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빛나와 송수연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언메이크랩(2016년 결성)은 기계의 인식 작용을 전유하여, 인간, 자연, 사회와 연산적으로 만나게 하는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데이터셋, 컴퓨터 비전, 생성 신경망 기술 등 인공지능의 요소를 아시아의 발전주의 역사와 교차시키며,
현재의 사회, 공간, 그리고 생태적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언메이크랩이 2018년에
진행한 ‘알고리드믹 워커스’ 시리즈는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의 노동 문제와 산업 구조의 변화를 예측 알고리즘 및 이미지 매칭 알고리즘 등을 이용해 시각화하는 작업이었다.
‘알고리드믹 워커스’는 1960년대 국가가 조성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 단지인 구로 공단이 오늘날 IT
중심의 산업 단지인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며 발생한 변화와 함께, 그럼에도 이 같은 장소에서
지속되는 노동의 패턴에 대해 알고리즘 기술을 이용해 이미지 또는 텍스트로 가시화하는 작업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언메이크랩은 산업 제조업 사회에서 정보기술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도시 전체로 겪은 이 지역에 주목하며, 도시와 노동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 되는지를 드러내고자 3가지의
연산을 구사하였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연산 작업에서는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에 80년대 노동자 문학이
남긴 시집과 구술들을 ‘구로공단’의 데이터로, 게임 개발자와의 인터뷰, 취업 사이트의 글 등을 ‘구로디지털단지’의 데이터로 인풋하여,
두 시대를 잇는 문장들을 조합해 낸다. 두 시대가 기묘하게 섞인 문장들은, 이 도시에서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드러낸다.

두 번째 연산 작업에서는 구로의 역사성을 가진 이미지들을 구글 이미지 검색 알고리즘에 통과시켜, 그와 매칭된 엉뚱한 맥락의 이미지들을 기록한다. 역사성을 지닌 이미지들이
구글 이미지 검색 알고리즘에 통과될 때 그 맥락은 탈각되고 특정한 패턴, 조형 등만이 인식되어 아이러니한
이미지들이 매칭된다.
가령 마이크 앞에서 호소하는 구로동맹파업 여공의 모습은 열창하는 가수의 모습으로 매칭이 되고, 형편없는 공장 식당의 식판은 반짝이는 스텐 식기의 이미지로 인해 신형 스마트폰의 이미지로 매칭이 된다. 작가는 “맥락이 삭제되고 패턴만 남은 이 이미지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가 한 도시의 역사를, 노동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알레고리 같아 보인다”고 말한다.

이어서 세 번째 연산 작업에서는 두 번째 작업에서 구로동맹파업 여공의 이미지와 매칭된 이미지들을 지금의 IT 산업의 노동복이라 할 수 있는 티셔츠에 프린트하였다. 강풍기로 거대하게 팽창된 이 티셔츠들은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단지를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으로 추출한 ‘빈 팽창’의 요소가 주입된 결과물로, 두 시대 사이에서 작동해온 한국의 급격한 발전주의가 남긴 공허함을 시각화한다.

한편 ‘전체적 데이터 카탈로그’(2018)
시리즈에서는 4가지 작업을 통해 감정을 데이터화하는 현재의 기술적 지형을 탐구한다. 정량화 기술이 가진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점점 데이터화 되며 별개의 개체처럼 다루어 지는 현상에 주목한 언메이크랩은,
정령화 된 감정 중에서도 가장 선전적인 감정인 ‘행복’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언메이크랩은 카메라를 장착한 전자 장치와 감정 분석 알고리즘 API가
합쳐진 ‘자가 감정 추수기’를 이용해 얼굴의 감정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 ‘자가 감정 추수’ 헬맷을 쓴 산책자는 기술, 자연,
사회 문제에 대응해 독특한 해결주의적 감각을 보여주는 스마트 시티 등의 비장소(non-place)들을
배회한다. 여기서 비장소란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제안한 개념으로, 관계와 역사, 고유한 정체성이 부재한 장소를
의미한다.

‘자가 감정 추수 장치’를
쓰고 비장소들을 배회하며 얻어낸 감정 데이터 중 행복 데이터는, 3D 돌로 시각화 된다. 이 가상의 광석은 행복을 기도하는 ‘기원석’으로 해석되는 동시에, 16-20세기에 상품과 서비스, 노예를 교환하는 토큰으로 쓰인 ‘무역 구슬’. 혹은 난립하는 현재의 암호화폐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가상화폐로 해석된다.
〈전체적 데이터 카탈로그 2: 행복의 기원〉(2018)에서는 이러한 돌들을 기원의 장소로 옮겨가 계속 쌓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 그러나 돌들은 쌓이는 순간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한편 〈전체적 데이터 카탈로그 4: 관광객/결과값 없음〉(2018)에서는 행복을 선전하는, 혹은 행복의 패턴을 따르는 비장소에 3D 스캐닝된 작가들의 이미지를
삽입한다. 이때 이들의 표정은 감정 정량화 기술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폴 애크먼의 저작 『Unmasking the face』에 실린 행복의 표정을 지침으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이미지 분석 API는 대부분 이 사진들에 대해 ‘관광객’으로 태깅하였고, 행복의
수치는 종종 ‘결과값 없음’으로 나타났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언메이크랩은 온라인 플랫폼, 언택트
마케팅 등 팬데믹으로 달라진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기술을 보다 탈-인간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과 연구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0년 코리아나미술관의 *c-lab 4.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유토피아적 추출〉은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일상화된 ‘언택트(Untact)’라는 새로운
규범이 조명하지 않은 관계들을 탐색해보며, 어느 때보다도 더욱 의존하게 된 기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보는
렉처 퍼포먼스 작업이다.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독특한 외형의 ‘돌’들은 사라진 산, 거대한 모래산 등 ‘일반자연(Generic Nature)’의 현장에서 이송되어 온 것으로, 하나의 메타포 장치가 되어 인간 중심적 서사와 힘에 관한 믿음에 대해 질문한다.

여기서 ‘일반자연’이란
언메이크랩이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의 목적에 따라 추출되고 재구성되어 엇비슷한 모습을 띠게 된 자연을
일컫는 단어이다. 이는 단순히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자연에 대한 추출적 욕망이 어떠한 기술을 거쳐 변형되고 재탄생 하여 우리의 감각을 이루는지를 포함한다.
이 작업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학습된 인공지능의 눈은 퍼포머의 행위에 따라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가령 깨진 돌 위에 케첩을 뿌리면 AI는 대상을 핫도그로, 소금을 뿌리면 도넛으로 읽는다. 이러한 형태, 패턴, 컬러 등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이 가진
유머러스한 오류를 이용해 인간의 끊임없는 욕구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새로운 기술적 규범이 인간으로 기인한 재난과 생태적 취약성을 회피하는 미래적 비전으로 가득 찬 시점에서, 이 렉처 퍼포먼스는 개발의 현장에서 온 돌들과 기계 비전의 눈을 경유해 우리가 생태에 대해 가진 감각과 욕구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영상 작업으로 제작된 〈유토피아적 추출〉(2020)은 개발
사업으로 25년 전 사라진 해창 석산, 강모래가 쌓여 만들어
진 이후, 10년 동안 점점 풀과 나무가 자라며 ‘진짜 산’과 같은 것이 되어 간 모래둑골 등, 여러 곳의 ‘일반자연’의 현장을 배회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지층의 시간을 품고 있는 이 장소들은, 근대적 추출과 생태적 추출의
시대를 동시에 지나며 이 시대의 욕망을, 즉 인간의 신화를 드러내는 장소들이 되었다. 이곳에서 언메이크랩은 시시포스의 후예, 즉 시시피언이 되어 인간의
서사를 아이러니하게 되짚는 행위를 하고, 그곳에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을, 인간에 의해 옮겨지며 깨진 둥근 돌들을 옮겨 온다. 그 돌들은 일종의
미디어로 지층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동시에 저장하고 있다.

이후 언메이크랩은 초기 거대 언어모델의 무맥락적인 성격을 차용하여 〈유토피아적 추출〉의 우화 버전의 작업 〈시시포스의
변수〉(2021)를 제작했다. 영상 작업인 〈시시포스의 변수〉는
“그 돌은 늘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시시포스(시지프스) 신화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우리가 은연 중 짐작하고 있던 시시포스의 신탁 – ‘너는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는 명령이 아닌, 인간의 시간, 조건, 맥락 같은 것과는 상관 없는 그저 하나의 상태를 지시하는
이 문장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언메이크랩은 이 문장에서 ‘신탁’과
‘알고리즘’이 겹쳐진 지점을 발견하였고, 이는 거대 언어모델을 통해 시시포스 신화라는 인간중심적 서사를 해체해 보려는 시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거대 언어모델의 무맥락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인간의 서사를 뒤트는 성질로 끌어내었다.
시시포스 신화의 다양한 상황은 변수적 질문이 되어 AI에 인풋되고, 거대 언어모델은 인간과 비인간이 뒤엉킨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 무맥락성을
지닌 이 문장들은 인간을 풍자하는 기묘한 우화와 같은 뉘앙스를 가지게 된다. 이를 테면, ‘돌을 네 머리에 올려버리면 가장 꼭대기에 있는게 되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2023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에서는 생성
신경망, 데이터셋, 컴퓨터 비전 등을 생태적 위기에 대한
비평적 관측 기술로 사용한다. 이 작업에서 언메이크랩은 불에 탄 산이라는 재난의 장소와 인공지능의 예측성을
직조해 ‘비미래’라는 시제로 현재를 사유한다.
작가들은 불탄 산이 드러낸 수많은 길을 오가며 산불로 서식지를 잃은 멸종 위기종, 생성 인공지능과 데이터셋, 트레일 캠에 찍힌 동물들의 초상 사진, 박제된 동물의 이야기를 모으고, 이를 우화와 다큐멘터리, 기계학습 실험을 통해 엮어 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이면의 현실이 생성 신경망의 통계적 잠재태를 거쳐 인화된다. 작가들은 기계학습의 과정에서 데이터셋에 존재하지 않는 ‘가정 동물의
눈’을 가진 존재들을 목격하며, 인공지능에 상속된 인간 중심적
문화 혹은 새로운 식민성과 마주한다.
AI가 반려 동물의 수많은 사진에서 학습한 패턴이 전이된 결과물일
이 친밀한 눈의 생물들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다시 환기시킨다.
이처럼 언메이크랩은 오늘날 우리의 감각과 인식, 나아가 문화와 역사가
각인되어 있는 첨단 기술의 시선을 빌려 현시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모두에서 우리의 삶과 존재에 점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메이크랩의
작업은 우리가 다양한 비인간들과 함께 이 세계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지층에서 가시화하는 데에서 나아가, 연구와 교육의 형태로 만들어 이에 대한 집단적인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저희가 이야기하는
그 시대를 작동시키고 제어하는 논리나 원리, 메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뼈대를 이루는 지식들은 중요하지만
주류적인 지식이나 대중적인 교양의 지식과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중요하지만 곁에 있고 잘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들을 말합니다.” (언메이크랩, 앨리스온 인터뷰 중)

언메이크랩 작가 ©아르떼
언메이크랩은 송수연, 최빛나로 구성된 연구자 겸 작가 콜렉티브이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인기생물》 (보안여관, 서울, 2023), 《유토피아적 추출 퍼포먼스》(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0),
《오퍼레이션 룸》(임시공간, 서울, 2019), 《전체적 데이터 카탈로그: 행복을 찾아서》(공간 사일삼, 서울, 2018) 등이
있다.
또한 이들은 《오픈 코드. 공유지 연결망》(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1),
《Tangible Error》(d/p, 서울, 2020),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19), 《Dutch
Savannah》(Museum De Domijnen, 암스테르담, 2018), 《Do it》(일민미술관, 서울, 2017)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언메이크랩은 2017년부터 매년 가을, 하나의 기술적 주제를 중심으로 오프콜 전시, 강연, 워크숍이 열리는 일시적 기술·예술 플랫폼 포킹룸(Forking Room)을 열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5》의 후원작가
4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