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75.7%가 연 1,200만 원도 벌지 못하며, 31%는 소득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예술인 가구의 평균 소득은 국민 평균보다 2,000만 원 이상 적었으며, 특히 사진, 문학, 미술 등의 분야에서는 극심한 소득 불균형이 드러났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성은 창작 활동 지속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실제로 예술활동을 포기하는 주요 원인 중 65.5%가 ‘수입 부족’ 때문이었다. 예술인들이 안정적인 창작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분야 중장기 핵심프로젝트 발표 브리핑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렇다면 문체부가 제시한 ‘문화한국 2035’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문화예술 정책은 특정 기관이나 정책 결정권자들의 협의로 정해지고 일방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고 시대정신을 만들어가는 근본적인 요소이며, 이는 곧 창작자와 예술가, 문화 소비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문체부가 내놓은 ‘문화한국 2035’ 정책은 창작자와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보다, 중앙에서 정한 방향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에 머물고 있다.
 
문화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자격과 조건은 단순히 위에서 정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화정책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면밀히 조사하고,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원하는 방식과 요구를 반영해 지원할 때 실효성과 지속성을 갖는다. 즉, 문화예술 정책과 프로그램은 정책입안자들이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만들어 “이것이 옳으니 따르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 정책이야말로 각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선진문화의 조건을 충족하게 된다.


 
1. 지역 문화 균형 발전: 기관 이전이 아닌 바텀업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문체부는 ‘문화한국 2035’에서 "국립예술단체 및 기관의 지방 이전을 통해 지역 문화 균형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 집중도를 완화하려는 의도이지만, 단순한 기관 이전만으로 지역 문화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의 중심은 기관이 아니라 창작자이며, 이들이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기관 이전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지금처럼 소수의 정책입안자가 방향을 정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과의 광범위한 대화와 모니터링을 거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 되어야 한다. 지역 예술계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창작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별 예술 생태계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히 수도권 기관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와 기획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 문화 격차 해소: 공간이 아니라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문체부는 "어린이 예술마을을 조성하여 전국으로 확산하고, 시니어 여가센터를 통해 노년층의 문화 접근성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지다. 현장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정책입안자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공간은 결국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화정책은 단순히 ‘이런 시설을 만들어 줄 테니 이용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각 계층이 필요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어린이 예술마을이 교육 공간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창작과 체험의 거점이 되고, 시니어 여가센터가 노년층의 문화 창작을 장려하는 공간으로 설계된다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창조적 문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또한,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이주민과 장애인을 위한 문화 접근성 확대 정책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3. K-콘텐츠 산업 육성: 대기업이 아니라 창작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문화한국 2035’에서는 "K-콘텐츠 복합문화단지와 국립영상박물관, 게임 콤플렉스를 조성해 K-컬처를 글로벌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정책은 대형 콘텐츠 기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독립 창작자와 중소 콘텐츠 제작자가 실질적인 혜택을 받기 어렵다.

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한 대기업 육성이 아니라 창작자가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창작 지원 펀드, 공정한 유통 구조, 독립 예술가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만 K-컬처가 단순한 산업이 아닌 문화적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과 함께 창작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강화와 공정 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4. AI와 문화예술: 창작자의 정신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문체부는 "AI 기술을 활용한 문화 예술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AI 관련 저작권 보호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예술 컨텐츠 자체의 기록과 정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활용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문화예술은 인간의 행위와 정신을 기록하는 것이지, AI의 생산물을 인간이 보존하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섣불리 이러한 정책을 진행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AI는 창작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하며, 창작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AI 기반 창작물의 저작권 보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며, AI 기술이 예술의 본질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윤리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과 기술의 균형이 깨진다면, 결국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인 예술의 본질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 정책의 중심은 창작자와 현장이어야 한다
 
문화정책은 단순히 ‘혜택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창작자와 문화 소비자들이 생산의 중심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문화정책은 바텀업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책입안자는 문화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최대한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한국의 문화예술이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질의 K-컬처를 생산할 수 있는 안정된 인프라 구축이 먼저이며, 이를 가능케 하려면 현장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오랜시간 동안 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K-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한 후 우리가 먼저 이를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문화한국 2035’ 정책,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를 다시한번 곰곰히 되새겨 봐야한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