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활동을 시작한 콜렉티브 업체eobchae는 90년대생 3인(김나희, 오천석, 황휘)으로 구성된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이다. 이들은 영상, 사운드, 웹,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미래를 가속하는 신기술과 환경을 첨예하게 살피며 그 틈에서 누락되거나 소거된 관점을 축으로 삼아 사변적인 세계관을 직조해 왔다.

업체eobchae, 〈오-제네시스〉, 2020, 단채널 비디오, 11분 5초, 《현실 이상》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0) ©백남준아트센터

업체eobchae는 프로그래머 김나희(b. 1991), 시청각 미디어를 두루 다루는 황휘(b. 1992), 인하우스 기획자 오천석(b. 1992)로 이루어진 팀으로,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와 역할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작업해왔다.
 
이들은 포스트-인터넷 시대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가속화된 동시대 시청각 미디어, 또는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공유하며, 각자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다.  

각자의 역할을 살펴보자면, 김나희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파생된 신기술을 매체나 담론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며 기술적 요소의 리서치와 구현, 웹 개발 전반을 맡고 있다. 황휘는 사운드와 영상을 제작하고 프로덕션의 방향성을 짜고 필요한 소스를 배분 및 수합해 최종적으로 편집한다. 그리고 오천석은 리서치와 스크립트 작성, 콜렉티브 안팎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업체eobchae X 류성실, 〈체리-고-라운드〉,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6분 57초 ©백남준아트센터

작업 공동체인 업체eobchae는 자신들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전문가 혹은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류성실 작가와 협업한 영상 작품 〈체리-고-라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체리-고-라운드〉는 허구 속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점으로 분할되어 근미래의 ‘체리장’과 ‘발해인1’의 브이로그와 2인칭 시점의 영상들로 짜집기되어 있다.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대 시청각적 미디어의 형식을 차용한다.

업체eobchae X 류성실, 〈체리-고-라운드〉,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6분 57초 ©백남준아트센터

작가는 타임라인을 떠도는 파편적 정보들, 1인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불특정 다수의 사적 파편들에 주목하여, 작품을 통해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무화하는 온라인상의 파급력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세 편의 픽션으로 이루어진 영상은 기후위기와 같은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된 기술과 사회적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며 시장자본주의와 얽혀 그 반대항으로 치닫기도 하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대디 레지던시’ 참가자 모집 홍보 포스터 ©김나희

또한 업체eobchae는 김나희의 신체와 가족 계획을 토대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내는 장기 프로젝트 ‘대디 레지던시’(2020-)를 진행한다. 본 프로젝트에서 김나희는 정자 기증을 받아 2026년 인공수정을 거쳐 ‘가지(Gaji)’라는 이름의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그리고 ‘대디 레지던시’ 참여자를 모집해 이 중에서 선발된 ‘대디’들과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형태로 공동 육아를 진행한다. ‘대디 레지던시’ 지원 자격에 따르면, 성별을 무관하고 30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모두 지원할 수 있으며 선정된 지원자들은 3개월 내지는 6개월 동안 ‘대디’로서 작가와 함께 인공수정으로 태어날 아기 ‘가지’를 양육할 예정이다.


‘대디 레지던시’ 웹사이트 ©업체eobchae

김나희를 주축으로 한 ‘대디 레지던시’ 프로젝트는 업체eobchae의 프로덕션과 접합되어 여러 가능 세계를 파생시키기도 했다. 가령 인공지능 챗봇을 개발해 대디를 모집하는 트루뷰 인스트림 광고를 제작하고, 먼 미래에 모두 생식 기관이 초연결되어 자궁과 정자가 통신망의 허브와 데이터 패킷으로 작동하는 중앙집권적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보안 토튜리얼을 작성하는가 하면, 계약 기간 동안 부모 역할을 수행할 대디에게 최적화된 운영 체제를 개발한다.

업체eobchae, 〈Φ번째 대디 마스터 클래스〉, 2020 ©백남준아트센터

나아가 온라인 강의 포맷을 차용한 기초 소양 학습 프로그램인 〈Φ번째 대디 마스터 클래스〉(2020)를 제작해, ‘가지’의 후손이 살아갈 미래의 정치 지형도를 시뮬레이션했다. 유튜브 채널에서 스트리밍되었던 이 학습 영상은 ‘가지’가 속한 가능 세계가 절망적일 경우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오류를 발견하고 변수를 제어하는 법을 가르친다.  

‘대디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진행하고 있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관한 일련의 실험들은, 이성애 중심의 법적, 제도적 관계에 기반한 기존의 가족관으로부터 벗어난 미래를 제시한다. 이때 활용되는 인공지능 머신, 인공수정과 같은 동시대 기술들은 미래의 가족 형태와 양육 방식에 대한 업체의 상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한다.

업체eobchae, 〈AMAEBCH〉, 2022, 단채널 비디오, 60분, 《AMAEBCH》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2) ©뮤지엄헤드

2022년 뮤지엄헤드에서 열린 개인전 《AMAEBCH》에서 업체eobchae는 암호화폐를 모티프로 한 영상 작업 〈AMAEBCH〉(2022)를 선보였다. 영상의 제목은 SNS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포맷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Me Anything)”의 약자 ‘AMA’과 업체eobchae를 암호화폐 식으로 적은 ‘EBCH’를 합친 단어이다.  

영상은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선보인 영상 3개를 다중 시점으로 재맥락화한 것으로, 3개의 영상의 타임라인을 ‘저승’으로 수렴시킨 뒤, 저승의 관리자인 비사문천왕으로 분한다. 고전 소설인 『설공찬전』(1511)에 등장하는 저승의 왕 비사문천왕은, 이 작품에서 머신 러닝과 라이더 센서를 매개해 스크린에 현현한다.

업체eobchae, 〈AMAEBCH〉, 2022, 단채널 비디오, 60분, 《AMAEBCH》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2) ©뮤지엄헤드

알트코인의 집행자이기도 한 비사문천왕이 중생과 접하는 인터페이스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문답(AMA)이다. 이승을 떠나서도 모든 사건의 가치를 값의 등락으로 치환하여 이해하는 중생들이 가상의 암호화폐 ‘업체 코인’의 그래프를 점치는 질문을 하면, 저승의 목소리가 답한다. 하지만 기계 학습적 창발성으로 인해 문답은 선문답이 되어 갈 뿐이다.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2, 단채널 비디오, 15분 53초 ©업체eobchae

‘업체 코인’은 〈AMAEBCH〉의 소스이기도 한 영상 작품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2022)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영상에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루지와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사람들은 임금 노동을 대가로 국민을 인질로 삼는 국가에 저항하고자 루지를 타고 60년간 동면한 뒤 고액의 화폐 가치를 가진 ‘업체 코인’을 수령할 수 있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에 참여한 자들이다.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2, 단채널 비디오, 15분 53초 ©업체eobchae

자면서 돈을 버는 모습은 오늘날 주식이나 코인을 일단 사고 기절하라(잊어버려라)는 ‘기절매매법’ 등 시장의 언어와 겹쳐진다. 작중 인물들이 루지를 타고 달리는 길은 실제 가상 화폐의 그래프처럼 가파르고 위태롭다. 루지의 탑승자들은 이러한 속도감에 신체적 위협을 느끼고 루지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속도를 견디고 자신의 신체를 방어해가며 겨우 종착점에 다다른다. 종착점에 다다른 사람들은 돈뿐만 아니라 서로 같은 뜻을 공유하고 추구하는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한다.

업체eobchae, 〈eoracle〉, 2022, 단채널 비디오, 24분 30초 ©업체eobchae

영상 작업 〈eoracle〉(2022)은 업체 코인이 기축 통화로 유통되며 도래한 공동체의 모습을 다룬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네트워크 체계인 웹3를 기반으로 한 이 공동체에서는, 업체 코인 보유량이 발언권으로 직결된다. 이곳에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진실 여부를 투표로 결정해 네트워크에 전달하는 오라클(oracle)로 이루어진 조직체 TrueDAO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뛰어난 오라클인 어라클(eoracle)은 감질나는 진실 보상 체제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에게 TrueDAO의 지하 조직 TrueTrueDAO의 오라클이 더 많은 업체코인을 차지하기 위한 위험한 제안을 건네 오게 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어라클은 진실을 향한 득표의 수를 확보하기 위해 더욱 위험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업체eobchae, 〈eoracle〉, 2022, 단채널 비디오, 24분 30초 ©업체eobchae

수평적 상호교환이 가능한/할 탈중앙화 네트워크인 웹3는 빅테크라 일컫는 플랫폼 기업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중앙집권적 구조의 웹2에 비해 이상적인 미래로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업체eobchae는 그러한 희망적인 판단을 보류한 채,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신기술이 등장하는 배경과 자리잡는 과정을 되짚고, 그로부터 구축될 가능 미래를 냉정하게 제시한다.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eoracle〉은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그 안에서 최대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개인의 원초적 욕망이 낳은 디스토피아의 전조를 동시에 보여준다.

업체eobchae, 〈멱등설〉, 2025, 6채널 영상, 사운드, 웹사이트, 시트지에 디지털 프린트, 티셔츠, 레진,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 2025》에서 공개한 신작 〈멱등설〉(2025)은 오늘날 분산 시스템에서의 데이터 일관성과 무결성을 확보하는 알고리즘을 종교의 속성에 대입한다. 작품은 래프트(raft) 알고리즘 분산 노드들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종교 집단이 계시를 받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가상의 성지 유타를 설정하고 6인의 성인(聖人, saint) 캐릭터와 서사가 기술된 앤솔로지를 기반으로 작업은 전개된다. 탄생, 박해, 순교로 이어지는 성인들의 전기를 바탕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성전과 3폭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배경에는 위키피디아식 그래픽으로 재현된 성인들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업체eobchae, 〈멱등설〉, 2025, 6채널 영상, 사운드, 웹사이트, 시트지에 디지털 프린트, 티셔츠, 레진, 가변크기 ©업체eobchae

업체eobchae는 기술과 자본에 대한 상징과 은유를 내재한 성인들의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기술지상주의와 초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논쟁적인 지점들을 이어간다. 또한 이 작업에는 소설가, 시각예술가 등 동료 작가들이 참여하며, 유연한 협업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업체eobchae의 작업은 웹3, 블록체인 등 신기술과 초자본주의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견지하며, 가속화된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잠시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상상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들은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친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매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미래에 대한 공상과학의 세계관을 현재로 현실화하는 매체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스스로 전위라 선언하는가? 그들의 소위 전위적 실천은 무엇을 앞당기는가? 수레바퀴 안의 우리는 회전의 방향을 알 수 있는가? 수레바퀴는 앞을 향해 굴러가고 있는가? 혹은 굴러가는 방향이 곧 앞이 아닐는지?”    (업체eobchae, 작가 노트) 


 업체eobchae ©두산아트센터

업체eobchae(김나희, 오천석, 황휘)는 2017년 결성한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콜렉티브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ROLA ROLLS》(세마 벙커, 서울, 2024), 《eoracle》(두산갤러리, 서울, 2022), 《AMAEBCH》(뮤지엄헤드,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젊은 모색 2025》(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2023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베일벗은 플럭스》(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3), 《어떤 Norm(all)》(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23), 《프리즈 필름 2022: I Am My Own Other》(막집, 서울, 2022), 《땅속 그물 이야기》(아르코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그룹전 및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리고 2021년 업체eobchae는 제12회 두산연강예술상 미술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