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실(b. 1993)은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오늘날 한국의 정치, 사회적 이슈를 점유하는 자본주의와 개인의 세속적 욕망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1인 미디어 방송의 형식을 차용한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등을 통해, 사회적 현상에 얽혀 있는 한국 특유의 전통적, 토속적 가치와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를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류성실, 〈대왕트래블-개선장군 시리즈〉, 2017, 디지털프린트, 30.5x42cm ©류성실

2017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대왕트래블’ 시리즈는 가족주의와 구복신앙 등 한국의 토착적 가치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뒤엉킨 시대상을 블랙코미디의 서사와 연출로 풀어낸다.  

가상의 효도 관광 여행사 ‘대왕트래블’은 한국의 뿌리 깊은 ‘효’ 문화를 겨냥하며 노인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작품은 가족 없이 해외로 패키지 여행을 온 노인 고객들이 정체 불분명한 젊은 외국인 여성 ‘나타샤’의 가이드를 받으며 효도관광을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류성실, 〈대왕트래블-개선장군 시리즈〉, 2017, 디지털프린트, 30.5x42cm ©류성실

작품에 등장하는 대왕트래블의 고객들은 오직 ‘노년 남성’들로, 그들을 안내하는 ‘젊은 여성’인 서비스 노동자 나타샤와 대치하며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노년 남성인 고객들은 젊은 여성인 나타샤를 좇거나 성적 대상화를 하지만, 나타샤는 이들을 철저하게 비지니스 타겟으로 여기며 자본주의적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류성실, 〈대왕트래블 칭쳰 투어 – 김첨지 리바이벌 2019〉, 2019, 단채널 비디오, 25분 ©류성실

이러한 배경과 구도로 이루어진 ‘대왕트래블’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던 개인전 《대왕트래블 칭쳰투어》(탈영역 우정국, 2019)에서는 가상의 휴양국가 ‘칭쳰’에서의 여행을 30분간 압축적으로 제공하는 투어 상품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투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노인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왕트래블 칭쳰투어》 전시 전경(탈영역 우정국, 2019) ©류성실

작품의 주인공인 김첨지라는 노인은 아들이 보내준 효도관광에서 대왕트래블의 가이드 나타샤를 만나 복상사하게 되는 인물로, 2019년 칭쳰투어에 혼령으로 등장한다. 류성실은 이러한 성 산업과 효도 산업의 문제를 작업의 모티프로 삼으면서도, 이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과장된 허구성과 조악한 연출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풍자한다.
 
김첨지의 혼령은 나비, 꽃, 폭포, 무지개가 어우러진 원색적인 가짜 자연, 싸구려 미감의 패키지 상품 안내와 조악한 관광지 풍경을 떠돌아 다닌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은 지상낙원, 가족, 효도, 죽음, 무병장수와 같은 가치들의 껍데기를 화려하고 과장된 방식으로 표면화한다.


류성실, 〈대왕트래블 2020〉, 2020, 유저 인터랙션이 있는 단채널 비디오, 15분 ©류성실

이어서 류성실은 ‘대왕트래블’ 시리즈를 스마트폰 속으로 옮겨(〈대왕트래블 2020〉), 사용자의 인터랙션에 따라 전개되는 방식으로 가상의 관광지 창첸 투어를 보다 몰입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형식으로 제작된 〈대왕트래블 2020〉은 관객이 직접 스크린을 터치하며 투어가 진행된다.  

한 남성 노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게임 작업은 카메라의 방향에 따라 360도 회전하며 휘황찬란한 관광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연출되었으며, 터치 스크린을 통해 관객이 직접 작품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한다.

류성실, 〈대왕트래블 2020〉, 2020, 유저 인터랙션이 있는 단채널 비디오, 15분 ©류성실

그러나 작품의 시나리오는 주인공이자 사용자의 시점인 노인이 가이드 나타샤에게 사랑에 빠져 결국 그녀와 함께 눕는 망상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승에 올라간 노인은 생전에 품었던 노골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조상님께 죽고 싶지 않다고 빌지만 결국 구천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만다.  

혼령이 된 노인은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 먹방 인스타 라이브를 하는 손녀에게 “나 아직 안 죽었다,” “어디가서 죽었다고 하지마”라며 소리치지만 그의 목소리는 손녀에게 도달하지 않은 채 게임은 끝이 난다.

류성실, 〈김첨지 리바이벌〉, 2017, CRT 4채널 영상, 10분 7초 ©류성실

이진실 비평가는 이 기이한 투어에서 결국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건전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이 “물질과 성(性)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욕망과 맞붙어 있다는 사실, 나아가 이를 미끼로 삼는 자본의 편재성에 우리가 속박되어 있다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라고 보았다.  

칭쳰투어의 오색빛깔의 찬란한 이미지들은 구복신앙과 가족주의를 파고드는 물신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차마 웃지 못할 오늘날 현실의 이면을 비추고 있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4〉, 2018, 단채널 비디오, 6분 ©류성실

‘대왕트래블’ 시리즈 이후 류성실은 ‘BJ 체리장’이라는 아바타를 만들어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 1인 미디어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대왕트래블’과 마찬가지로, ‘BJ 체리장’ 시리즈 또한 과한 연출과 조잡한 편집, 싸구려 미감으로 점철된 영상으로, 오늘날 1인 미디어의 자극적인 문법을 집요하게 재현한다.  

하얀 분칠과 짙은 화장을 한 체리장은 자신을 세계 최초 ‘일등 시민권자’이자 ‘한민족 평화통일 홍보대사’, ‘국제평화기구 친선대사’라고 홍보하며 사기성 짙은 발언으로 이목을 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 남성을 ‘오빠’라고 부르며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였다는 가짜 뉴스를 공표하고 천국 시민권을 위한 입금을 종용한다. 그리고 직전에 살펴보았던 대왕트래블은 그녀의 사업체라는 설정을 가지며, 두 작품의 세계관이 이어진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4〉, 2018, 단채널 비디오, 6분 ©류성실

그녀의 라이브 방송은 상황의 긴박함을 알리는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과도한 자막과 영상 클립, 출처와 진위가 불분명한 많은 자료들이 굉장한 중요한 증거인 것처럼 과장되어 노출시킨다. 이러한 연출은 누구나 마이크를 쥐고 의견을 자유롭게 확산시킬 수 있는 동시대 미디어 문제를 꼬집는다.  

유튜버나 BJ 등으로 불리는 1인 미디어 생산자의 콘텐츠 생산 방식을 패러디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동시대인들의 소비, 믿음, 감수성을 겨냥해 마케팅하는 미디어 산업의 모습을 풍자하고 오늘날 미디어에 떠도는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가진 빈약함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9〉, 2018, 단채널 비디오, 11분 ©류성실

체리장의 방송은 허구적인 장치가 매우 노골적으로 과장되어 드러나지만, 그 안에는 실제 현실에서 비롯된 요소들이 교묘하게 녹아 들어있다. 가령 체리장이 꿈에서 받은 숫자로 북한의 난수 방송을 해독하고 미사일이 떨어질 위치를 풍수지리적으로 분석하는 장면은 실제로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루머와 종말론의 유행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류성실은 체리장이라는 아바타를 연기하며 이러한 음모론과 종말론을 단순히 따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케팅 어법을 차용해 이와 교묘하게 얽혀 있는 신자유주의적 욕망과 전략을 드러낸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2022, 혼합재료, 가변설치 ©류성실

2018년부터 인터넷 세상에 등장한 체리장은 2019년 과로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체리장의 세계관은 사후에도 이어지게 되는데, 2022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에서는 체리장을 깍듯이 모시던 중년 남성 사업자 ‘이대왕’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대왕은 과거 대왕트래블을 운영하며 효도관광을 속물적이고 변태적인 것으로 타락시키고 이윤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봉착한 여행업 대신, 짧은 생애주기로 극강의 이윤을 낼 수 있는 애견상조회사를 시작하게 된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아뜰리에 에르메스, 2022) ©류성실

전시는 가상의 장례식과 화장장의 절차를 차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애견의 죽음과 애도의 예식에 동참하도록 한다. 약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거행되는 장례 절차는 죽음 마저도 철저하게 사업 아이템으로 치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업계 선배인 체리장에게 전수받은 ‘기도’, ‘봉사’ 등의 마케팅 컨셉을 활용하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직종을 바꾼 나타샤가 다시금 등장한다.  

이대왕의 서사로 이어지는 체리장의 세계관은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을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RETURN TO ROOTS : A RETROSPECTIVE IN MEMORY OF CHERRY JANG (1984-2019)》 전시 전경(TSA NY, 2024) ©류성실

이처럼 류성실의 블랙코미디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동시에, 작가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돈에 대한 원초적이고 강렬한 개인들의 욕망, 소시민적인 면모와 취약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연출과 구성을 가지지만, 단지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는 불편함을 남기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제 작업은 제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상황들을 사회상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관점에서 저의 일상은 하이퍼-세속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에 대해 극심한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피로감을 액화시켜 질질 흐르게 하기보다 작품을 통해서 승화시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류성실, 앨리스온 – [인터뷰] 체리 장, 그녀는 누구인가 : 류성실, 2020.02.29) 


류성실 작가 ©에르메스 재단

류성실은 서울대학교 조소과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소과 석사 학위를 수료했다. 개인전으로는 《RETURN TO ROOTS : A RETROSPECTIVE IN MEMORY OF CHERRY JANG (1984-2019)》(TSA NY, 뉴욕, 2024), 《대왕에어 엔진 복구기금 마련전》(실린더 2, 서울, 2023), 《불타는 사랑의 노래》(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22), 《대왕트래블 칭쳰투어》(탈영역 우정국, 서울, 2019)가 있다.
 
또한 작가는 토리노 아시아 박물관(토리노, 2024), 쿤스트할 오르후스(오르후스, 2024), 백남준아트센터(용인, 2024),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싱가포르, 2024), 송은(서울, 2021), 아르코미술관(서울, 2020) 등 국내외 기관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류성실은 2022년 금천예술공장, 2023년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 레지던시, 2024년 두산 해외 레지던시에 입주했으며, 제19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