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을 개조하여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관한 서울 남대문극장에서 2026년 9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리는 《세계문학이라는 세계》는 책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읽어 온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전시에 소개된 독일 레클람의 『파우스트 1부』, 영국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의 『형이상학』,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의 『젊은 사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권의 출판문화를 보여준다. 문학과 지식을 총서로 묶어 독자에게 전달해 온 역사를 통해, 전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세계문학’의 범위와 그 형성 과정을 살펴보게 한다.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전시 포스터. 사진 제공: 남대문극장.

이 책들을 함께 바라보면 전시 제목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세계문학으로 받아들인 작품들은 어떤 선택을 거쳐 번역되고 출판되었을까. 책의 내용과 함께 표지, 권 번호, 장정에 눈길을 옮기는 순간, 세계문학을 구성해 온 사람들과 제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총서의 첫 권과 천 번째 권
 
레클람은 1867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우니베르잘 비블리오테크(Universal-Bibliothek)’를 시작했고, 첫 번째 책으로 괴테의 『파우스트 1부』를 펴냈다. 저렴한 가격의 소형본으로 출간된 이 총서는 독일과 유럽의 문학을 비롯해 고대 텍스트와 철학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출판사의 연혁은 저작권 보호기간의 변화와 생산 기술이 이러한 대중적 보급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1906년 영국에서 시작된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Everyman’s Library) 역시 고전을 폭넓은 독자에게 전달하는 출판 기획이었다. 1956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총서의 1000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시에 소개된 판본의 표지에도 ‘No. 1000’이 표시되어 있다. 이는 총서의 간행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 목록이 천 번째 권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번호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Metaphysics), Everyman’s Library No. 1000. 사진 제공: 남대문극장.

사진 속 『형이상학』은 이 전시를 읽는 단서를 제공한다. 철학서까지 포괄하는 총서의 범위는 문학과 교양이 출판의 역사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문학작품을 고르는 일과 독자가 갖추어야 할 지식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 하나의 출판 기획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레클람의 1번과 에브리맨스의 1000번을 나란히 생각하면 권 번호도 의미를 얻는다. 번호는 개별 책에 총서 속 위치를 부여하고, 독자에게 더 큰 목록의 존재를 알린다. 이 목록은 출판사가 읽을 만한 작품으로 선정한 세계의 범위를 구체적인 책의 순서로 제시한다.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세계문학의 목록
 
세계의 문학을 하나의 시리즈로 묶는 출판 방식은 여러 나라에서 발전했다. 독일 레클람과 영국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에서는 1931년 시작되어 1933년 갈리마르로 이어진 ‘플레야드 총서(Bibliothèque de la Pléiade)’가 문학작품을 학술적 편집과 주석을 갖춘 판본으로 출간해 왔다. 가격과 독자층, 편집 방식은 달라도 작품을 선택해 지속적으로 읽힐 목록을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
 
일본에서는 ‘세계문학전집(世界文学全集)’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사용되었다. 신초사는 1927년 『레 미제라블』 제1권으로 전집을 시작해, 두 차례의 기획을 합쳐 총 57권으로 1932년에 완간했다. 같은 1927년에 창설된 이와나미문고는 레클람의 총서를 모델로 삼았다. 다권 전집과 소형 문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외 문학과 고전에 접근하는 통로를 마련했다.
 
이 사례들은 한국의 세계문학전집을 국제적인 출판문화 속에서 살펴볼 단서를 제공한다. 유럽의 고전 총서와 일본의 세계문학전집, 한국의 번역 전집은 각기 다른 독자와 출판 환경 속에서 문학의 목록을 만들어 왔다. 전시는 이처럼 책의 선택과 번역, 편집과 디자인이 ‘세계문학’이라는 범주를 형성하는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남대문극장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전시 모습. 사진: 유튜브 미하치 서울 영상 캡처.

한국의 책장에 들어온 세계
 
한국에서는 을유문화사가 1959년 어윈 쇼의 『젊은 사자들』을 제1권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시작했다. 이 전집은 1975년 제100권 『독일민담설화집』의 출간으로 완간되었다. 전시에 소개된 『젊은 사자들』은 해외의 고전 총서와 한국의 번역 출판을 연결해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전집의 통일된 장정은 서로 다른 국가와 시대의 작품을 하나의 시각적 질서 안에 놓는다. 독자는 작가의 개별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이라는 목록을 접한다. 책장에 나란히 꽂힌 책들은 문학의 범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든다. 한국에서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형성된 교양의 경험도 이러한 목록과 번역, 책의 디자인이 함께 만들어 낸 문화로 살펴볼 수 있다.
 
이때 전집의 목차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어떤 국가와 언어권의 작품이 많은지, 여성 작가와 비유럽권 작가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어떤 작품이 반복해서 번역되었는지를 살펴보면 한 시대의 문학적 관심과 선택 기준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옛 전집과 현재의 세계문학 시리즈를 비교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남대문극장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전시 모습. 사진: 유튜브 미하치 서울 영상 캡처.



남대문극장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책장과 전시 도서. 사진: 유튜브 미하치 서울 영상 캡처.

문학을 보는 경험과 책의 물질성
 
전시 공간에서 책을 바라보는 경험은 읽기의 초점을 넓힌다. 『형이상학』의 청록색 표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 번역자와 편집자 표기, 닳은 모서리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어 온 흔적을 드러낸다. 텍스트를 전달하는 표지와 활자, 장정 역시 감상의 대상이 된다.


남대문극장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전시 모습. 사진 제공: 남대문극장.

남대문극장은 1959년 남대문시장에 문을 연 옛 극장의 이름과 장소를 이어받은 공간이다. 전시장에는 노출된 콘크리트 천장과 배관, 긴 창이 남아 있으며, 바닥의 낮은 진열대와 책장이 책을 펼쳐 보이는 서로 다른 방식을 만든다. 격자형 전면에 놓인 전시 제목과 유리문 너머의 책장은 시장 거리의 풍경을 전시 공간으로 이어 준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문학과 출판을 디자인과 시각문화의 관점에서도 바라보게 한다.


《세계문학이라는 세계》가 열리는 남대문극장 외관. 사진 제공: 남대문극장.

참여 작가와 창작자
 
이번 전시에는 문학, 사진, 음악,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참여한다. 사진가 정희승은 사진의 재현 방식과 한계를 탐구하며 텍스트와 설치, 출판으로 작업을 확장해 왔다. 소설가 한유주는 『달로』, 『불가능한 동화』 등을 통해 언어와 서사의 형식을 실험해 왔다.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 송영남은 앰비언트와 클래식, 즉흥 연주를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이며, 디자인 팀 무진동사는 공간과 사물을 매개로 예술가와의 협업 및 전시 공간 구성에 참여해 왔다.
 
《세계문학이라는 세계》를 통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구체적이다. 우리는 어떤 번역과 출판사의 목록을 통해 다른 사회의 문학을 만났는가. 그 목록에서 자주 읽힌 작품과 좀처럼 소개되지 않은 작품은 무엇인가. 책을 전시의 자료로 바라보는 일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세계문학의 범위를 다시 살펴보고, 앞으로 읽을 세계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
 
 
 
전시 정보
 
전시명: 《세계문학이라는 세계》
영문명: 《 A World called World Literature》
기간: 2026년 9월 19일–12월 31일
장소: 남대문극장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25-8
참여: 강주홍, 김승일, 김유자, 김화진, 노기훈, 송영남, 송승언, 서윤후, 석윤동, 무진동사, 이소연, 정희승, 한유주, 황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