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he Art Newspaper’(2025년 6월 2일 자)는 “한국 작가들이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Korean artists are taking the world by storm)”는 제목의 커버 기사를 통해, 오늘날 한국 동시대 미술이 왜 국제 미술계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해당 보도는 뉴욕, 런던, 중동, 싱가포르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들의 전시 사례와 큐레이터·연구자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선 구조적 전환의 흐름으로서 한국 미술의 현재를 분석했다.


 
세계 주요 기관이 주목하는 한국 작가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 중 하나로 ‘The Art Newspaper’는 김아영(Ayoung Kim)의 전시를 소개했다. 그녀는 2025년 11월 6일부터 2026년 3월 16일까지 뉴욕의 MoMA PS1에서 미국 첫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아영의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Delivery Dancer’s Sphere〉(2022)는 한국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2025년 11월 6일부터 2026년 3월 16일까지 뉴욕 MoMA PS1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 사진 제공: 작가 및 갤러리현대

전시작 중 하나인 〈Delivery Dancer’s Sphere〉 (2022)는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작으로, 한국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기술, 자동화, 노동의 구조가 인간의 신체와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감각적 내러티브로 풀어낸다.

서도호의 작품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2013–22)은 현재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전시 중이다. / © Do Ho Suh

런던에서는 서도호(Do Ho Suh)의 〈Seoul Home〉 (2013–22)이 현재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양혜규(Haegue Yang) 또한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개념적이고 물질적인 긴장을 결합한 작업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기사에서 양혜규는 “한국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항상 있어왔다. 정치·사회·문화적 조건이 어땠든, 예술가들은 언제나 뛰어났다”고 언급하며, 지금의 세계적 관심은 뒤늦은 ‘정당한 인정’이라고 평가했다.


 
‘K-아트’, 그 안에 담기지 않는 다양성과 복합성

‘The Art Newspaper’는 한국 미술이 더 이상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전통적인 수묵화나 단색화(Dansaekhwa)의 추상성과는 별개로, 오늘날 국제적 주목을 받는 작가들은 기술, 젠더, 사회 구조, 역사적 트라우마 등 복합적 문제를 다루는 개념미술의 흐름에 놓여 있다.

이승조의 작품 〈Nucleus F-G-999〉(1970)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 2021 MoMA, New York

이불(Lee Bul), 이미래(Mire Lee) 등과 같은 작가들은 국가나 문화 정체성보다는 개인적, 구조적 조건을 탐구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불의 작품 〈Long Tail Halo〉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Genesis Facade Commission)으로 설치되었으며, 전시는 6월 10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 여경환은 ‘The Art Newspaper’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은 글로벌 사회문화 변화 속에서 동시대성과 복수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고 분석하며, 그 흐름은 단순한 ‘외연의 확장’이 아니라 내부 구조의 다층적 재구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출범과 더불어, 한국 내 미술 기관의 설립과 매체 실험의 확산이 제도적 기반을 형성해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의 등장과 글로벌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겹치며, 한국 미술계는 세계 미술시장의 주요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한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

국제 미술계가 한국 미술에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는 소장과 연구의 확산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시작으로 뉴욕 구겐하임, LA 해머뮤지엄으로 이어진 전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가 개최되었고, 이는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적 의의를 국제 미술사 속에 위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수석 큐레이터는,
“한국의 실험미술은 이미 글로벌 아방가르드의 일부였지만, 기존 미술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국제적 담론 안에 중심으로 재배치했다”고 평가했다.
이 전시 이후 참여 작가들은 주요 기관 전시에 초대되거나 컬렉션에 소장되고 있으며, 학술 연구 또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성(Koreanness)은 정체성이 아니라 예술적 탐색의 과정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에서 공감대를 얻는 데에는, 국가나 민족 정체성보다는 근현대사의 변곡점 속에서 예술이 감당해온 문제의식이 있다. 군사독재와 민주주의, 분단과 전쟁, 식민지와 산업화, 그리고 현재의 기술적 전환기까지—이 모든 시대적 맥락을 예술은 기억하고 구성해왔다.
 
여경환은 이를 “한국성이라는 것은 고정된 표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설명했고,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큐레이터 이지원은
“문화 장면의 성장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향한 단순화가 아니라, 스스로를 인식하고 번역 가능한 언어와 구조를 고민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주의로 전환해온 역사에서 비롯된 예술은, 현재 민주주의의 침식과 초기 단계의 저항이 나타나는 시대 속에서 세계적으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미술의 현재는 한류(Korean Wave) 전반과 맞물리며, “한국 문화 정체성의 기초를 가시화하고 있다”고 강수정은 말한다.
“전후 현실 속에서, 모순과 희망 사이에서 국가를 재건해야 했던 경험은 긴박한 예술적 실험의 물결을 낳았습니다. 그 시기의 열정적이며 때로는 급진적인 미적 표현들은 그 시대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여경환은 “한국 작가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각자가 다루는 주제, 매체, 맥락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작가에게 있어 ‘한국성’이란 주장할 수 있는 ‘라벨’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씨름해온 깊은 예술적 과제입니다.” 라며 “한국의 미학과 정체성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지원은 예술 생태계의 본질적인 성장은 “보편적인 언어를 찾거나 기존의 정의를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식하고, 접근 가능한 경로를 만들고, 번역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또한, “이러한 전제 아래, 한국의 동시대 미술은 매우 다양한 주제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와 전쟁으로 얼룩졌던 국가가,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기까지 경험한 극적인 100년의 변모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갈등과 해결되지 않은 균열들 또한 예술 속에서 함께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The Art Newspaper’는 기사 말미에서 이제 한국 미술에 대해 던져야 할 질문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세계와 연결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한국 작가들은 어떤 서사와 형식으로 세계 미술 담론에 개입할 것인가,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은 누가,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고 기록할 것인가,
그리고 지역 기반의 예술 플랫폼은 세계 미술 생태계 속에서 어떤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한국 동시대 미술은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미술계의 구조를 새롭게 쓰고 있는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제대로 된 우리 것으로 기록하고 구조화할 것인가는, 바로 지금 우리 던져야 할 가장 시급하며 중요한 질문이다.



 
※ 본 기사는 The Art Newspaper (2025.06.02) 기사 “Korean artists are taking the world by storm—but why does their work resonate so widely?”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사 링크: theartnewspap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