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선(b. 1987)은 시각예술가로서 ‘본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오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연결을 살피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감지되는 감각의 다양한 추상적 형태를 탐색하고, 이를 회화 표면 위로 그려낸다.
 
불완전한 시감각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그의 작업은 평면뿐 아니라 움직임과 다양한 접촉 감각을 통한 퍼포먼스로 이어지고 있다. 

《정지-회전-구》 전시 전경(챕터투, 2017) ©챕터투

초기 작업에서 손현선은 어떠한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수차례 화면에 옮겼다. 대표적으로 작가의 ‘도는 사이’(2015-2016) 시리즈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를 반복해서 그린 회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손현선, 〈도는 사이〉, 2015, 종이에 유채, 각 31x41cm ©손현선

시리즈 중 일부 작품은 물체의 외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동시에 다른 작품들은 동작의 최고조를 표현한 듯한 회색의 반원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반복하여 대상을 보고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대상의 보이는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함이 아닌, 대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연상 과정에서 도출된 관념을 표면에 옮기는 행위에 가깝다.  

《정지-회전-구》 전시 전경(챕터투, 2017) ©챕터투

나아가 레미콘의 몸통을 반복해서 그린 ‘Like the Moon’(2016-2017) 시리즈에서는 빛의 투사 방향을 짐작케 하는 그림자와 듬성듬성 솟은 원형 돌기만 묘사되어 나타나며 어떤 사물의 재현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개별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형태가 점차 추상화 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작가는 대상의 외형을 즉물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상을 객관화 하여 그 관념을 이미지로 구현해 낸다.

《정지-회전-구》 전시 전경(챕터투, 2017) ©챕터투

그의 회화에서 천장 선풍기와 레미콘의 몸통은 더 이상 익숙함과 경험적인 재현성을 잃어버렸지만, 이는 동시에 회전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이데아’가 될 수 있는 추상적 형태로 확장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재현은 회화적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한 틀로써 사용된다. 2015년 작가 노트에서 손현선은 대상을 반복하여 그리는 행위를 거듭하다 보면 “상상과 현실의 이미지가 서로를 역전시키는 순간”이 찾아 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오직 화가만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연상과 직시를” 결합해 시각적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빛불짓》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1) ©에이라운지

이후 손현선은 대상을 보고 그리는 작가의 신체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2021년 에이라운지에서 열린 개인전 《빛불짓》에서 작가는 이전부터 관심 가져왔던 빛, 거울, 불이라는 요소를 형상화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정적인 대상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이 아닌,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행위와 대상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빛불짓》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1) ©에이라운지

작가의 신체를 통한 회화적 행위는 종이 접기와 자르기로 나타난다. 손현선에게 종이를 접는 행위는 접촉을 통해 대상을 ‘보는’ 경험이다. 작가는 다이아몬드의 컷팅 방식을 찾아 수집하고 선별하여 컷팅 라인을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접었다 펴는 과정에서 면을 만들고 색을 발견한다.
 
또 다른 ‘보기’의 도구인 거울은 그의 작업에서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불투명한 표면을 갖는다. 거울을 바라보는 행위의 주체자인 ‘나’와 거울 속에 맺힌 ‘나의 상(像)’ 사이의 단절은 눈을 ‘보는’ 역할에서 일시적으로 탈락시킨다.

《빛불짓》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1) ©에이라운지

마지막으로 일렁이는 불꽃을 그리는 작가의 행위는 마침내 불을 바라보는 작가의 순간과 마주한다. 보는 사람은 피어 오르는 불꽃을 따라 그리고, 함께 동시에 있다. 본다는 행위와 보여진 결과물로서 불꽃은 관객의 관람 행위를 통해 다시 마주하면서 시선과 대성의 접점에 남겨진 무언가를 상상하게 한다.

《빛불짓》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1) ©에이라운지

“회화를 수행하는 몸”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시각’예술을 해오며 오래된 훈련과 교육의 축적으로 인해 눈과 손의 감각을 비대해지고 나머지 신체 기관은 점차 퇴행하고 무뎌지는 것을 느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시각에 집중된 관습적인 그리기에서 벗어나고자 그동안 살피지 않았던 감각들의 연결에 주목하며 그간의 몸을 탈학습(unlearn)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종의 재활 속에서 작가는 시각 외에 다른 감각과도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었고, 물질과 관계하는 몸의 반경이 확장됨을 느꼈다고 말한다.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 전시 전경(SeMA 벙커, 2021) ©챕터투

이러한 감각의 연결을 바탕으로, 2021년 SeMA 벙커에서 열린 단체전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에서 손현선은 바라보는 시선과 몸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5점의 회화 연작으로 구성된 ‘<-( ), 의, 여기(거기), 가’(2021)는 작가 자신의 몸과 시선을 잡아내려 애쓴 결과물로, 일종의 ‘자화상’인 동시에 아무 것도 비추지 않되 모든 사람을 비추는 이상한 ‘거울’로 제시된다.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 전시 전경(SeMA 벙커, 2021) ©서울시립미술관

여기 저기 다양한 각도와 높이로 걸린 그림들은 관람자의 시선과 몸 자체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인식하도록 만든다. 몸을 움직이며 벽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림들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그림의 대상이자 이 그림을 그렸을 손현선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손, 팔, 등 신체의 일부분이다.
 
즉, 이 작업은 손현선의 신체와 시선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결과물은 특정한 누군가의 구체적인 상을 반영하기보다는, 이를 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과 신체를 비추며 스스로의 감각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독특한 거울이 된다.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 전시 전경(SeMA 벙커, 2021) ©챕터투

손현선은 이러한 회화 작업과 더불어 직접 ‘작품’이 되어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퍼포먼스 작업 〈보이지 않는 대화〉(2021)를 진행했다. 여기서 작가 손현선은 살아 있는 그림으로서 전시장에 존재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정한 관람 시간이 지나면 작가이자 살아있는 이 ‘작품’은 다음 그림의 모습을 스스로의 몸에 맺히게 한다.
 
작가인 동시에 작품인 그림은 자신에 대해 소리 내어 소개하고, 눈을 맞추고, 표정으로 관람자에게 말을 건넨다. 더불어 ‘작품’과 마주한 관람자는 전시장에 놓인 매개의 도구들과 자신의 시선 혹은 말을 통해 ‘작품’과 대화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된다.
 
작가와의 대화가 아닌, ‘작품과의 대화’로서의 〈보이지 않는 대화〉는 전시를 관람할 때 발생하는 시선의 방향성을 드러내며 ‘전시 보기’라는 행위 자체를 조명한다. 이와 함께 전시 안에서 서로 마주했지만 보(이)지 못했(않았)던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자 사이의 시간과 경계, 위계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다. 


《에너지의 영역》 전시 전경(오퍼센트, 2022) ©챕터투

이어서 열린 2022년 오퍼센트에서의 개인전 《에너지의 영역》 또한 몸을 매개로 회화와 퍼포먼스를 가로지르는 작가의 예술 실천을 조명한다. 전시는 작업과 작가 사이의 관계적인 에너지를 시작으로, 이 에너지가 관객과 만나 새로운 관계항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써 무대화 되었다.
 
대상과 자신의 신체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진행해온 손현선의 회화적 수행은 《에너지의 영역》에서 구멍이라는 소재로 더욱 구체화 되었다. 2차원 평면의 회화에서 구멍은 동그랗게 구부러진 선이나 둥근 모양으로 칠해진 면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회화에서 구멍을 표현하는 것은 실상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이는 회화적 요소만이 도출해 낼 수 있는 시지각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에너지의 영역》 전시 전경(오퍼센트, 2022) ©챕터투

이에 작가는 점, 선, 면의 역량으로 구멍의 시각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회화적 수행으로 관객의 감각에 말을 걸면서 인지의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했다. 《에너지의 영역》에 등장하는 구멍은 작가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하나의 소통 도구가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구멍 내외부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색함을 깨닫게 된다.
 
공간 안쪽에 위치한 벽화 작업은 오랜 시간 공간과 교감하며 벽의 불규칙한 질감에 따라 그려진 작업으로, 각 호흡이 담긴 붓질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상호 교차하며 모서리 벽을 입체화 한다.
 
전시 공간을 점유하는 여러 구멍들은 어느 시공간의 공기, 빛, 소리, 냄새 등 모든 감각적 요소들을 담아내는 작가의 몸짓과 에너지의 궤적을 드러낸다. 관객은 이러한 작가의 신체와 마음의 이동궤도를 마주하고, 각자의 구멍을 통과하며 저마다의 에너지 영역을 감지하게 된다.

손현선, 〈등지도: 우리-사이-열〉, 2024, 젤 미디엄에 열변색 잉크, 가변크기, 《뒷모습》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4)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나아가 손현선은 2024년 프라이머리 프랙티스에서 열린 2인전 《뒷모습》에서 타인과의 대화를 통한 긴장과 연결의 감각을 유기적으로 연결된 3개의 작업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하루 한 명의 참여자와 등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워크숍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손현선은 타인이라는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몸의 감각들을 서로 연동되어 있는 일련의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번안했다. 우선 전시장 유리창에 그려진 〈등지도: 우리-사이-열〉(2024)은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작품과 접촉하도록 유도하며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등을 맞댄 감각을 공유한다.
 
열에 반응하여 색이 변화하는 안료를 사용한 이 작품은 이와 접촉한 관객의 체온에 따라 색을 달리하게 된다. 잠시의 접촉으로 변화된 색을 마주함으로써 관객은 그때 그들의 대화의 순간에 잠시나마 시각 이외의 감각적 방식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된다. 

《뒷모습》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4)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또한 이는 간헐적으로 공간을 채우는 내레이션, 그리고 벽에 삽입되어 플레이되는 작은 드로잉과 문구에 호응한다. 이는 지난 워크숍에서 나눈 대화의 부분을 발췌, 편집하여 무작위로 상연한 것으로, 이미지-음성언어-문자언어의 관계 속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그때의 시공을 현시한다.
 
아울러, 선명한 형상이 선사하는 시각적 인식 체계는 열화상 이미지(〈백투백: 온기를 따라〉(2024))로 재현된 작가의 실제 크기의 뒷모습과, 그 윤곽을 따라 전사된 뒷모습, 한 몸에서 파생된 다음의 이미지-기호(〈백투백: 가장자리〉(2024))로 연속해서 분기, 연장한다.

손현선, 〈불, 안〉, 2024, 캔버스에 유채, 193.9x260.6cm, 이면화(각 193.9x130.3cm) ©손현선

이처럼 손현선의 작업은 ‘보기’라는 행위에서 출발해 대상이 지닌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포착해 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상과 작가의 신체가 만나 형성된 진동은 다시 한번 캔버스를 매개로 작품을 마주하는 이에게 전달된다.  

즉, 손현선의 회화는 서로 다른 에너지가 머물고 오가는 관계의 장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하며 무뎌진 신체적 감각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게 만든다.

 “저는 시각예술가로서 ‘본다는 것’을 다시금 질문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데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감지되는 감각의 다양한 추상적 상태를 그려내는 회화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회화를 수행하는 몸의 움직임을 다시 평면 위에 구체화해 나가는 것과 더불어 퍼포먼스라는 움직임으로 전시 안팎에서 다양한 만남의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손현선,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인터뷰 중) 

손현선 작가 ©스튜디오 오프비트

손현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예술사와 예술전문사로 졸업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에너지의 영역》(오퍼센트, 서울, 2022), 《빛불짓》(에이라운지, 서울, 2021), 《정지-회전-구》(챕터투, 서울, 2017), 《눈 숨 새》(175갤러리, 서울, 2016)이 있다.
 
또한 작가는 《뒷모습》(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4), 《불타는 집》(에스더쉬퍼, 서울, 2024),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일민미술관, 서울, 2023),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SeMA 벙커, 서울, 2021), 《”1+1” 소장가의 시선》(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1), 《우리와 당신들》(경기도미술관, 안산, 2020), 《미치지않는》(페리지갤러리, 서울, 2019), 《두산아트랩 2017》(두산갤러리, 서울, 2017) 등 다수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손현선은 2024년 K-Arts 창작스튜디오, 2022년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