된 억압을 개인적이고 내밀한 회화 매체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작가는 ‘감정적인,’ ‘수동적인,’ ‘삽입 당하는’ 등의 수식을 모두 부정적으로 만든 남근 중심적 사회를 지적한다.
 
이러한 인간의 일면이 곧 ‘호모’ 프레임으로 작동한다고 본 임창곤은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로부터 만들어진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신 이외의 다른 퀴어들이 갖는 억압감을 잠시나마 해소할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고 말한다.

임창곤, 〈비어있는 남자〉, 2018, 나무 패널에 유채, 133x145cm ©임창곤. 사진: VDK_Generic Image.

작가 노트에 따르면, 일련의 작업물은 ‘호모 프레임,’ 나아가 ‘나약한 존재’로 통칭해버리는 이 덫을 전사하는 과정이다. 임창곤은 그림의 지지체가 되는 여러 조각의 패널 혹은 캔버스 프래임을 퀴어 신체를 가두는 사회적인 ‘덫’으로 상정하고, 이 덫의 배치를 이리저리 바꾸고 조합하면서 전체 프레임의 모양 속에 어떠한 자세로 갇혀 있을 법한 남성 인체의 형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임창곤, 〈비어있는 남자〉, 2019, 나무 패널에 유채, 105x183.5cm ©임창곤. 사진: VDK_Generic Image.

그의 작업은 회화 매체에서 이미지가 구현되는 과정을 도치시킨다. 주어진 공간(환경)에 맞춰 프레임을 배치하고 조합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이미지는, 사회가 만든 스테레오 타입에 덧씌워진 퀴어 남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붉은 신체들은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풍경은 이성애-남성 중심적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퀴어 존재들의 있는 그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을 담고 있다. 그들을 구속시킨 프레임 안에서도 그들은 살기 위해 움직이고, 몸은 붉어진다.

임창곤, 〈끼어드는 남자〉, 2020, 나무 패널에 유채, 165x175.8cm ©임창곤. 사진: VDK_Generic Image.

이처럼 임창곤은 소수자로서의 고민과 갈등을 회화라는 매체의 형식적 실험을 통해 풀어나갔다. 작가는 사회가 만든 “정상성”의 기준에서 빗겨 난 이들의 신체를 해체하고 전치하고 재조합하면서, 그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회화적 행위로써 맞닥뜨리고 저항한다.
 
그의 회화에서 주 지지체이자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나무 패널은 작업의 바탕이자 몸에 대한 은유가 된다.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고 물리적인 힘을 가해 자르고 깨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재료와 대화하는 느낌”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손에 가해지는 중력과 압력을 충분히 느끼면서 재료와 교감하고 경험한다. 

《48!: 움직이는 몸짓》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다로그, 2022) ©임창곤. 사진: 고정균.

2022년 스페이스 카다로그에서 열린 개인전 《48!: 움직이는 몸짓》에서 임창곤은 작품의 작동 방식에 대한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작가는 전작인 ‘비어있는 남자’(2018-2019) 시리즈에서 신체가 패널이 걸린 흰 벽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이 전시에서 선보인 ‘움직이는 몸짓’(2022)을 작업할 때는 패널 밖으로 몸이 튕겨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임창곤, 〈움직이는 몸짓〉(세부 이미지), 2022, 나무에 유채, 240x320cm ©임창곤. 사진: 고정균.

‘움직이는 몸짓’ 시리즈는 고정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 변동가능한 상태를 함의한다. 약 3주간의 전시 기간동안 작가는 매일 전시장으로 나와 작품의 배열을 바꿨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재료와 대화를 나누듯, 매일 이 순간의 몸에 집중하며 형상을 찾고 드러내고 섞었다.
 
전작들에 비해 크기가 커진 개별 조각들은 마침내 신체 스케일에서 벗어나 벽을 가득 메움으로써 그의 ‘몸’은 점차 확장하기 시작한다. 앞서 작가가 언급했던 “패널을 벗어나 공간으로 튕겨져 나오는 감각”은 공간과 그 곳에서의 운동성까지 작품의 요소로 확장됨으로써 느낀 감각의 변화였을 것이다. 

임창곤, 〈결정체, column〉, 2022, 나무에 유채, 160x50cm ©임창곤. 사진: 고정균.

한편 패널을 잘라 형상을 떠내면서 발생한 여백 조각을 조합해 만든 ‘결정체’ 연작은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독립된 작품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작품들은 일종의 조립식 조각으로, 언제든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임창곤, 〈공기가 지나가는 길〉, 2022, 나무 패널에 유채, 27.3x22cm ©임창곤. 사진: 고정균.

‘움직이는 몸’과 ‘결정체’가 몸의 형태에 관한 작업들이라면, 오로지 붓질만을 통해 회화에 근접한 태도로 그려진 작업 〈물이 고이는 웅덩이〉(2022) 〈공기가 지나는 길〉(2022)은 몸이라는 장소 내부를 드러낸다.
 
이 일련의 그림들은 보이지 않지만 감각할 수 있는 몸의 내부에 대한 작가의 상상적 풍경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근육, 손이나 발가락 같은 신체 일부, 기다랗게 늘어진 내장, 동식물의 형상, 돌과 같은 무생물까지 작가가 경험하고 상상했던 모든 요소들이 혼재된 형상들이 자리한다. 

임창곤, 〈살아있는 공간〉, 2023, 나무에 유채, 가변크기, 《Exoskeleton》 전시 전경(P21, 2024) ©임창곤. 사진: 백승환

임창곤은 작가 노트에서 재료를 “만지고, 부수고, 뒤섞고, 결합하며 일어나는 움직임은 이 존재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나의 몸과 내가 있는 공간을 실감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곧 그로 하여금 몸 속을 마치 거대한 동굴처럼 바라보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 몸 속의 통로를 상상하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몸 속의 공간을 감각한다. 입으로 시작해 항문까지 이어지는 몸의 통로는 결국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내부는 매끌거린다. 작가는 이러한 내부는 끈적거리고 흐르는 동시에 결국 쪼그라들고, 특정한 형태로 안착되는 페인팅 오일과 닮아 있다고 보았다.

임창곤, 〈Flowing Light〉, 2023, 나무에 유채, 85x488cm, 《Exoskeleton》 전시 전경(P21, 2024) ©임창곤. 사진: 백승환

임창곤은 매끌거리는 몸의 공간을 탐험하며, 무수히 많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몸속의 주름’과 흐르고 고이는 동시에 결국 쪼그라드는 ‘물감의 주름’을 함께 찾아 나간다. 몸속의 감각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찐득한 피와 진액, 동굴 속 종유석, 마그마를 분출하는 화산, 꼬여 있는 장기, 오래된 나무의 뿌리” 등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어떤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형상들은 물감과 뒤섞이며 주름의 물성을 만들어 낸다. 정확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징그럽지만 아름다운, 그로테스크하지만 매력적인 주름들은 양가적인 성질을 오가며 무언가로 변화할 것 같은 상태를 자아낸다.

임창곤, 〈Shelter〉, 2023, 나무에 유채, 48x43.1cm, 《Exoskeleton》 전시 전경(P21, 2024) ©임창곤. 사진: 백승환

즉, 임창곤의 작업은 몸속의 어두운 통로를 탐험하며 찾아낸 작은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일이다.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몸속의 감각은 쪼그라든 핏줄처럼 돌출된 물감의 표면, 노란빛을 내뿜고 있는 것 같은 색채의 인상, 거칠게 깎은 외곽의 형태, 실재감이 느껴지는 지지체의 두께 등을 통해 단단하고 볼륨감 있는 물리적 실체가 된다. 

임창곤, 〈The Multiplying Breath〉, 2024, 나무에 유채, 300x390cm (가변크기), 《크러쉬 존》 전시 전경(갤러리 SP, 2025) ©갤러리 SP

나아가 작가는 이 살아있는 주름들을 더 광활하게 뻗어 내며 그 자체로 공간이 되는 것을 상상한다. 그는 자신의 몸, 그리고 그 밖의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감각하며, 몸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촉각화하고 공간화한다. 이러한 임창곤의 작업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몸의 감각적 실체를 찾아 나가기 위한 여정으로, 작가 자신뿐 아니라 보는 이 또한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신체를 감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정확하게 무엇이라 지칭할 수 없지만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어떤 것을 계속해서 연상하면서, 징그럽지만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하지만 매력적인 이 몸속의 생명들이 무언가로 계속 변화할 것 같은 상태를 만들어요. 그리고 제 자신 또한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는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임창곤, 서울시립미술관 〈2024 난지액세스: 프리미어〉) 

임창곤 작가 ©아트인컬처. 사진: 김지현.

임창곤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과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서양화과 석사 과정 중에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48!: 움직이는 몸짓》(스페이스 카다로그, 서울, 2022), 《불거지는 풍경》(공간형, 서울, 2019)이 있다.
 
또한 작가는 《크러쉬 존》(갤러리 SP, 서울, 2025), 《말하는 머리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5), 《Exoskeleton》(P21, 서울, 2024), 《두산아트랩 2023》(두산갤러리, 서울, 2023), 《21세기 회화》(하이트컬렉션, 서울, 2021), 《Gaze》(공간사일삼, 서울, 2020), 《Station!》(탈영역우정국,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임창곤은 2022년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에 선정되었으며, 2024년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