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기술과 예술의 미래적 공존을 실험하는 전시로 새로운 장을 열었다. LG전자와 공동 기획한 ‘MMCA×LG OLED 시리즈’의 첫 프로젝트로 소개된 추수 작가의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은 기술, 생명, 젠더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유기적으로 교차하는 동시대 미술의 실험장이자 선언문이다.


LG전자의 55형 OLED 스크린 총 88대로 만든 두 개의 초대형 스크린 월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몰입감 있게 구현한다. /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MMCA×LG OLED 시리즈’: 기술과 예술의 지속 가능한 공진화

‘MMCA×LG OLED 시리즈’는 LG전자와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2025년부터 3년간 공동으로 추진하는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 발굴 및 창작 지원 프로젝트다. 양 기관은 "기술을 단순히 매체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예술이 제기하는 철학적, 사회적 질문과 어떻게 공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에 두고 협업을 설계했다.


LG전자의 55형 OLED 스크린 총 88대로 만든 두 개의 초대형 스크린 월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몰입감 있게 구현한다. /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MMCA는 201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서울박스’와 같은 비정형 전시 공간을 통해 설치·영상 기반의 실험적 프로젝트를 지원해왔으며, LG전자는 최근 수년간 글로벌 디지털아트 시장에서 OLED를 활용한 아트 프로젝트로 차별화된 브랜딩을 시도해 왔다. 양측의 협업은 단순한 후원 모델을 넘어, 예술가에게 실험적 자유와 기술적 지원을 동시에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 생태계 구축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97인치 초대형 OLED 디스플레이를 전시장에 제공하며, 영상 설치물의 몰입도와 세밀한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기획자들은 이를 "예술가의 세계관에 기술이 봉사하는 구조"로 설명하며, 전시 종료 후 일부 작품을 MMCA가 영구 소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추수: 생명성과 젠더를 디지털로 번역하는 작가


“아가몬”은 엄마가 되고 싶은 작가의 개인적 열망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이자 디지털 세계를 살아가며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사진은 우뭇가사리와 이끼를 이용한 작품 <아가몬 5>(2025).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의 주인공인 추수 작가(1992년생)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베를린 예술대학(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다. 현재는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감수성, 젠더 이슈, 생명성과 같은 복합적 주제를 입체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추수 작가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의 작업은 주로 "디지털 존재의 신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2022년 베를린의 Künstlerhaus Bethanien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인간과 기계 간의 ‘감각적 경계’를 생물 재료와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풀어내며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육체 없는 출산’,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비이성적 생명 모델’ 등 탈이원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신작들을 발표해 왔다.

추수는 이번 전시에서도 생명체에 대한 물리적 재현을 넘어, 비물질적 존재와 디지털 영속성의 개념을 다룬다. 특히 작품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우뭇가사리와 이끼, 그리고 영상 속 ‘디지털 정령’은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해 온 ‘살아 있음(liveness)’과 ‘되살아남(survival)’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아가몬 대백과》: 비출산적 생명 상상력과 순환성의 미학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은 총 세 개의 주요 작업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실제 우뭇가사리 젤에 인공적으로 이끼를 심은 유기적 조각 <아가몬 5>(2025)다. 이는 생명과 욕망의 은유로, '자라나는 존재'를 통해 모성과 양육, 생식의 메커니즘을 대체적 방식으로 번역한 시도다. 작가는 이를 “출산 이외의 방식으로 확장되는 성적 에너지”로 해석하며, 이끼가 자라나는 환경적 과정 자체를 하나의 생명 돌봄 행위로 치환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초대형 OLED 디스플레이로 구현된 2채널 영상 설치물인 <살의 여덟 정령 - 태>와 <살의 여덟 정령 - 간>이다. 이 영상은 일종의 디지털 생명체들이 등장하는 가상 신화 서사로 구성되며, 각 정령은 몸의 기관 혹은 탄생의 은유를 상징한다. OLED 화면은 영상 속 생명체의 미세한 움직임과 투명한 피부, 느린 호흡 등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기술이 작가의 철학을 구현하는 구체적 수단이 되었음을 입증한다.

이들 작품은 전통적인 설치·영상 예술의 경계를 넘어, 살아 있는 생물 소재와 디지털 영속성을 통합한 새로운 ‘순환적 미학’을 제시한다. 특히 조각과 영상이 함께 전시 공간의 시간성과 감각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동시대 미술에서 점차 중요한 미학적 경향으로 부상 중이다.



결론: 기술로 감각을 확장하는 동시대 예술의 가능성

《아가몬 대백과》는 단순히 기술을 예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감각과 윤리의 언어로 전환하는 예술적 실험이다. 이는 곧 동시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추수의 작업은 육체의 경계를 넘어서고, 생명이라는 개념을 젠더와 기술을 통해 재해석한다. 여기에 LG OLED 기술의 정밀한 재현력과 MMCA의 실험적 전시 기획이 만나, ‘예술이 기술을 매개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MMCA×LG OLED 시리즈’의 다음 장은 어떤 예술적 상상력을 보여줄까. 기술과 감수성이 만나는 이 유기적 생태계 안에서, 동시대 미술은 다시 생명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