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아람(b. 1987)은 미디어에 관한 사유와 개념적 연계성을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다매체 설치 작업을 진행해 오고있다. 작가는 주로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을
주재료로 삼아 실제 인간의 삶과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세계의 허상을 비판적으로 재현한다.

권아람의 TV 오브제 설치 작품인 〈납작한 물질〉(2017)은 현재 작가의 작업 구조의 단초가 되는 작업이다.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이 결합된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광물 이미지와 함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광물의 이미지,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변형시킨 이미지를 번갈아 드러낸다.
3차원 물리적인 형태의 사물은 평평하고 매끈한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부피와 질감이 소거됨에 따라 관객은 각 이미지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게 된다.
이 작업을 계기로 권아람은 실제 물리적 세계가 디지털 세계로 진입하면서 비물질화될 때 발생하는 현실과 가상의
격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미디어가 표상하고 생산해 내는 허상성을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을 매개로 재현해 왔다 .

2018년 원앤제이 플러스원에서의 개인전 《납작한 세계》에서 선보인
작품들에서는 미디어와 현실 사이의 격차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전시는 “개인의 영역으로 침투한 미디어가 세계를 평평한 이미지로
전송하는 현상에 대한 반추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아울러 권아람은 인간이 발명한 미디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관계에 자문하며 디지털 스크린의
형식적 특징을 조각 언어로 치환하고 미디어가 반영하는 이미지들이 납작한 물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가령 전시 제목과 동명인 작품 〈납작한 세계〉(2018)는 미디어로
전파되는 허구적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 오류로써의 세계를 함축적 이미지로 소거하여 다시 스크린의 물성을
빌려 나타내는 작업이다.

작품은 거울과 일체된 스크린을 통해 서로를 반사하며 스크린 너머의 허구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거울과 스크린은 서로를 매개하며 평면 너머의 공간을 생성하지만, 실상 ‘실제’가 아닌 것을 비춤으로써 그 공간은 ‘평평’한 허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권아람은 PC 화면에 나타나는 오류 중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블루 스크린과 레드 스크린을 작업에 가져왔다. 작가는 이러한 화면들이 미디어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이라 보았다. 미디어 환경의 오류를 상징하는 이 화면들은 서로 충돌하고, 분할된 거울이 스크린과 현실 공간을 투영하며 허상의 이미지를 재생산해 냄으로써, 〈납작한 세계〉는 허구 가득한 디지털 사회에 대한 일종의 기념비로서 공간에 자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스크린을 통해 정보가 유통되고 공유되며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직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채연은 이 작품에 대해 “어느
것이 송출된 이미지이고 어느 것이 거울에 비친 상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통해 웹 3.0 시대의
온라인 세계, 즉 메타버스에 서식하며 점차 현실 감각을 잃어가는 우리의 ‘리셋 증후군’을 가시화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2019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기획전 《불안한 사물들》에서
선보인 〈유령월〉(2019)은 무엇이든 2차원의 평평한 이미지로
유통되는 디지털 세계를 더욱 몰입적이고 퍼포먼스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 작업에서 모니터는 채색된 강철 구조물을 입음으로써 가정용 TV의
일상성을 벗고 퍼포머로서의 존재감을 발한다. 모니터 위로 깨진 유리 이미지, 붉은색 면 등이 시간차를 두고 소리와 함께 바뀌면서 각 모니터에 부착된 거울에 의해 상호 반영되는 극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깨진 유리 이미지는 디지털 스크린의 물리적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시각적 장치이며, 붉은색 면은 컴퓨터 모니터 오류를 나타내는 레드 스크린을 상징한다. 매일
스크린을 통해 수용하게 되는 정보들은 2차원의 평평한 이미지로 드러날 뿐, 그 물리적 실체는 유리 이면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유리 표면을 통해
전달되는 각종 정보와 이미지는 결국 확인할 수 없는 실체로 존재하고, 여기서 벌어지는 오류와 허구들은
쉽게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권아람은 스크린이 유리라는 투명한 외형으로 실체를 숨긴 채, 세계의
허상을 가리고 현실을 좌우하는 이러한 상황을 그의 작품 속에서 ‘유령’으로
빗대고, 깨진 유리 이미지로 비판적 재현을 수행한다.

2021년 더 그레잇 컬렉션에서 열린 개인전 《프리즈》에서 작가는 화면을 정지시키는 영상 효과인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에 착안하여 시스템 에러로 화면이 멈춘 상태를 공간적 차원으로 구현해 냈다. 전시 제목과 동명인 작품 ‘프리즈’(2021)는 주변 환경을 투사하는 거울을 주매체로 활용한 조각적 오브제 연작이다. 파편적으로 구축된 거울 오브제는 전시 공간의 일부분을 투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주변의 현상을 환기하도록 만든다.

한편 대상을 수상했던 2022년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월스〉(2021)에서 작가는 미디어의
정치성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구조적으로 표현했다. 권아람은 이 작업에서 처음으로 LED 패널을 도입해 기존 작업의 형식과 내용을 더욱 확장하여 풀어냈다.
전시 공간 허공에 조각난 스크린은 반사되는 거울과 결합해 점멸하는 노이즈를 송출해 내며, 매끈한 스크린과 이미지 이면에 자리한 자본과 경제의 원리,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오류의 상징으로 덮어낸다.

블루 스크린과 레드 스크린의 오류 화면은 불규칙한 사운드와 뒤엉켜 점점 빠른 속도로 반복 점멸하며 모든 스크린을
가로지르다 어느 순간 화면 수신 오류가 난 것처럼 픽셀화된 화면으로 전환된다. 스크린 위에 송출된 정보가
소거되고 부동하는 물성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스크린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미디어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원을 차단하면 물리적인 벽이 되고, 전원이 켜지면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통로가 되는 스크린의 모순적인 존재성을 가시화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월스〉에서 “물질이자 비물질, 공간이자 입자가 되는 양면적 대상”으로 작동하는 미디어로서의 스크린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다.

오는 6월 24일 송은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 《피버 아이》에서는 급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이 현재의 시스템을 과열시키는 양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부작용을 살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 자율주행의 눈이
되는 AI 센서, 이미지 학습을 위한 이미지 데이터셋 훈련
등 물리적 현실을 이미지 데이터화하여 기술의 토대로 삼는 현재의 과잉된 시지각적 현상이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가는지 질문한다.
전시를 관통하는 주요 작품인 신작 〈피버 아이〉(2025)는 정보와
상품, 기술과 자본의 결탁으로 경계가 모호해진 생태계에서 출구 없는 플랫폼과 채널 안을 유영하는 인간을
포착한 데서 출발한다. 전시 공간을 둘러싼 LED 패널은
스크린 상 오류의 기호이자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강렬한 붉은색을 발산하며 과열된 현재를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이 작업에서도 반복 점멸하는 스크린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사운드를
배제함으로써 오로지 시각적인 소격 효과만을 강조해 관객의 몰입력을 차단하여 역으로 작품과의 비판적 거리를 유도한다.

또 다른 신작 〈백룸스〉(2025)는 이전 작업인 〈월스〉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는 작업으로, 현실과 가상 경계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감각의 혼란을 재현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도시괴담인 ‘백룸(The
Backroom)’은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무한하고 비좁은 공간을 뜻한다.
작가는 ‘백룸’에 착안해
익숙한 공간의 반복과 왜곡, 출처 없는 이미지의 누적이 만들어내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의 정서를 송은 지하 공간에 형상화한다. 마치
그물처럼 뒷면이 투과되는 메쉬 LED는 공중에 부유하듯 설치되며, 영상
이미지들은 서로 중첩되고 투명하게 새어 나가 공간 전체를 점유한다.
이로써 스크린 안에서 무한히 이어지는 3D 디지털 공간의 폐쇄적 이미지와
공간 전면을 감싸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환각적인 공간감을 형성하고 낯설고 불안한 감각을 유발한다.

이처럼 권아람은 빠르게 변화하며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작품의 형태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오늘날 스크린이 단지 이미지를 투사하는 장치가 아닌 사용자의 감각과 인지, 이성과 정서를 통제하고 설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장소로 사유한다.
그의 작업은 일상적인 감각에 혼란을 야기하고 인식의 전복을 유도하며, 매일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무수한 정보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공유하며 재생산하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그 평평한 스크린 이면에 존재하는 여러
오류와 허상 그리고 욕망들을 감각하게 만든다.
”매체론의 개념이
작업의 주된 내용이 되면서 거울이나 스크린이 반사하는 특징을 활용하게 됐습니다. 작품 내용과 형식 간의
관계가, 제가 관심 있는 미디어의 이미지 생산 원리나 미디어 기업들이 그 이면에 가지고 있는 목적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칼처럼 재단이 되어 있고 명확한 컬러로 구성된 작품을 통해, 미디어라는 대상이 사회와 사람들을 은연중에 조작하는 이면의 의미를 개념화할 수 있습니다.” (권아람, 난지 오픈소스스튜디오 토크 프로그램 중)

권아람은 건국대학교 디자인조형대학 광고영상디자인과 졸업 후 영국 UCL런던대학교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파인아트-미디어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개인전으로는 《피버
아이》(송은, 서울,
2025), 《프리즈》(더 그레잇 컬렉션, 서울, 2021), 《납작한 세계》(원앤제이플러스원, 서울,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Drector》(기체, 서울, 2024), 《투어리즘》(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2022), 《그리드 아일랜드》(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2), 《가능한 최선의 세계》(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권아람은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2024-2025), SeMA 난지미술스튜디오(2022/2020), 쿤스틀러하우스 슈투트가르트 레지던시(2016),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5)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22년 제21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송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문화재청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권아람, Ahram Kwon (Artist Website)
- 비애티튜드, 스크린 너머 허구적 공간 속으로
- 채연, 권아람 작가론: 스펙타클의 변주와 미디어 비판, 월간미술 2022.4월호
- 서울시립미술관, 불안한 사물들 – 권아람 ‘유령 월’ (Seoul Museum of Art, The Unstable Objects – Ahram Kwon ‘Ghost Wall’)
- 아트바바, 더 그레잇 컬렉션 – 프리즈 (Artbava, The Great Collection – Freeze)
- 키아프 서울, 송은 – 피버 아이 (Kiaf Seoul, SONGEUN – Fever E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