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미술 분과 3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7년 시각예술 분야 정부 예산안으로 1,010억 원을 편성했다.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등 시설 관련 사업을 포함한 금액이며, 이를 제외한 미술 창작·유통·향유 분야 예산은 4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정부는 작가 창작지원 확대와 미술비평 활성화, 해외 진출 지원사업 개편, 창작공간 확충, 청년 작가 육성 등을 주요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특히 경력단계별 작가 창작지원 예산을 3억 원에서 26억 원으로 늘리고, 한국 미술 해외 진출 스케일업 사업에 41억 원을 편성하는 등 창작과 국제교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예산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증액된 금액과 함께 지금까지 추진해 온 미술지원정책의 실효성이다. 공공지원사업이 실제 창작환경을 얼마나 개선했으며, 한국 동시대미술의 장기적인 발전과 인프라 구축에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원사업의 기획과 예산 편성, 지원 대상 선정과 심사기준, 사업 종료 이후의 성과평가가 예술의 본질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2027년 시각예술 지원사업 예산 도표

창작지원과 미술비평 예산 확대
 
2027년 예산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가의 창작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확대다.
 
시각예술창작산실 예산은 2026년 12억 원에서 2027년 32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경력단계별 작가 창작지원 예산은 3억 원에서 26억 원으로 확대되며, 미술비평 지원 예산도 1억 원에서 4억 원으로 늘어난다.
 
작가의 경력 단계에 따라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미술비평에 대한 재원을 확대하는 방향은 의미가 있다. 특히 미술비평은 작품과 전시를 해석하고 새로운 미학적 논의를 생산하며, 작가의 활동을 연구와 기록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창작지원의 실효성은 지원금의 규모뿐 아니라 지원 대상의 선정 기준과 지원 기간, 창작 과정의 특성을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검토해야 할 문제는 결과물 중심의 지원체계다. 공공지원사업은 일정 기간 안에 전시나 작품 제작, 행사 등을 완료하고 결과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조형언어의 탐구와 미학적 실험, 장기적인 연구는 반드시 단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원사업의 목적과 심사 항목에 맞춰 예술 활동을 기획하는 구조다. 작가가 자신의 문제의식과 창작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는 것과, 공모사업의 조건에 적합하도록 작업과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지원제도가 후자의 방식을 유도한다면 기획서 작성 능력과 사업 수행 역량이 실제 예술적 탐구의 깊이나 독창성과 별개로 중요한 선정 요인이 될 수 있다.
 
공공지원은 지원사업에 적합한 결과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기보다, 예술가의 자율적인 연구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미술비평 지원 역시 단기간의 원고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와 전문 출판, 아카이브 구축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해외 진출 지원, 다년도 사업으로 개편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 미술 해외 진출 스케일업' 사업에는 41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기존 단년도 지원사업의 짧은 기획 기간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 전시 지원을 다년도 방식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첫해에는 해외 기획자와 한국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고, 다음 해에는 해외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이다.
 
국제 전시를 준비하는 데 충분한 기획 기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이다. 해외 미술기관과의 협력에는 작가 연구와 작품 선정, 전시 기획, 운송, 설치, 홍보 등 다양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진출 지원사업의 성과는 전시 개최 이후까지 살펴봐야 한다. 현지 미술기관과의 지속적인 협력, 작가에 대한 연구와 비평, 출판과 소장, 후속 전시 등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국제 미술계에서 작가의 활동 기반은 이러한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해외 진출 지원사업은 전시 개최 건수보다 지속적인 국제 활동 기반을 얼마나 구축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서울복합화력발전소 지상부 부지에 1단계로 조성된 공원의 모습 / 사진: 마포구

전시공간 지원과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시각예술창작공간 지원 예산은 2026년 30억 원에서 2027년 45억 원으로 확대된다. 국내외 레지던시 지원에도 약 49억 원이 편성됐다.
 
독립 전시공간과 지역의 소규모 미술기관은 새로운 작가와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하고, 창작과 연구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은 한국 미술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서울 마포구 당인리에 조성 중인 문화창작발전소는 2027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개관 및 운영 관련 예산으로 전년도 96억 원보다 크게 증가한 529억 원을 편성했다.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는 폐발전시설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으로, 실험적 예술 창작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장 등을 정책적 목적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대부분의 공공 문화예술기관에도 적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목표다.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을 입증하려면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운영전략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기존 국공립 미술관과 창작공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어떤 예술 활동을 지원할 것인지, 운영을 책임질 전문인력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연간 운영비 가운데 실제 창작과 연구에 투입되는 예산은 얼마인지 등이 중요한 검토 대상이다.
 
이미 다양한 국공립 미술관과 공공 문화예술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시설의 필요성을 판단하려면 기존 기관의 활용 가능성과 운영 성과부터 살펴봐야 한다.
 
새로운 공간을 건립하는 방식과 기존 기관의 프로그램 및 전문인력을 강화하는 방식 가운데 어떤 선택이 한국 동시대미술의 발전에 더 효과적인지 비교할 필요가 있다.
 
한국 동시대미술에 필요한 인프라는 공간의 숫자나 건축물의 규모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창작, 비평과 출판,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공공 문화예술공간의 성과는 시설의 완공과 개관 실적뿐 아니라 개관 이후의 운영 프로그램과 장기적인 예술적 성과를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참여작가 모습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 작가 육성사업
 
국립현대미술관은 2027년 청년 작가 육성을 위한 새로운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청년 작가 기초예술 육성에 약 69억 원이 편성됐으며, 한국 작가의 해외 순회전 등 세계 진출 기반 마련을 위한 사업에도 12억 원이 배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의 수집과 전시뿐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와 기록, 국제적인 소개를 수행하는 국가 미술기관이다.
 
따라서 청년 작가 육성사업 역시 단기적인 제작비 지원이나 전시 개최를 넘어 작가 연구와 비평, 출판, 아카이브, 국제 미술기관과의 협력 등 미술관의 전문적인 기능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원 대상 작가의 선정 기준과 기존 미술관 프로그램과의 차별성, 장기적인 작가 육성체계가 어떻게 설계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누가 정책을 기획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2027년 미술 예산안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는 정책의 기획과 지원사업의 평가체계다.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도입하거나 예산을 확대할 때는 기존 사업의 성과와 한계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으며, 그 결과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원 대상의 선정 과정에서도 전문성과 객관성이 중요하다. '예술성', '독창성', '발전 가능성' 등의 평가 항목은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부족하면 심사위원의 주관적 견해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 있다.
 
예술적 가치의 판단에는 다양한 해석과 전문적인 견해가 요구된다. 따라서 심사위원의 전문성과 독립성, 사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평가기준, 이해충돌 방지 절차, 평가 결과에 대한 설명 가능성이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지원사업의 성과를 전시 개최 횟수나 참여 인원, 사업비 집행률 등 행정적인 지표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원사업의 성과는 작가의 창작 활동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새로운 미학적 논의와 연구가 얼마나 축적되는지, 독립적인 미술기관의 운영 기반이 얼마나 강화되는지, 국제적인 협력관계가 얼마나 발전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지원사업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동시대미술의 실질적인 발전과 연결되어야 한다.
 
 
 
미술계의 정책 비평과 검증 기능도 강화되어야 한다
 
공공 미술지원정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은 정부와 행정기관만의 책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미술비평가와 연구자, 기획자, 미술기관 관계자 역시 정책의 목적과 운영방식, 예산 편성의 타당성, 사업의 장기적인 성과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새로운 문화시설의 건립이나 지원사업의 확대가 발표될 때, 사업의 명분과 예산 규모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운영계획과 전문성, 기존 정책과의 연계성, 장기적인 재정 부담을 검토하는 비평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지원사업의 수혜와 심사, 자문, 운영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정책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한국 미술계가 지원 규모의 확대뿐 아니라 지원제도의 구조와 성과를 지속적으로 검토할 때 공공 미술지원정책의 개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예산 증액을 넘어 지원정책의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2027년 미술 분야 정부 예산안은 창작지원 확대와 비평 활성화, 해외 진출 사업의 다년도 개편, 창작공간 지원, 청년 작가 육성 등 여러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한국 동시대미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지금까지의 사업 기획과 지원방식, 심사기준, 성과평가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기존 지원사업이 한국 미술의 창작환경과 연구 기반을 얼마나 개선했으며, 그 성과가 새로운 정책과 예산 편성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또한 공공 문화예술시설의 확장이 실제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운영 역량 강화로 연결되는지, 작가와 기획자, 연구자, 독립 미술기관들이 지원의 효과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2027년 미술 예산안의 가치는 발표된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그 예산이 한국 동시대미술에 어떤 예술적 성과와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남기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원사업과 공공시설의 지속적인 확대만이 아니라, 예술의 자율성과 본질적인 발전을 중심에 두고 공공 미술지원정책의 목적과 운영체계를 재확립하는 일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