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1세기 국제 사회에서는 문화가 국격과 국력의 핵심"이라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문화예술의 토대를 건강하게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예산 증액 요구가 아니라, 한국 문화정책이 지금 어떤 단계에 와 있는가를 묻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K-컬쳐’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문화예술의 토대가 오히려 말라가고 있다는 문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 인식이 실질적인 정책 전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원 구조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디언” 지 기사 캡처화면

최근 “The Guardian”에 실린 Almost collapsed: behind the Korean film crisis and why K-pop isn’t immune는 한국 문화산업의 이면을 냉정하게 짚어낸다. 세계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와 K-팝 모두 구조적 약화를 겪고 있으며, 단기 성과 중심의 생존 전략이 오히려 창작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영화 산업은 관객 수와 제작 편수가 급감했고, 중간 예산 영화와 신인 감독이 성장하던 토대는 거의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K-팝 역시 글로벌 투어와 핵심 팬덤 중심으로 재편되며, 실험과 다양성을 담당하던 소규모 기획사들은 생존의 한계에 몰리고 있다. 두 산업 모두 ‘성과를 만들어내는 영역’만 남고, 그 성과를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점은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현실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순수미술 자체의 발전을 위한 지원은 왜 항상 ‘나중’이 되는가
 
한국의 공공 문화정책과 지원 시스템은 반복적으로 가시적 성과, 수치화 가능한 결과, 해외 진출 사례를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순수미술의 작동 방식과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순수미술은 단기간의 성과를 전제로 성장하지 않는다.
작가의 언어는 긴 시간의 실패와 축적, 비평과 해석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
씨앗을 심고, 뿌리가 내리고, 토양이 유지되어야만 비로소 열매가 맺힌다.

그럼에도 현재의 지원 구조는 열매가 보이는 순간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씨앗과 뿌리가 되는 영역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은 문화선진국이 아니라, 문화 후진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문화가 결과물로만 소비되고, 생산 조건과 축적 구조는 고려되지 않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예술분야 투자자 워크숍’ 개최 모습
출처: 문체부·예술경영지원센터

유통·창업·글로벌 성과 지표가 ‘지원의 목적’을 대체하는 구조
 
한국 동시대 미술계 공공지원 구조는 지난 수년간 ‘지원’이라기보다 ‘성과관리’의 언어로 재편되어 왔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술시장 조사와 유통영역(화랑·경매·아트페어 등)에 대한 통계 생산을 “시각예술 산업 육성과 시장 활성화”의 정책 기반으로 삼아 왔고 (예술경영지원센터), 다양한 사업에서 교섭 건수·참여자 수·거래 성과·해외 바이어 반응과 같은 지표가 ‘정책의 성공’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축적된다. 실제로 센터가 운영·관여하는 국제 유통 플랫폼은 ‘마켓’으로 명명되고(예: PAMS), 행사 성과 역시 교섭 건수와 같은 수치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pams.or.kr).
 
이 구조의 문제는 유통과 시장 활성화 자체가 아니라, 유통 지표가 예술 지원의 상위 목적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작업이 장기적으로 무엇을 축적하고 어떤 언어를 형성했는지, 그 언어가 비평·전시·아카이브·컬렉션 시스템과 어떻게 결속되는지 같은 ‘순수미술의 기반 지표’는 정책 설계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 결과, 공공지원은 점점 “작가를 지원한다”기보다 “성과를 재현 가능한 형태로 생산한다”는 방향으로 정렬된다.
 
 

‘예술 생태계’보다 ‘프로그램’이 앞서는 방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구 문화예술진흥원) 역시 지원 체계를 “평가 가능한 성과”로 번역하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위원회가 공개한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 평가 보고서들은 일부 사업에서 성과지표의 단순성과 사업 목적과의 인과관계 설정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즉, “지원의 취지”보다 “지표 관리”가 우선되는 조건이 구조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주 본관

이 환경에서 공공지원은 장기적 토대 구축보다는, 시대 유행과 정책 트렌드에 반응하는 단기 프로그램화로 기울기 쉽다. 온라인·플랫폼·테크 기반 창작 지원 공모가 “창작에서 확산까지”를 내세우며 새로운 생태계 구축을 선언하는 방식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새로움’의 기표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생산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순수미술이 요구하는 장기 축적—작업의 심화, 비평 언어의 정교화, 작가-큐레이터-연구자 네트워크의 지속적 형성, 아카이브와 컬렉션의 체계적 결속—를 제도적으로 보증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빈약하다는 점이다.
 
 

창업·투자·인재개발 프레임의 확장과 순수미술의 주변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예술산업아카데미’나 ‘예술분야 초기창업 지원’ 같은 프로그램은 예술을 창업·투자·기업육성의 언어로 번역한다.
 
이 프레임은 예술 생태계의 일부에는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의 다수를 차지하는 순수미술의 현실—작업의 비시장적 가치, 장기 연구·제작의 불확실성, 성과의 비선형성—은 창업 모델과 잘 맞지 않는다. 정책의 중심 프레임이 ‘기업화·사업화·확산’으로 옮겨갈수록, 순수미술의 기반 영역은 구조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이 된다.
 
이것이 표피적이고 단견적인 이유는, 예술의 성과가 ‘지금 당장 확산 가능한 형태’로만 정의될 때, 문화정책은 필연적으로 열매만 세고 씨앗을 말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순수미술의 토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토대는 교육·비평·전시 인프라·기록·연구·아카이브·미술관 제도 같은 느린 체계의 결합이며, 이 기반이 약화될수록 국제화는 ‘진입’이 아니라 ‘순간적 노출’로 전락한다.
 

 
아트코리아랩, 성과의 성격을 다시 묻다
 
이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트코리아랩이다. 아트코리아랩이 발표한 2025년 성과는 수치상으로 분명하다. 연간 약 7만 명의 이용자, 누적 15만 명의 방문, 누적 투자유치 약 40억 원, 융합예술 작품 47건 발굴, 시연장·미디어월·키네틱·이머시브 사운드 스튜디오 등 시설 대관 이용 증가 등은 공공 플랫폼으로서 빠른 가시적 결과를 만들어낸 지표들이다.


아트코리아랩 전경

그러나 이 성과의 성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화’라기보다 ‘예술 콘텐츠를 매개로 한 기술 기반 창작의 해외 진출’에 훨씬 가깝다.

아트코리아랩이 표방하는 기능 자체가 예술-기술 융합 교육, 실험, 프로토타입 제작, 유통, 창업·보육을 포괄하는 종합 플랫폼이며 (예술경영지원센터), 성과 발표의 중심 역시 투자·고용·글로벌 진출 등 “성장 지표”에 정렬돼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5 아트 스타트업 데이’ 참가자 단체사진. / 출처 : 스타트업데일리

이는 전략적으로 이해 가능한 선택이다. 기술 기반 예술은 이동성과 확장성이 높고, 단기간에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만들기 용이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로를 한국 동시대 미술 전체의 국제화로 일반화하는 순간,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미술의 국제화는 해외 참여의 숫자나 기술 구현의 규모가 아니라, 작품이 국제 담론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기록되며 미술관·컬렉션·비평 시스템과 어떻게 결속되는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구현했는가’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대체하는 구조가 강화될수록, 순수미술은 정책의 중심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화란 ‘이동’이 아니라 ‘맥락화’다

미술의 국제화는 해외 전시 횟수나 기술적 완성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이 국제 미술 담론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어떤 미술사적 위치를 점하는지,
미술관·컬렉션·비평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다.

현재의 성과 지표는 이 질문보다는 ‘무엇을 구현했는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가’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둔다. 그 결과 해외로 이동한 것은 미학적 언어가 아니라 기술적 포맷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국제 미술계 진입이라기보다, 국제 기술·미디어아트 시장 진출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성과 구조가 순수미술 작가들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회화, 조각, 개념 중심 설치, 비물질적 실천은 단기간 성과 중심 평가에서 가시화되기 어렵다. 이는 작가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지원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공공 플랫폼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공공 플랫폼이 기술 기반 예술의 글로벌 유통 허브로 기능하는 것과, 한국 동시대 미술 전반의 국제화를 책임지는 것은 전혀 다른 목표다.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성과 지표와 지원 구조 역시 명확히 분리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하나의 ‘글로벌 성과’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성격의 결과를 묶을 경우, 기술 기반 영역은 강화되지만 순수미술은 자연스럽게 주변화된다. 이는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성과 이전에, 지원기준을 재설계해야 할 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단기 성과와 과실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씨앗과 뿌리를 지키는 영역—작가의 장기적 작업 환경, 비평과 기록, 아카이브와 미술관 제도, 국제 담론과의 지속적 연결—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화는 더 많은 기술을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예술을 어떤 기준으로 세계에 소개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은 성과를 자랑할 때가 아니라, 그 성과가 무엇을 대가로 만들어졌는지를 묻고,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