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3>가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 스트리밍 1위를 기록했고, 애니메이션 <케이팝 디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MZ세대 중심의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며 유례없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오징어게임 3>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디몬 헌터스>에서, 한국의 민화 <까치와 호랑이>의 서사를 응용하여 새로운 캐릭터로 만든 장면 / © 넷플릭스

2025년 6월, 뉴욕타임즈는 "How South Korea Became a Cultural Powerhouse"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늘날 한국이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K-팝과 드라마, 영화, 음식, 뷰티를 아우르는 한국 문화는 단순한 콘텐츠의 범주를 넘어, 세계인의 생활양식 속으로 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한류가 단지 매력적인 창작물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산업 구조, 기술 인프라, 그리고 전 지구적 취향에의 민감한 대응력까지 결합된 체계적인 문화 확산의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문화강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콘텐츠의 소비와 확산을 넘어,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감수성, 그리고 그 사회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진정한 세계화는 유통 이전에 가치의 생산이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계가 보여준 세계화의 양상은 대체로 단편적이고 비연속적이다. 특정 작가의 국제전시 참여나 유명 미술관의 그룹전 초청, 혹은 해외 아트페어 참가 등은 간헐적인 사례로 존재하지만, 이것이 한국 동시대 미술의 담론과 생태계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세계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단순히 작가 개인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비평 언어와 기획의 구조, 그리고 이를 감당할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작가와 작품이 세계로 나가려면, 그것을 해석하고 중계하며 다른 문화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제도적 구조적인 장치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 테이트 모던에서의 서도호 개인전이나 김아영의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 등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성과들을 부러워하고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이를 배우고 한국 동시대 미술계 전체를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전략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더 제네시스 익스비션: 서도호: Walk the House》가 열리고 있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 외관모습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호(弧): 인버스 (스틸 이미지)>, 2024, 3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조명 설치,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각, 그래픽 시트 및 원형 스크린, 약 27분, 가변 크기. ACC 퓨처 프라이즈 커미션. 작가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제공.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화를 위한 다섯 가지 조건
 
세계화는 단순한 '해외 진출'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세계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곧 미술이 자기만의 언어를 얼마나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세계라는 다층적인 감수성과 어떻게 접촉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예술의 세계화란, 결국 그 사회의 감각이 타자의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 즉 참된 가치의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1. 시대와 존재의 가치를 묻는 도구로서의 미술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양식의 완성도 이전에 우리가 다루는 주제가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이슈나 가치를 다루고 있느냐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미술은 결국 시대와 존재를 묻는 도구이며, 그 질문이 깊고 정확할수록 세계는 더 진지하게 이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2. 가치의 해석과 다양한 비평의 복원
단순히 작가와 작품만으로는 세계와 소통할 수 없다. 그것을 해석하고 맥락화하며, 언어화할 수 있는 비평가와 큐레이터, 이론가, 기획자 집단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화가 지속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작가 중심의 전략이 아니라, 담론과 제도의 구조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3. 창작 생태계의 안정화
세계화는 단기 수출 전략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창작 환경의 구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가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실험할 수 있는 지원 체계, 레지던시, 창작 연구비, 교육과 비평이 연결된 생태계가 필요하다.
 
지금의 미술계는 지나치게 프로젝트 중심이며, 결과 위주의 단기 지원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예술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며, 세계와의 진정한 접촉은 그 시간을 전제로 한다.

 
4. 공공성과 제도의 동반
세계화는 작가 개인이나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공립 미술관, 문화재단, 정책기관이 장기적 관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흐름을 함께 설계하고,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때로는 재정적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국가의 문화 정책이 산업 중심의 효율성에서 벗어나, 예술의 비가시성과 비시장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순수미술은 여전히 문화의 후방에 머물게 된다.
 

5. 새로운 언어적 사유와 질문의 세계화
지금까지의 세계화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앞으로의 세계화는 한국 정신의 가치와 감수성의 확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지금 여기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계의 감각과 조우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아니라, 한국의 동시대 정신을 사유하고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동시대 미술, 문화강국을 완성하는 열쇠
 
지금 한국은 이미 '만드는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가치를 묻는 힘', '가치를 번역하는 힘', '가치를 연결하는 힘'을 갖춰야 한다. 진정한 문화강국을 위한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단지 미술을 세계로 내보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예술을 어떤 언어로, 어떤 질문으로, 어떤 맥락으로 세계와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콘텐츠 수출을 넘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정적 전략이다. 세계가 한국의 감각을 즐기고 있는 이 시점, 우리는 그 감각의 뿌리를 어떻게 예술로 번역해내고 담아내느냐, 그 언어를 어떻게 새롭게 구축하고 세계를 향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냐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