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4일, 서울 아트코리아랩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오후 3시의 예술정책 이야기’는 'AI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삼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깊이 있는 문제의식에 이르지는 못했다. 화려한 키워드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방향 제시나 구체적인 대안 없이 표면적 논의에 머무른 이번 행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정책이 현장의 복잡성과 긴박성을 얼마나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김윤경 연구원이 발표를 맡은 이날 행사에서, AI 기술이 이미 한국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전제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를 제외하면, 현재까지 AI는 미술계
전반을 변화시키는 흐름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미학적 정의나 미술사적 맥락, 그리고 창작의 본질에 대한 숙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AI가
예술의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성급히 내놓는 것은 현장과 정책 간의 간극을 드러낼 뿐이었다.
예술이 첨단 기술의 발전을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정책으로 풀어낼 때는 반드시 현실에 기반해야 하며, 미래지향성
또한 구체적 분석과 치밀한 논거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이날 제시된
'AI 시대의 예술' 담론은 창작 윤리 문제, 기술
접근성의 격차, 자원의 불균형, 제도적 기반의 미비 등, 현장에서 제기되는 구체적 쟁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현장의 목소리 대신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인 전망이 반복되었다.
또한 발제자와 패널 구성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두드러졌다. 구체적인 창작 현장을 경험하는 예술가나 큐레이터, 평론가보다는 연구자와
행정가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매일
치열하게 창작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의 현실적 고민은 논의의 중심에 오르지 못했다.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
키워드를 선점하려는 인상이 강했을 뿐,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문체부 제1차관은
행사에서 “예술은 질문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찾아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는 정작 질문보다 이미 정해진 답을 전제하는 태도가 더 두드러졌다. AI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방향성 자체는 의미 있지만, 창작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예술의 자율성, 인간적 상상력에 대한 논의 없이 기술 도입만을 강조하는 접근은 예술
고유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수용의 속도가 아니라, 기술 변화 속에서도 예술의 본질을 지켜내려는 깊이 있는 고민이다.
현재 한국 동시대 미술은 시장 변화, 제도적 불안정, 세대 간 단절,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영향 등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 수용이나
추상적 미래 전망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질문과 시대를 관통하는 깊은 이해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기술 담론을
선점하려는 조급한 기획으로 마무리되었다.
문화정책은 더 이상 표면적 키워드의 나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 담론을 선도하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 현장의 구체적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기반해 신중하고 내실 있는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다. 정책의 출발점은 화려한 전망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치열한 실험과 고민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데 있어야 한다.
기술 발전이 예술에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은 분명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기술 만능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문화정책 본연의 목적을 약화시킬 수 있다. AI 시대의 예술을 논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현장 경청과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읽기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