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균(b. 1986)은 일상적 풍경이 특정한 기호로 치환하는 순간을 포착해, 그 안에 존재하는 불안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발견된 오브제로 구성된 아카이브와 모큐멘터리의 형식의 영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신정균, 〈보편적인 이야기〉, 2010, HDV 비디오, 11분 23초 ©신정균

신정균의 작업은 일상의 현실 틈사이를 파고드는 일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마치 은밀한 첩보를 수행하듯이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영상으로 기록하며, 새로운 차원의 서사를 직조해낸다.  

예를 들어, 2010년 영상 작업인 〈보편적인 이야기〉는 보편적인 한국 남성들이 겪는 ‘군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군대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경험이자 의무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곳은 국가의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특별하게 작동하는 특수한 집단이다.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이 작동하는 군대 안에서 개인은 철저하게 ‘보편적인 존재’로 환원된다.

신정균, 〈보편적인 이야기〉, 2010, HDV 비디오, 11분 23초 ©신정균

영상은 작가가 실제 복무했던 군부대로 찾아가는 일에서 출발한다. 신정균은 그곳의 모습을 카메라로 비추고 자신의 사적인 기억과 경험을 풀어냄으로써 지극히 사적인 기억으로 방치되는 것들을 드러낸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보편’의 논리가 작동하는 장소에서 은폐된 ‘개인’의 서사를 되살리며,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에서 겪어야 했던 개인의 경험이 과연 보편적이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신정균, 〈발견된 흔적들〉, 2013, 단채널 비디오, 8분 7초 ©신정균

이러한 자전적인 경험에서 촉발된 질문들은 〈발견된 흔적들〉(2013)로 이어졌다. 전작에서 작가는 거대한 사회 안에서의 개인에 대한 질문을 작가 자신의 내밀한 기억을 매개로 풀어나갔다면, 이 작업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속 일상적이고 평범한 흔적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작업에서 신정균은 한국이라는 분단 국가에서 나고 자라며 내면화해온 이념의 실체에 대해 묻는다. 작가는 그에게 있어서 이념이란 눈에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실체’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일상과 주변 곳곳에서 목격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신정균, 〈발견된 흔적들〉, 2013, 단채널 비디오, 8분 7초 ©신정균

신정균은 현재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구성하게 만든 것, 즉 사회로부터 개인에게 주입된 것들을 규명해보고자 일상 속 평범한 풍경들과 사물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주 찾던 동네 뒷산과 공원의 풍경들 그리고 집안에서 발견한 사물들은 작가에게 상징적으로 다가왔고, 이때 발견한 과거의 흔적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되묻게 만들었다.  

이에 작가는 집안에서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 수집하거나 일상적으로 방문하던 장소의 일부를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관찰하는 행위를 거듭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내면화된 것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이자 작가 내면에 자리잡은 이념의 실체를 찾아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신정균, 〈옥류체로 쓰여진 노래〉, 2013, 나무 패널에 페인트, 각 420x60cm ©신정균

작가의 체험과 조사를 토대로 재구성된 텍스트와 이미지는 개인적 시선을 드러내지만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를 탐색한다. 가령 유행가의 가사를 특정한 이념을 상징하는 ‘옥류체’로 작성하여 일상적인 텍스트를 선전 문구로 둔갑시키거나, 평범한 장소의 이미지를 은폐된 군사시설처럼 보이도록 편집하여 영상을 만드는 등 평범한 이미지를 비일상적으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시켜 사적인 영역이 사회, 정치, 역사 등 거대 맥락 안에서 획득하게 되는 다른 차원의 의미에 주목하도록 한다. 관찰과 기록, 참조와 재편집 등을 통해 예기치 못한 서사를 구축해 내는 방식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대표적으로 취하고 있는 방법론이다.


신정균, 〈넘버스 스테이션〉, 2015, HD 비디오, 5분 14초 ©신정균

한편 〈넘버스 스테이션〉(2015-2016)의 경우 특정한 장소나 개인의 기억을 경유하는 방법 대신, 난수 방송이라는 라디오의 특정 수송신 방식에 대한 조사에서 출발한다. 난수 방송이란 특정 주파수를 통해 숫자나 단어 등을 조합한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으로, 난수표를 소지하거나 이를 문장으로 풀이할 수 있어야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신정균은 전세계적으로 첩보에 활용되었던 방식 중 하나인 난수 방송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2012년부터 한국말로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뜻을 알기 어려운 이 방송을 해독하고자 이를 녹음하여 지속적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직접 독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 유튜버를 통해서도 명확한 해답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그저 자료 수집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었다. 이에 작가는 유튜버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와 자료들을 재조합하여 제시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한 가운데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나 관계없는 이미지가 더해지며 허구적 구성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신정균, 〈넘버스 스테이션_홍대입구〉, 2016, 가변설치 ©신정균

작가는 이와 관련하여 수집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간을 연출하는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주로 전시 공간에 딸린 사무실이나 계단 창고, 지하 통로와 같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가려진 공간을 들춰보는 관객의 행위로써 기존의 공간을 재맥락화했다. 전시 기간 이후에는 원상 복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일정 기간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일시적 상황을 연출하며, 지령을 분석한 뒤 자취를 감추는 가상의 인물을 재현했다.  

전문가에 의해서만 암호화된 메시지의 의미가 산출되는 난수 방송이 지닌 실재와 허구를 매개하는 중간적인 성격, 그리고 실제 일상적 공간과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구성을 통해 ‘진실’에 대한 관객의 인식은 교란되고 의심만이 증폭하게 된다.

신정균,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 2019,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 전시 전경(코리아나미술관, 2019) ©신정균

이처럼 신정균은 접근이 제한된 장소와 정보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시도로써 난수 방송에 대해 조사하거나 교내에 위치한 지하벙커를 추적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실체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삶의 내밀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 환경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정균,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 2019,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25초 ©신정균

예컨대 신정균은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2019)에서 개인의 디지털화된 정보가 기술 환경 안에서 비가시적으로 유포되고 침해당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기밀 정보를 사진이나 음성 파일에 숨기는 심층 암호화 기법인 ‘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hy)’를 활용했다. 그는 여행 중 우연히 찍힌 사진 속 장소를 지도를 통해 다시 찾아보고 그 이미지에 문장을 새겨 넣어 다시 암호화하는 프로세스를 유튜브 튜토리얼 형식으로 유포했다.  

그리고 암호화를 거친 이미지가 실제 전시장에도 놓여지는데, 디지털 파일이 아닌 출력된 사진 자체는 암호로써 작동되지 않기에 보안 장치를 통해 어떠한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복제하여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함으로써 과연 완전한 보안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신정균, 〈발끝으로 걷는 사람〉, 2021, 단채널 비디오, 9분 24초 ©신정균

이후 신정균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전 지구적 재난인 코로나를 겪으며,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 불안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이때 작가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재난의 상황 속에 놓인 개인의 존재와 생존 감각에 주목했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제작된 〈발끝으로 걷는 사람〉(2021)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아 폐쇄된 취수장을 배경으로 한 곡예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있다. 영상 속의 곡예사는 호이스트에 매달린 줄을 타고 올라가거나, 녹이 슬어 잘 돌아가지 않는 톱니를 힘겹게 돌린다.


신정균,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2021, 단채널 비디오, 3분 28초 ©신정균

이 작업에서 작가는 팬데믹 이후 불안의 실체가 가시화되면서 우리가 갖고 있던 취약함이 드러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실제 감각으로 와 닿는 상황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그에 맞는 행동 양식을 만들어 신체적인 측면에서의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신정균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하고자 폐쇄된 취수장을 대피소로 가정하고, 그 안에서 곡예사의 신체를 통해 마치 어떠한 상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모양새와 닮은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반복되는 동작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의 신체에 맞닿아 있는 불안의 형체를 감각하게 되고 어떻게 재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정균, 〈골짜기와 구덩이〉, 2023, 단채널 비디오, 8분 32초 ©신정균

이후 신정균은 보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박물관 수장고와 표본실의 모습을 담은 기록 영상을 제작했다. 작가는 기록과 보존에 대한 조사를 통해 데이터의 손실이나 치명적인 오류, 모호한 판단 등 여전히 불확실한 방법에 기반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25년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예언과 시나리오》에서 작가는 기록의 중요성이나 보관의 안정성에 대한 사실적인 관심보다는 과연 그 산업들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가령 스발바르의 북극기록보관소(AWA)를 방문하는 여행기 형식의 영상 작업 〈골짜기와 구덩이〉(2023)는 실제 장소와 무관한 푸티지들의 혼재와 허구적인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하며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교란시킨다.

신정균, 〈G2 연구소 관리자를 위한 업무 지침서〉, 2025, 단채널 비디오, 8분 43초 ©신정균

한 연구소에서 일관된 보존체계를 수립하지 않아 긴 시간 모은 동물 표본들이 곰팡이균에 의해 전량 폐기된 실제 사고를 바탕으로 한 〈G2 연구소 관리자를 위한 업무 지침서〉(2025)는 매뉴얼 괴담 형식, 필터링 된 영상 등 가상의 요소를 활용하여 현실과의 거리를 발생시킨다.  

색이 반전된 이미지는 아무도 없는 밤의 연구소를 연상시키며, 쇼팽의 야상곡은 태엽을 감으면 자동으로 연주되지만 갈수록 동력을 잃게 되는 오르골의 음색으로 음산하게 변환되어 울려 퍼진다. 이러한 연출은 특정 행위를 서약하는 동시에 지침을 올바르게 안내하는 매뉴얼의 일반적 목적과는 대조적이게도 매뉴얼을 심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불안한 무언가로 변모시킨다.

신정균, 〈시뮬레이션 #1〉, 2021, 단채널 비디오, 2분 15초 ©신정균

이처럼 신정균은 우리가 보거나 경험하는 것, 또는 우리에게 이미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현상 이면의 본질을 밝혀 진실의 여부를 드러내는 데에 있기보다는 이와 관계하고 있는 불안정하고 모호한 지점들로 향한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익숙한 상징이나 기표를 변용시키거나,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교란시키는 모큐멘터리와 메타 아카이브 방식을 통해 현실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거대한 사회 구조가 만든 인식의 틀 아래 가려진 불안정한 상태들의 실체를 마주하도록 만든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회·정치적 사건을 접할 때마다 늘 개인의 차원에서 도달할 수 없는 한계에 무력감이 들곤 했습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대응 방식을 찾아보기 위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나 감춰진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을 기록해왔습니다.
 
실제 유효한 해결책을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입장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불안의 심리가 달리 보면 대안을 찾아 나서기 위한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정균,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1》 인터뷰 중) 


신정균 작가 ©ART369

신정균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영상매체예술 연합전공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 석사 졸업 후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예언과 시나리오》(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5) 《라스트 오브 어스》(상업화랑 을지로, 서울, 2023), 《리프트 & 드리프트》(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2021), 《아크로뱃》(아트스페이스 보안2,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가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는 《평범한 세계》(주프랑스한국문화원, 파리, 2024), 《불안 해방 일지》(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4), 《Past. Present. Future.》(송은, 서울, 2022),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두산아트랩: Part 2》(두산갤러리, 서울, 2019) 등이 있다.  

신정균은 난지창작스튜디오(2023), 송은 아티스트 스튜디오(2020),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7)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산현대미술관, 송은문화재단, 아르고스 시청각예술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