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욱(b. 1991)은 반복이라는 형식이 오늘날 어떠한 방식으로 유효하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가령, 그는 사실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반복시켜 패턴을 만들어 내거나, 형상을 해체하거나, 평면에서 입체로 옮기는 등 경직된 형식의 틀에서 벗어난 유기적인 표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한다.
 
역동적인 형식의 변용이 일어나는 이영욱의 회화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하는 제3의 형태로 제시되며, 보는 이의 인식의 틀을 확장시킨다. 

《181cm, 83kg, XS》 전시 전경(라흰갤러리, 2021) ©라흰갤러리

지난 이영욱의 작업 흐름을 살펴보자면, 유화를 매체로 한 리얼리즘 작업을 시작으로 연관성 없는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콜라주한 회화 작업 등을 선보여 왔다. 그간 굵직한 흐름을 보이며 발전해온 이영욱의 작업 방향은, 2019년을 기점으로 패턴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2021년 라흰갤러리에서의 개인전 《181cm, 83kg, XS》는 이러한 패턴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반영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패턴을 이루고 있는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의 군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경쾌하고 명랑한 느낌을 자아낸다. 

《181cm, 83kg, XS》 전시 전경(라흰갤러리, 2021) ©라흰갤러리

규칙적으로 정렬된 군상은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하나의 큰 패턴으로 인식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의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 마치 성(性)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를 조롱하듯 야릇한 행위를 은밀하게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이영욱은 규칙적인 정렬로 만들어진 패턴 아래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들을 숨겨 놓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은폐나 속박에 반하는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영욱, 〈그가 ‘맛있다!’ 라고 소리치는 순간, 사람들은 그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그의 주변엔 음식이 없었다〉,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2x260.6cm ©이영욱

그리고 이영욱은 끊임없이 패턴을 쌓아가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비워낸다. 그의 선택과 의지가 이끄는 방향대로 패턴들을 치밀하게 일렬 종대로 쌓아가면서 서서히 내뱉듯 비워내는 과업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이 행위로부터 속박과 자유, 두 극한이 강하게 부딪히며 이상한 조화를 이루는 형상들이 빚어지게 된다.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전시 전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년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열린 개인전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에서 이영욱은 내면에 고착된 선입견에서 모순을 발견해 내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형태의 반복과 나열을 제시한다.
 
이전 작업에서부터 지속해오던 반복과 나열은 작가의 생각 회로를 보여주는 흔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선의 발견을 위한 하나의 제안으로 작동한다. 캔버스 속 대상들은 나란히, 때로는 중첩되거나,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다. 

이영욱, 〈무리에서 벗어나는 이는 배척당할 이유가 충분하다.(불안함에서 균열이 일어난 제스처)〉,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64x300cm,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전시 전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이영욱

이러한 작업들은 “아름다움을 반복해도 동일한 아름다음이 지속될 수 있을까?”, “흥미로운 형태의 부분이 반복되면 본래와 전혀 다른 개체로 보일 수 있을까?”, “존재하는 형태의 반복이 그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반복된 대상은 개체들의 군집알까, 시간의 흐름이 남긴 움직임의 흔적일까?”와 같은 작가의 직관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작업에 등장하는 반복적인 형상들(용머리, 독수리, 공작새, 침팬지, 꽃 등)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기 위해 선택되었기보다는, 단지 작가의 단순한 의문이나 직관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이영욱은 직관에 의해 선택한 특정 형태를 반복함으로써 전혀 다른 감각의 발견이나, 새로운 심미적 경험의 가능성을 시도한다.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전시 전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작가 및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아울러, 이 전시에서 이영욱은 반복의 형태를 평면에서 입체로 옮겼다. 전시장 중앙에 모인 두상의 군상은 멀리서 보았을 때 평범한 집단으로 보이지만, 개별 두상을 들여다 보았을 때 일반적인 기대와 어긋나는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보통의 두상과 달리, 아름다운 눈만이 가득한 머리, 뱃가죽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얼굴, 생선 대가리가 꽂혀 있는 머리 등 난해하고 혼란을 야기하는 기묘한 두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전시 전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작가 및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이영욱은 그의 주변 인물 또는 상상력을 가미해 각각의 두상을 제작했다. 이때 작가는 원본의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사회적 페르소나를 이루는 외면의 피부를 벗겨내어, 이들의 내면, 개성, 정체성, 그리고 생각들을 얼굴 전면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로써 만들어진 두상들은 극한의 혼돈으로 가득한 머릿속, 집착과 강박적 생각들, 끔찍한 악몽의 기억, 은밀하고 섹슈얼한 욕망 등을 가감없이 피부로 드러내며, 저마다의 해방감과 함께 독보적인 정체성을 뽐낸다.

이영욱, 〈사료에 초콜릿을 섞어 먹은 방어는 그 사료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 방어를 먹어본 이들은 초콜릿 사료를 먹은 방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2023, 나무, 알루미늄에 아크릴, 340x50x120cm,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전시 전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작가 및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또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평면과 입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본래의 유연한 외피가 아닌 육면체 평면에 갇힌 방어의 모습은 입체와 평면 사이를 오가며 보는 이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작업은 “입체가 평면처럼 보이는 것과 동시에 평면도 입체처럼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어떠한 형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에 기반한다.

이영욱, 〈사료에 초콜릿을 섞어 먹은 방어는 그 사료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 방어를 먹어본 이들은 초콜릿 사료를 먹은 방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세부 이미지), 2023, 나무, 알루미늄에 아크릴, 340x50x120cm ©이영욱

육면체로 분절된 방어의 신체는 윗면과 아랫면, 측면과 단면 등 삼차원의 모든 면에 성실히 묘사되어 있다. 방어의 단면은 그 사실적인 묘사로 싱싱한 횟감을 떠올리게 하고, 정면에 있는 방어의 얼굴은 세찬 고갯짓의 움직임이 중첩된 역동적이고 기묘한 형상으로 관객을 마주한다.
 
방어는 분절된 조각에서 평면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이 조각들이 집합을 이룰 때 한 마리의 입체적인 방어를 연상시킨다. 이영욱은 이 작업에서 평면과 입체 그리고 움직이는 형상의 혼재가 자아내는 모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식의 혼란을 야기하고, 이내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익숙함이 무너지는 지점을 만나게 한다.

《틀의 변용》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4) ©이영욱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이영욱은 평면에서 입체로, 다시 입체에서 평면으로 회귀하는 과정 속에서 ‘이전’을 통해 발견되는 이면과 변용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이듬해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틀의 변용》에서는 회화에 집중하여 ‘반복’이라는 행위가 함축하는 회화적 형식의 실험과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이미지의 감각을 확장해 내고자 했다. 


《틀의 변용》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4) ©이영욱

이영욱은 이미지의 형상을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나열하는 방법론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반복이라는 형식이 어떤 방식으로 유효하게 작동하는지 질문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에는 사실적으로 재현되는 동시에 기묘한 방식으로 분절된 대상의 신체가 중첩된 채 나열되어 있다. 

이영욱, 〈의심이 많아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오직 반박할 내용만 고민하고 있는 이의 초상〉, 2024, 리넨에 아크릴, 116.8x91cm ©이영욱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함의 감각을 건드리는 동시에, 일렬로 강조된 이미지는 낯섦을 유발하여 감각적 충돌을 야기한다. 이미지의 배열이 보여주는 기기묘묘한 구도는 마치 컴퓨터 그래픽 혹은 생성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관객을 시각적 환각으로 인도한다.


《틀의 변용》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4) ©이영욱

낯섦과 불편함의 감각은 의도적인 반복에서 올 뿐만 아니라 분절된 신체 부분들로 이루어진 뒤틀린 형상에서도 야기된다. 문현정 큐레이터는 불완전한 신체로 이루어진 이 형상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형상을 머릿속에서 온전히 재구성하는 일련의 시각 인지 행위를 의도적으로 해체해 낸다”고 보았다.
 
그의 회화는 완전하지 않은 신체들을 통해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동시에, 강박적인 반복 행위가 내포하는 불안의 정서를 함축한다.


《호모 나랜스》 전시 전경(라흰갤러리, 2024) ©라흰갤러리

이처럼 이영욱은 패턴 작업을 시도한 2019년부터 특정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그리다가,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이미지를 매끄럽고 유연하게 연결하면서도 이전보다 강한 연속성을 주는 방향을 작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예상을 배반하는 ‘조작된 형태’를 확장하면서 반복과 변주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작가에 따르면, 패턴을 기괴하게 조작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의 단면에 접촉해 있는 자신의 모습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토로하기 위함”이다. 2024년 라흰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호모 나랜스》에서 이영욱은 구작에서 최대한 배제했던 자신과 자기 주변의 서사를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호모 나랜스》 전시 전경(라흰갤러리, 2024) ©라흰갤러리

이 작품들에 반영된 작가의 관심사는 주로 소비적인 일상어로 가득한 그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있다. 가령 〈코를 슬쩍 만지는 사람의 초상〉(2024)의 경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묘한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상대가 자신을 보지 않을 때 몰래 코를 만지는 친구를 묘사한 그림으로, 자극과 유희를 가로지르는 이영욱의 서사를 잘 드러낸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불안정한 조작과 반복을 통한 이영욱의 작업 방식은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편집하며, 외부와 자신을 연결하고 자신의 위치를 그림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사적인 행위로도 읽힌다.

이영욱, 〈저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버린 이들의 마지막 초상〉, 2025, 리넨에 아크릴, 193.9x130.3cm ©이영욱

최근 이영욱은 조작된 신체 이미지의 파편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겹치는 형상을 구현하는 지점을 연구하며, 이를 통한 초상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해체된 신체의 파편을 반복적으로 복제하고 엮는 형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오며, ‘연속성’과 ‘낯섦’이 충돌하는 지점을 만들어 내는 실험을 해오고 있다.
 
질서와 혼란을 모두 내포한 그의 작업은 보는 이의 사고에 ‘일시정지’를 제안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우리 눈앞에 매우 선명한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결코 명료한 개념이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모호함과 모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영욱의 작품은 학습화된 감상법을 유도하지 않으며, 불편함의 감각 속에서 선입견을 벗어내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시공간과 자기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보길 제안한다.

 ”이미지의 형상을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나열하는 방법론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반복이라는 형식이 어떤 방식으로 유효하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미지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화의 새로운 폭발성을 통해 인식의 틀을 확장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이영욱,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이영욱 작가 ©럭셔리 매거진

이영욱은 단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틀의 변용》(OCI 미술관, 서울, 2024),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자 드론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서울, 2023), 《배척된 이미지가 토해낸 파편》(룬트갤러리, 서울, 2022), 《181cm, 83kg, XS》(라흰갤러리,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APOLLO》(WWNN, 서울, 2025), 《호모 나랜스》(라흰갤러리, 서울, 2024-2025), 《The Vanishing Horizon》(WWNN, 서울, 2024), 《Back to Back》(에브리아트,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이영욱은 2022년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 ARTIST PROLOGUE’, 2023년 OCI 미술관 ‘2024 OCI YOUNG CREATVIES’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병행 중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